시스터스 브라더스
패트릭 드윗 지음, 김시현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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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가 고개를 저었다. "그자를 찾지 않는 게 좋아. 진찰비와 관련해 불행한 사건이 있었거든. 나를 다시 보면 무척 기뻐하겠지. 하지만 우리를 도울 마음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군. 남쪽으로 몇 킬로미터 더 가면 마을이 있다고 그자가 그랬어. 그리로 가는 게 최선일 거야. 네가 갈 수 있다면 말이지."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

"인생의 많은 것이 그렇듯 이번에도 어쩔 수 없는 거야, 형제."   p.31~32

골드러시의 광기로 들끓는 1851년 미국 서부, 각종 청부업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악명 높은 킬러 형제, 시스터스 브라더스의 여정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찰리 시스터스와 일라이 시스터스 형제는 제독으로부터 캘리포니아로 가서 허먼 커밋 웜이라는 금 채굴꾼을 찾아내 죽이라는 의뢰를 받는다. 제독의 정찰병인 멋쟁이 헨리 모리스가 미리 웜을 조사하고 샌프란시스코의 호텔에서 형제를 기다리고 있기로 했다. 그들은 사람을 죽이기에 적당한 그곳으로 가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서부 해안을 따라 오리건에서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여정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협곡에서 야영을 하다 일라이가 독거미에 물려서 온몸에 열이 나서 드러눕고, 다음날 아침 일어났더니 왼쪽 얼굴이 그로테스크하게 부어 치과 의사를 데려와 썩은 이를 뽑으며 난생 처음으로 칫솔질하는 걸 배우게 된다. 그러고는 찾은 숙소가 마녀 같은 노파 혼자 있는 오두막이었는데, 노파에게 이상한 저주를 받기도 하고, 다음 마을의 호텔에 묵으면서는 주정뱅이 찰리가 술을 너무 퍼마셔 숙취로 고생하고, 일라이는 그 와중에 호텔의 카운터를 보는 하녀와 사랑에 빠진다. 물론, 여자의 마음과는 상관없는 혼자만의 감정이었지만 말이다. 시작부터 상태가 시원찮았던 일라이의 말 텁은 점점 더 컨디션이 나빠지고, 거액의 현상금이 걸린 빨간 암컷 곰을 사냥해 현상금을 받지만 졸지에 도둑으로 몰려 돈도 잃고, 그 지역 사냥꾼들과 목숨을 걸고 한판 붙게 되는 상황에 처한다. 과연 이들은 무사히 샌프란시스코까지 갈 수 있을까.

 

"이런 일을 즐기나요?"

"건건이 달라요. 어떤 일은 별난 장난 같고, 또 어떤 일은 지옥 같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떤 행위에 보수가 주어지면 그 자체로 존중할 만한 일이 되죠. 한 사람의 목숨이 내게 달려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 달려 있는 거겠죠." 그녀가 지적했다.   p.160

이 작품은 캐나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총독문학상을 포함해 4개 상을 수상했고, 영화로 제작되어 베니스 국제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소설 자체도 매우 영화적이다. 장면들마다 보여지는 특유의 리듬과 페이지 바깥으로 걸어나올 것 같은 개성 만점의 인물들, 그리고 폭력과 유머가 공존하는 독특한 아이러니에서 빚어내는 에너지가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그래서 살인과 폭행을 일삼는 악당을 화자로 피비린내 나는 삭막한 여정을 그리고 있지만 너무도 매혹적인 작품이었다.

보통 서부극하면 19세기 후반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강인한 개척자와 악당과의 대결을 그리는 작품이다. 플롯은 단순하고, 액션이 위주인 서부 영화로 주로 만나왔을 것이다. 이 작품은 소설로서는 드물게 그러한 웨스턴 장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놀랍게도 기존 장르의 문법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완전히 색다르고 독특한 장르를 탄생시켰다. 카우보이모자와 권총, 황야의 결투, 무법지대, 말을 타고 가는 여정 등 웨스턴 장르의 소재와 공식이 등장하지만, 현대적인 블랙유머와 개성 있는 캐릭터들로 인해 굉장히 세련된 카우보이 누아르가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일확천금을 노리고 모여든 서부개척시대의 인간군상들이 풍자적인 필치로 그려지고 있으며, 매 장면마다 잔인한 폭력과 코믹한 유머가 공존하고 있다. 유혈이 낭자한데도 웃길 수 있다니 쉽게 상상이 가지 않을 지도 모르겠지만, 무표정하게 툭툭 내뱉는 한 마디, 행동 하나가 너무 웃기고, 유쾌한 작품이었다. 사실 서부극 장르를 영화로든 소설으로든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닌데, 이 작품은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나 험상궂은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감상적이고, 어디서든 금방 사랑에 빠지는 로맨틱한 면모도 가지고 있고, 행동은 무자비하더라도 나름의 윤리관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 일라이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 정 많고 악명 높은 킬러 형제의 위험천만한 여정에 당신을 초대한다. 그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스타일리시한 서부극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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