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살짝 기운다
나태주 지음, 로아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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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즐겨보는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에서 주인공 은호가 이제 조금씩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한 누나 강단이를 생각하면서 시를 읽는다. '그렇다면 누군가 두고 온 한 사람이 보고 싶은 거다. 또다시 누군가를 다시 사랑하고 싶어 마음이 안달해서 그러는 것이다.' 오랜 세월 친동생, 친누나 처럼 지내온 그들의 관계가 조금 달라지려는 차에 부득이한 상황으로 인해 며칠 떨어져 있게 되는데.. 그때 이 책을 읽었다. 소리 내어 책을 읽어 주는 대상은 따로 있었지만, 아마도 마음 속으로는 그녀를 생각하며 시를 읽었을 것이다. 그때 은호가 읽었던 가슴 설레던 그 시집이 바로 이 책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너를 사랑한다

거리에도 없고 집에도 없고

커피 잔 앞이나 가로수

밑에도 없는 너를

내가 사랑한다                 -p.12, '그런 너' 중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라는 시, '풀꽃'을 쓴 시인 나태주. 이 책은 풀꽃 시인 나태주의 미공개 신작 시 100편을 담고 있다. 게다가 일러스트 작가 로아의 다정한 그림이 함께 실려 있어 책 자체도 너무 아름답다.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들에게 쉽고, 친근감 있게 다가갈 수 있는 시집이 아닌가 싶다. 잘 읽히고, 어렵지 않고, 공감되는 부분도 많고, 무엇보다 각각의 시와 어울리는 일러스트들이 굉장히 감각적이고 예쁘다.

나태주 시인은 이 책을 통해서 세상 곳곳에 높여있는 아름다운 것들과 애틋한 사랑에게 안녕을 전하고,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시인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살포시 가져와 시로 써 내려가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인지 시들을 이루고 있는 언어들이, 감정들이 다정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쓰러진 꽃도

함부로 밟거나

잘라서는 안 된다

꽃이 필 때까지

꽃이 질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          p.140, '뿌리의 힘' 중에서

사랑의 설레이는 순간의 이별의 슬픈 감정을 담고 있지만, 일상의 소소한 것들도 그려내고 있는 시집이다. 1장에서는 연인의 이야기를, 2장에서는 부모님을 비롯해 가족들을 향한 애정을, 3장에선 자연과 일상에 대한 고마움을, 4장에선 삶에서 마주했던 인연들에게 건네는 말을 담고 있다. 또 어떤 시에서는 아기가 웃으면 따라 웃고, 아기가 아프면 따라서 아픈 엄마를 담고 있고, 어떤 시는 아내와의 오랜 세월을 그려내고 있고, 여전히 꽃보다도 고우신 어머니에 대한 마음도 있고, 초보 엄마, 젊은 엄마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딸에게 건네는 애틋한 마음도 있다.

'서있을 때 보이지 않던 구름이 자리에 앉았더니 보이기 시작한다'로 이어지는 시가 유독 마음에 남는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순간들을, 감정들을 놓치며 살고 있을까. 자리에 앉았더니 '구름만 보이는 게 아니라 바람의 손도 보이고 바람이 만지고 가는 구름의 속살까지도' 보인다고 시인은 말한다. 일상이 전쟁처럼 치열하고, 사는 게 매일매일 너무 바쁘지만, 그래도 가끔은 한숨 돌리고 마음의 여유를 좀 가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아이의 눈높이로 앉아서 아이가 바라보는 시야로 세상을 내다보기도 하고, 또 가끔은 급하게 가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파란 하늘과 솜사탕 같은 구름도 바라보며 살아야겠다. 시를 읽는 다는 것은 이렇게 일상의 쉼표를 만들어주는 준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것 같다. 휴식이 필요한 당신,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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