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문신한 소녀
조던 하퍼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놈들이 여기 도착할 때쯤 우리는 없을 거다. 놈들에게 득보다 실이 많을 거란 말 꼭 전해." 아빠가 말했다.

"지금 총을 든 건 너니까 네 맘대로 해봐. 하지만 온 세상이 널 쫓고 있어. 네가 온 세상을 죽일 수는 없잖아. 그 남자가 말했다.   p.51

열한 살 소녀 폴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의 거의 절반 동안 아빠를 보지 못하고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교문을 나오다 거기 우뚝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빠를 마주한다. 아빠는 나쁜 사람이고, 강도이고, 감옥에 있어야 했다. 탈옥이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의 아빠를 보며 폴리는 선생님이나 어른들에게 도와달라고 소리를 질러야 할지, 도망쳐야 할지 생각하며, 공포에 얼어붙었다.

"아빠 말 잘 들어. 넌 나랑 같이 간다. 당장. 수선 피울 시간 없어."

도망치고 싶었고, 무서웠고, 도와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폴리는 그렇게 하지 않고 아빠가 시킨 대로 따라간다. 낡은 차를 타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허름한 모텔이었고, 아빠는 팔뚝에 파란 번개 문신을 한 남 자들을 조심해야 한다고, 이건 목숨이 달린 문제라고, 지금 아주 힘든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내가 이 상황을 바로잡겠다고 말하며 나간다. 대체 이들 부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네이트는 감옥에 있을 때 범죄조직 아리안 스틸의 두목인 미치광이 크레이그의 심기를 건드렸고, 그 대가로 크레이그는 그에게 사형 집행 영장을 내린다. 크레이그는 철통같은 경비가 유지되는 감방에서 살고 있었지만, 바깥 세상에는 그의 발과 눈이 되어주고, 손이 되어줄 사람들이 널려 있었다. 그리하여 네이트와 그의 전부인, 그리고 딸이 사람들의 표적이 되었고, 네이트는 전처인 애비스와 그의 새 남자가 시체로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한다.

놈들이 아이를 쫓고 있을까?

네이트는 이제 자신이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계속 살아 있어야 하나 아니면 죽어야 하나. 네이트는 자신이 파멸로 몰고 간 이 아이, 폴리를 구해낼 때까지는 살아 있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온 세상이 그들을 쫓고 있었다. 세상 끝까지 계속 도망쳐야 했다.

 

 

"강해지려면 먼저 약해지는 걸 느껴야 해." 네이트가 말했다.

"?"

"닉 삼촌이 예전에 자주 이렇게 말했어. 근육을 강하게 키우고 싶으면, 근육의 힘이 다 풀리면서 스스로 약하다고 느껴질 때까지 밀어 붙여야 한다고. 인생의 이치가 대부분 그래. 시종일관 자신이 강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더 이상 강해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야. "     p.143

계속 도망치는 것은 정답이 될 수 없었다. 세상 어디도 그들에게 안전한 곳은 없었으니까.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미치광이 크레이그가 사형 집행 명령을 철회하게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네이트가 선택한 것은 그들의 사업에 손해를 입히겠다는 거였다. 그래서 그는 폴리를 데리고 다니면서 현금을 훔치고, 마약을 강탈한다. 아리안 스틸은 사업체를 아주 많이 가지고 있었고, 네이트는 그들이 휴전을 원할 때까지 계속 그들의 것을 훔칠 작정이었다. 네이트는 폴리에게 갱단들의 계급 체제를 알려주고, 운동을 시키고, 무기 사용법과 목 조르기 등 상대방을 제압하는 방법을 익히게 한다. 그래서 어린 딸과 아빠가 조직으로부터 도망다니는 추격 서사는 여타의 작품에서와는 전혀 다른 색채를 띠고 있다. 아이큐가 높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는 못했지만 평범한 생활을 했던 열한 살 소녀는 강도 짓을 하며 쾌감을 느끼고, 이런 일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딸에게 관심조차 없었던 아빠는 아이 대신 자신의 목숨으로 거래를 하겠다고 생각할 만큼 부성애를 깨닫게 된다. 이들 부녀는 쫓기는 입장이 아니라면 마치 가해자처럼 보일 정도로 당당하게 마약 창고를 털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그들과 맞서 싸운다.

책을 읽는 내내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작품이었다. 딸과 아빠가 위험에 빠져 있다는 설정과 세상 전체가 적이 되어 버린 그들에 대한 암흑 조직의 추격 스릴러라는 익숙한 서사가 뻔하지 않게 흘러 가는 전개도 흥미로웠고, 네이트와 폴리, 그리고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를 비롯해서 여러 등장 인물들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어 더욱 긴장감 넘치게 흘러간다는 점도 지루할 틈이 없도록 만들어 주었다. 암흑 조직과 관련된 각종 묘사와 증오와 폭력이 난무하는 액션 장면들의 속도감 역시 이 작품을 마치 영상으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데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작가인 조던 하퍼가 인기 드라마의 작가이자 총괄 제작자로 활동한 이력이 있어서인지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게 흘러가는 스릴러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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