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즐거운 날이 잔뜩 남았습니다
bonpon 지음, 이민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모던한 패션에, 새빨간 립스틱. 꽤 시선을 끄는 스타일이지만 사실 저는 내향적이라, 눈에 띄는 차림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에요. 다만, 굳이 이 나이가 되어서까지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가 뭐라던 무슨 상관이야, 나만 즐거우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했어요. 백발이 되어 새로운 멋을 알게 되다니. 나이를 먹고 나서야 즐길 수 있는 일도 있다는 걸 깨달았답니다.   p.100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귀여운 옷차림의 노부부는 일본 센다이에 거주하는 60대 부부이다. 요즘은 웬만한 60대들에게 백발을 보기가 힘들어서인지, 하얗게 센 머리를 하고 있는 두 부부의 스타일이 인상적이다. bon은 남편, pon은 아내의 별명이다. 딸이 올린 사진 한 장으로 인해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이들 부부는 2016 12, 두 사람의 닉네임과 결혼기념일(1980 5 11)에서 따온 계정 ID ‘bonpon511’으로 부부가 함께 인스타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금 2019 2월 현재, 팔로워 수 80만 명에 이르는 글로벌 스타가 되었다.

하얗게 센 머리와 꼿꼿이 선 포즈, 닮은 듯 다른 옷차림을 하고 오붓한 데이트를 즐기는 노부부의 모습을 보며 전 세계 SNS 유저들은 "이런 부부가 되고 싶다", "이렇게 늙어가고 싶다", "나이 드는 것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우리도, 이렇게 입어볼까?", "이런 게 멋지게 늙어간다는 거구나!" 라며 멋쟁이 노부부의 삶에 공감하며 열광하고 있다. 비슷한 옷을 입고,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들의 모습이 아직도 설레 이는 소년, 소녀의 모습처럼 느껴져서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염색하지 않은 흰 머리와 너무나 꼿꼿해 조금은 어색한 자세마저 만화 캐릭터처럼 사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은퇴 이후 노년의 삶을 즐기는 그들만의 특별한 방법과 40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는 원만한 부부 사이의 비결, 그리고 여전히 알콩달콩 재미있게 연애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일상이 궁금해졌다.

 

우리 부부는 묵묵히 걸을 뿐이지만, 굳이 대화가 없어도 옆에 있으면 안심이 되고, 자연스럽게 있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 즐겁고, 편안해요.

세상에는 여러 부부가 있고, 저마다 다른 모습일 거라 생각합니다.  p.175

남편의 퇴직을 2년 앞두고, 함께 살던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이들 부부는 정년퇴직 후의 삶에 대해 고민한다. 그래서 넓은 집을 처분하고 오랫동안 살던 아키타를 떠나 새로운 도시 센다이로 이사를 결정하게 된다. 오랫동안 시어머니, 두 딸과 함께 살던 단독주택에서 노부부를 위한 작은 아파트로 옮기는 과정은 많은 것들을 버리고, 줄이고, 간소화시키는 과정이었다. 이 책의 전반부는 그렇게 시작되는 그들의 세컨드라이프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이사를 결정하고, 내부수시를 하고, 살림살이를 처분하고, 온전히 두 사람만의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게 되는 소소한 일상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할 만한 이들 노부부의 스타일링에 대한 대목이 등장한다. 염증으로 인해 흰머리 염색을 조금 이른 나이에 포기하게 된 아내와 새치 때문에 이미 흰머리였던 남편의 사연으로 시작해, 백발이 되고 보니 기존의 옷들이 하나같이 어울리지 않게 되어 조금씩 스타일이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들은 백발이 되어서야 새로운 멋을 알게 되었고, 그러다 우연히 커플 코디로 옷을 입고 외출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이 너무 흥미로웠다. 실제로 스타일의 방법이라든가, 코디룩들이 사진으로 수록되어 있어서 시밀러룩에 관심이 많은 패셔니스타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사실 남편이 정년 퇴직을 하게 되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사사건건 부딪치게 되어 아내가 더 피곤해진다고, 그래서 노부부들이 다투게 될 상황이 많아진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 왔다. 젊은 시절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남편이라 아이들과 따뜻한 애정을 나누지 못해 이제 다 커버린 자식들과의 사이도 소원해지고, 회사와 집만 오가느라 변변찮은 취미 한번 누리지 못해 퇴직 후에 오히려 집에서 공허해지는 남자의 상황도 이해가 간다. 반면 평생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지친 아내 입장에서는 아이도 커서 독립하고 남편도 바깥일을 안하게 되니 이제는 좀 쉬고 편하게 살고 싶은데, 집에서 남편 세끼 밥상부터 시작해 이것저것 해달라고 하니 귀찮고 피곤할 수밖에 없을 테고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은퇴 후 제2의 인생, 소위세컨드 라이프를 두 사람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수십 년 후면 나에게도 닥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그에 대한 해답을 찾은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가사는 둘이 함께 분담하고, 식사는 간소하게 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같은 취미를 찾아서 시작하고.. 이들의 일상처럼 이렇게 아기자기하게 할 수 있다면 나이 드는 것도 그렇게 나쁘진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를 먹은 후에야 즐길 수 있는 일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하지만, 이렇게 백발이 되어도 즐거운 날이 잔뜩 남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다가올 내일이 설레 이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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