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다
모리 에토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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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나이를 먹는다는 것도 참 재미있네. 나리키요 씨와의 만남, 헤어짐, 다시 만남, 또 헤어짐. 그 일련의 과정을 대충 더듬으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같은 사람을 몇 번이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만날 때마다 낯선 얼굴을 보이면서 사람은 입체적이 된다. 길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에 녹아드는 나리키요 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눈물이 핑 돌 만큼 재미있다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 '다시, 만나다' 중에서, p.39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는 사와다는 이번에 첫 번째 개인전을 열면서 오래 전 출판사에서 근무했던 편집자 나리키요 씨와의 인연을 떠올린다.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이기에 초대장을 보낸다고 설마 와줄까 싶긴 했지만, 그는 정말로 전시장에 나타난다. 그렇게 두 사람은 7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다. 하지만 두 사람이 사랑하는 사이였다거나, 서로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대학도 졸업하기 전에 일러스트레이터로 일을 시작하게 되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도 모르는 채 정신 없이 그리면서 스스로의 재능을 의심할 때 자신에게 일을 의뢰했던 편집자로, 그녀가 처음으로 타인과 함께 일하는 것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 사람이었다.

표제작인 '다시 만나다'라는 이야기는 이렇게 담백하고, 별다른 사건 없이 흘러간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만나 따로 식사하는 자리도 갖지 못했던 이들의 만남이 그녀에게 오랜 시간 남아 있는 이유를 나는 알 것도 같았다. 나도 그런 사람들이 몇몇 있었으니 말이다. 일상에서 우리는 모두 숱하게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멀어지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만남이 일시적인 것이든, 여전히 지속되는 것이든 간에 그 인연이라는 순회 고리 속에서 벌어지는 회한과 아쉬움, 그리움과 애틋함, 오해와 미움 등의 감정들이 우리를 성장시키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어 준다. 모리 에토는 일상 속에 자리한 만나고 헤어짐, 그리고 다시 만남을 주제로 여섯 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다시 얽힌 손. 그것으로 충분했다. 주저 없이 악수해준 그의 축축한 손바닥에 15년 전의 진실이 담겨 있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세월도 있다. 사람은 산 시간만큼 과거에서 반드시 멀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돌아갈 수 있는 장소도 있다. 맞닿은 손끝의 따스한 열기를 느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 '매듭' 중에서, p.155

고토는 15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으로 향한다. 이제는 어깨에 책가방을 멘 소녀가 아니라, 재킷을 입고 커리어 우먼 다운 영업용 미소도 지을 수 있는 어엿한 성인 여성이 되었지만, 친구들을 만나기 직전 여지없이 겁쟁이 열세 살 시절로 돌아가고 만다. 누구나 기억할 수밖에 없는 6학년 2반의 최대의 추억이, 그녀에겐 여전히 어두운 기억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를 가르는 15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녀는 과거의 친구들과 다시 만나, 과거의 그 시간 속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매듭'이라는 이야기 속에서 그녀는 다시 만난 그 시절의 친구들과 오래 전 기억 속에 있는 매듭을 조금씩 풀어내기 시작한다. 같은 상황도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체험되기에, 시간이 지난 뒤에 각자에게 남겨진 그 순간의 기억은 모두 다르게 마련이다.

 

여섯 편의 이야기 모두 일상 속에서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러한 관계를 떠올릴 때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사랑과 이별이 아니라서 더욱 흥미로웠던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어린 시절 잃어서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상상 속에서 마치 실재했던 것처럼 완벽하게 만들어낸 남자의 이야기, 저녁 시간에 우연히 부딪친 낯선 남자를 뉴스에서 총기 발사 사건의 범인으로 다시 만나게 되는 여자의 이야기, 고속도로에서 위험한 사고가 나려던 순간 죽은 아내의 환영을 다시 만나게 되는 남자와 아들의 이야기 등... 지금의 삶과 다음 세상을 오가며 만남의 가치에 대해 그리고 있어 뭉클했다. 짧은 단편들이지만, 인생의 특별한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해내고 있어 여느 장편 못지 않게 깊은 여운을 남겨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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