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라, 내 얼굴 슬로북 Slow Book 4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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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 소설이니 수필이니 이름 붙이기가 애매한 잡스러운 얘기들. 하지만 뭔가 있는 듯한. 가슴을 울리거나,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거나, 낄낄대고 싶거나, 통쾌하거나, 애틋하거나, 뭉클하거나.... 그런 소소한 얘기들을 야담이라고 하자.

지금도 타고난 야담가들이 있다. 어느 조직이나 꼭 한두 명은 있다. 한 사람이 없어지면 다른 누가 나타나 좌중의 이목을 붙들고 동료의 이성과 감성을 들었다 놓는 이야기꾼을 자처하기 마련이다.   p.74

작가정신의 새로운 산문집 시리즈인슬로북, 네 번째 책이다. 슬로북은마음의 속도로 읽는 책으로, 자신의 속도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능동적인 삶의 방식이자 일상의 혁명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된 에세이 시리즈이다. 백민석의 쿠바 여행 에세이 <아바나의 시민들>, 박상의 본격 뮤직 에세이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함정임이 들려주는 치유의 산문집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에 이어, 데뷔 20년차 생계형 소설가 김종광의 에세이 <웃어라, 내 얼굴>이 출간되었다. 속도지상주의 시대에느려질 수 있음의 가능성을 발견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시리즈라 그런지, 출간되는 책들마다 특별한 분위기와 색깔을 지니고 있어 이번 책도 기대가 되었다.

이 책은 올해로 데뷔 20년차를 맞는 소설가 김종광이 그 동안 쓴 1500여 개의 산문 가운데 가려 뽑은 126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페이지 수가 두툼한 편은 아니니, 각각의 글은 두 세 페이지 정도의 아주 짧은 분량이다. 가족이야기부터 소소한 일상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개인적인 생활과 삶이 모두 담겨 있는 글이다. 진지한 이야기도 있고, 뭉클한 이야기도 있고, 애처로운 이야기도 있고, 공감되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공통점은 하나같이 유쾌하고, 재미있다는 것이다. 짧지만 임팩트 강한 한 방이 거의 모든 글에 담겨 있어서, 페이지가 아주 쓱쓱 빠르게 넘어가는 책이다.

 

 

 

내가 존경하는 선배가 늘 하는 소리가 있다. "언제쯤 내가 20쪽 이상 재미있게 읽는 소설을 쓸 것이냐?" 그토록 재미없는 소설만 써온 내가 이런 말 하기는 좀 뻔뻔하지만, 어떻게 먹고 살려고, 이토록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문장으로, 도무지 뭔 스토리인지 종잡을 수 없는 소설을 쓴 것일까? 소설 좀 읽었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도 이해 불가능한 소설들이 있다. 소설만 읽고 써왔다는 소설가들끼리도 서로 공유가 안 되는 것이 재미라는 거다. 그러니 모든 독자들을 아우르는 재미라는 건 있을 수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p.259

나는 어느 날 아내에게 묻는다. "대출 언제부터 가능해? 아내가 대책 없는 얼굴로 대답한다. "기약 없지. 무리해서 대출할 필요 없잖아." 사실 그들은 인근 도서관에서 책을 열심히 빌려보던 중, 바빠서 반납일을 넘기고, 책을 한 권 잃어버려 장기간 연체를 한 대가로 한 달도 넘는 대출 정지를 당한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원래 목적했던 말을 꺼낸다. "그럼 살까?" 도서관에서 대출을 할 수 없으니 책을 사서 보자는 거였다. 그런데 아내의 대답은 "우리 형편에 어떻게 사?" 나는 요새 벌어다 준 돈이 부족해서 그러나 싶어 서운하고, 울컥해서 말한다. 우리가 책 몇 권 살 형편은 되지 않냐고. 갑자기 아내가 깔깔대고 웃기 시작한다. 아내는 대출해서 전세를 가든 집을 사든 하자는 얘기로 알아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주공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수록작 중에 '대출 세계관'이라는 에피소드의 내용이다. 모든 글들이 다 이런 분위기라고 보면 되다. 소소해 보이지만 누구나 겪어 봤을 법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공감을 그리고 있고,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지만 이야기의 어조는 가볍고 유쾌하다. 그래서 종종 피식 웃게 되고, 어느 순간은 깔깔거리고 배를 잡게 되는 기분 좋은 책이었다.

저자는 극중 에피소드에서 '시니 소설이니 수필이니 이름 붙이기가 애매한 잡스러운 얘기들. 하지만 뭔가 있는 듯한' 소소한 얘기들을 야담이라고 할 때, 세상 모든 어머니들은 이야기꾼에 야담가라고 말한다. 그런데 독자 입장에서 김종광의 산문이 딱 그런 느낌이다. 소소하지만 의미 심장하고, 애틋하지만 유머스럽고, 뭔가 가벼워 보이지만 결국 뭉클한 잔상을 남기는 그런 글들이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이야기꾼'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런 맛깔 나는 책이다. '왜 우스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웃기는, 겉으로 웃지 않아도 속으로 웃게 만드는, 꼭 웃음으로 표현되지 않아도 뭔가 즐거움이 느껴지는, 이 모든 것이 재미'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재미들을 독자들이 오롯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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