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실재하는 '초능력'을
수량화한 증거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여지껏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그러니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뻔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다.
이미 여러 차례 과학적 실험을 통해 초능력은 극단적인 관찰 기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것이
밝혀졌다. 또한 이 기술이
바로 제이크가 잘 쓰는 방법이다. 그는 죽은 사람과 대화하거나 영적인 세계와 소통하지 않는다.
단지 관찰할 뿐이다.
가만히 지켜보면서 계산하고 수수께끼를 푼다. 초능력자인 척 행세하는 사기꾼들은 이런 걸 '콜드 리딩'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현실적인 행위였다.
p.137
FBI 특별 수사관 제이크 콜은 삼십 삼 년 만에
고향에 있는 아버지의 집을 찾아 간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유명한 화가인 아버지와는 전혀 왕래 없이 지내다가, 아버지가 화재를 내고 병원에 입원했고 알츠하이머
증세를 보인다는 연락을 받게 된 것이다. 철저한 은둔자이자 완벽주의자였던 아버지가,
이제는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노인이 된 상태에서 그 뒷수습을 하게 된 것이
제이크는 편하지가 않다. 뉴욕주의 외딴섬인 그곳 몬탁에는 곧 허리케인이 올라오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고, 아버지의 집은 디킨스의 소설에서 막 튀어나온
무대처럼 시간이 멈춰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집을 둘러보고 있는 제이크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현지의 보안관으로부터 살인 사건이 벌어졌으니 최대한 빨리 와달라는 연락이 온
것이다.
"그 사람들, 어떻게 죽었습니까?"
"살가죽이 벗겨진 채로요."
그 말을 듣자마자 제이크의 머리가 얼어붙으면서,
잊고 있었던 오래 전의 그 빌어먹을 공포가 다시 되살아 나는 것을 느낀다. 제이크의 어머니는 그가 열두 살 때
살해당했다. 당시 그녀는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져 죽임을 당했고, 범인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 놈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사건 현장을 찾은 제이크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분노를 느낀다. 모든 것이 삼십여 년 전과 너무도
비슷했다. 제이크는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으로 놈의 흔적을 뒤쫓기 시작한다.
제이크는 머릿속으로 기상천외한 작업을 할 수 있었는데, 바로 사람들이 죽기 전 마지막 순간을 그리는
능력이었다. 그 괴상하고
섬뜩한 재능은 괴물들을 사냥하는 데 빛을 발했고,
그는 그 능력으로 피해자들이 고통 속에 죽어간 광기의 현장에 홀로 남아 범인이 남긴 미세한
특징을 잡아내고, 그들의
시그니처를 해독했다.
아드레날린이 한꺼번에 솟구쳐 가슴을 옥죄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가슴의 감각이 점차 차가워졌다. 액자가 손가락에서 빠져나가 카펫에 탁 하고 떨어졌다.
'우연 같은 건 없어.'
스펜서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그리고 모든 것이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빠져나가 싸늘해졌다. 그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는 여자는
제이크가 잘 아는 여자였다. p.227~228
현장을 한 번 둘러보면 머릿속에 디지털 녹화 장치가 든 것처럼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전부 기억해내는 남자, 사진처럼 완벽하게 현장을 떠올려 머릿속으로
외과수술을 하듯 피살자의 비밀을 닳고 반질반질해지도록 돌이켜보는 일을 하는 남자. 그는 과연 오래 전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바로 그놈을 잡을 수
있을까. 그가 놈을 뒤쫒을
수록 제이크의 주변 사람들이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진 채로 살해당하고,
아버지가 집안 곳곳에 남겨 둔 그림 조각들이 단서들로 연결되려는 순간, 제이크의 아내와 어린 아들이
사라진다. 제이크는 과연
사랑하는 가족을 무시무시한 살인마로부터 구해낼 수 있을 것인가.
두툼한 페이지가 무색하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만드는 마력으로, 이야기가 폭발한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장감과 등골이 서늘하게
만드는 오싹함으로 달려가던 이야기는, 후반부의 반전에 이르게 되면 그야말로 악마적인 한 방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정말 소름끼치도록 무섭고, 으스스하고,
충격적인 작품이다.
로버트
포비는 '다음 세대의 스티븐
킹'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이
작품으로 데뷔했다. 그는 존
더글러스의 논픽션 <마인드헌터>를 비롯해 실제 범죄 사례와 영상 자료,
인터뷰 기사 등 폭넓은 자료를 섭렵해 주인공 제이크 콜의 캐릭터를 구상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살가죽을
벗겨서 죽인다는 끔찍한 설정과 잔혹한 묘사로 유명한 작품이지만,
그보다는 독특한 캐릭터의 특별한 수사 방식에 더 눈길이 가는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사실
추리, 스릴러 장르의 책들을
많이 보는 편이지만, 유혈이
낭자한 잔인한 묘사가 많은 작품은 개인적으로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작품도 워낙 잔혹한 걸로 소문난 소설이라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어야
했는데, 포인트가 끔찍함
자체를 보여주려는 게 아니다 보니 그 외의 부분들이 더 인상적인 작품이었던 것 같다. 서사 자체가 탄탄하고, 후반부의 반전은 그야말로 전체 이야기를 쥐고 흔들어버릴 정도로
강력하고, 사건 현장과 범행
수법, 수사 과정 등이 매우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긴장감이 놀라운 스릴을 안겨주는 작품이었다.
그놈이 돌아왔어. 이봐 친구, 넌 이제 끝장이야.
세상에 우연 같은 건 없다. 수많은 복선들로 이루어진 이야기들이 겹겹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하나의 퍼즐로 완성이 되어야 이 모든 비극의 이유가 밝혀진다. '괴물 같은 작가의 악랄한
데뷔작'이라는 평가가 저절로
수긍이 될 만큼, 역대 가장
충격적인 반전을 만날 수 잇었던 작품이었다.
자,
이제 당신 차례이다.
괴물 같은 작가의 놀라운 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