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남긴 증오
앤지 토머스 지음, 공민희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이런 일을 난 많이 봐왔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누군가 죽게 되면 온갖 지옥이 펼쳐진다. 난 그동안 해시태그로 RIP를 달고, 블로그에서 퍼온 사진을 텀블러에 올리고, 모든 탄원서에 서명했다. 누군가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을 본다면 가장 큰 목소리로 세상이 알게 하리라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런데 당사자가 되고 나니 말을 하기가 너무 두렵다.    p.41~42

열여섯 흑인 소녀 스타는 총과 마약이 난무하는 가든 하이츠에 산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는 스타를 백인들이 다니는 사립 학교에 다니게 했다. 덕분에 스타는 부유한 백인 친구들 사이에선 학교에 단 두 명뿐인 흑인으로 살아야 했고, 방과후 동네로 돌아오면 흑인 친구들로부터 잘난 체 한다는 오해를 받아야 했다. 이쪽에도, 저쪽에도 완전히 소속되지 못하는 것처럼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당당했고, 진실했고, 긍정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파티에서 오랜 만에 만난 어린 시절 친구 칼릴을 만나 그와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들렸고, 순찰차가 차를 세웠다. 백인 경찰은 칼릴을 의심해 몸수색을 여러 번 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고, 그가 순찰차로 돌아간 사이 칼릴이 차 문 앞으로 와서 스타에게 괜찮냐고 묻는 순간, 갑작스레 총소리가 들린다. ! ! ! 칼릴의 등에서 피가 튀었고, 그는 그렇게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죽고 만다. 반항도, 무장도 하지 않았던 칼릴은 대체 왜 죽어야만 했을까?

수사는 당연히 백인 경찰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간다. 그들은 칼릴이 마약 거래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내세우며 그가 무기를 소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경찰이 흑인의 위협에 두려움을 무릅쓰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처럼 여론을 몰아간다. 진실을 알고 있는 건 그날 밤 사건 현장에 있던 스타뿐이다. 이런 류의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백인 경찰이 체포되지 않고 흐지부지된 사건이 처음인 것도 아니다. 당연히 가든 하이츠의 사람들은 킬릴의 억울함을 풀어 주자며 폭동을 일으킨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달라지는 것이 없으니까. 물론 현실은 그런다고 해서 크게 바뀌지는 않고 있지만 말이다. 스타는 고민한다. 현실과 맞서 싸울 것인가, 안전한 침묵을 택할 것인가. 그녀는 이것이 비단 자신과 칼릴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들과 같은 모습의 흑인들, 자신들처럼 느끼는 사회적 약자들 모두에 관한 거였다.

 

 

"맞아, 넌 용감해." 엄마가 포옹을 풀고 얼굴로 내려온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다. 엄마의 눈 속에 담긴 표정이 뭔지 설명할 수 없지만 엄만 날 잘 알았다. 그 눈빛이 날 감싸고 속에서부터 데워주었다.

"용감하다는 게 두렵지 않다는 뜻은 아니란다, 스타." 엄마가 말했다. "그 말은 두려워하면서도 헤쳐 나간다는 의미야. 그리고 넌 지금 그렇게 하고 있어."    p.337

이 작품의 제목은, 인종차별을 노래한 힙합 씬의 전설 투팍(2pac)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투팍은 말했다. '당신이 아이들에게 심어준 분노가 모두를 망가뜨린다(The Hate U Give Infants Fucks Everybody)'라고. 이 말의 앞 글자만을 따면 터그 라이프(THUG LIFE), 폭력배의 삶이다. 우리가 어릴 때 사회가 심어준 사상이 우리가 통제 불능이 되었을 때 오히려 사회를 공격하게 하는 거라는 이 말이 이 작품의 제목이 되었다. The Hate U Give, 당신이 남긴 증오. 불법적인 일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하층민의 삶, 사회적 편견과 증오가 그들을 폭력배 같은 삶으로 이끈다, 라고.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지만 여전히 사회 주류는 백인 남성이고 수없이 많은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나라이다. 소위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인종·계층에 대한 편견과 혐오는 사회 곳곳에서 차별로써 존재하며, 수많은 범죄와 부작용을 야기한다. 흑인이나 동양인의 감옥 수감율은 백인의 7배이고, 경찰로부터 총격을 당하거나 체포되는 비율도 두 배 이상 높다. 이 작품은 이러한 차별과 혐오에 대해서 그리고 있다. 매우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열여섯 소녀의 시선으로 펼쳐지는 서사 자체는 어둡지 않다. 사회적으로 무시당하는 사람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며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굉장한 작품이다.

앤지 토머스의 데뷔작인 이 작품은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을 토대로 쓰였다고 한다. 그녀는 마약 판매와 총기 사건을 보면서 자랐고, 대학교 졸업반일 때 무장하지 않은 흑인 청년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총을 맞고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과거를 말하기 시작했고, 그가 과거에 한 잘못 때문에 그런 일을 당했을 거라는 식으로 말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격노하며 미국 전역에 시위로까지 번졌고, 이 사건은 수많은 시민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고 청소년들의 인권 의식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 사건에서 비롯되어 탄생한 이 작품은 문학 에이전시에서 60번이나 원고를 거절당했지만, 출간이 되고 나서는 뉴욕 타임스와 아마존 1위에 오르고, 2017.2018 2년 연속 아마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 되었고,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투팍의 묘지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고 한다.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생각에 불을 붙일 수는 있다고 장담한다."

이 작품이 누군가에게 작은 불씨가 될 거라고, 세상이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될 거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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