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의인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2
에드거 월리스 지음, 전행선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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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런던 시민이 익히 보아왔던 것과는 매우 다른 독특한 범죄 공보였다. 지명수배자들에 관한 추가적인 묘사는 없었고, 그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초상화도 없었으며, ‘마지막으로 목격되었을 때, 짙은 파란색 서지 정장에 천 재질의 모자와 체크무늬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같은 전형적인 묘사도 적혀 있지 않았다. 적어도 그런 것은 있어야 지나가는 행인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법이다.    p.45

에드거 월리스는 영화킹콩의 원작자이자 코난 도일, 애거서 크리스티와 동시대에 사랑 받은 작가라고 한다. 생전 17편의 희곡과 957편의 단편, 그리고 170여 편의 소설을 남겼을 뿐 아니라, 160여 편은 영화로 제작되었고, TV시리즈로도 방영된 유명 작가라.. 국내에 이렇게 뒤늦게 소개된 것이 의아할 정도이다.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이라는 타이틀로 <트위스티드 캔들>에 이어 두 번째로 국내에 소개되는 작품은 <네 명의 의인>이다. 지금의 세련된 추리, 스릴러 소설 작법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추리의 빈도가 그렇게 높지 않고, 20세기 초반의 대중작가들이 만든 작품 특유의 맛이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로 그런 부분 때문에 더 흥미롭게 읽히기도 한다.

<네 명의 의인>이라는 작품이 1905년에 발표되었다는 점을 인지하고 이야기를 읽는 다면 더욱 그렇다. 제목 그대로 이 작품은 정의를 실현시키려고 하는 네 명의 남자들이 벌이는 일들이 주요 플롯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이다. 극중에 신문 칼럼에 등장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들은 이 땅에 내린 정의가 부적절하다고 생각해서 자신들이 직접 법을 고쳐 정의를 실현하려 하고 있습니다." 권력을 남용하는 사람들이 처벌받지 않고 번성하는 세상에 환멸을 느껴, 일종의 자경단을 경성하여 스스로 악을 처단하고 정의를 실현한다는 얘기이다. 사실 이는 마블 영화의 슈퍼 히어로들을 비롯해서 현대에 우리가 만나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작품 속 영웅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들의 방식이 조금 덜 세련되었을 뿐이다.

 

경찰은 그들이 평범한 범죄자가 아니며, 한 번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면, 현재 그들이 레이먼 경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기울이는 세심한 주의는 전혀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정직함이 네 명의 의인의 가장 끔찍한 특징이었다.   p.111

네 명의 의인이라고 불리는 레온 곤살레스, 포이카르트, 조지 맨프레드, 그리고 테리는 영국의 외무부 장관 필립 레이먼 경 앞으로 여러 통의 협박 편지를 보낸다.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의로운 정치 난민을 본국으로 강제 송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외국인 본국 송환법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법안을 제출한 외무부 장관을 암살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외무부 장관은 이를 신문사에 제보하고, 기사를 통해 이들 4인조가 그 동안 저지른 범죄들의 목록이 밝혀진다. 2년 전 총격 사건 후 4인 중 한 명이 살해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4인 체제로 운영 중이었는데, 테리가 바로 새로 영입된 인물이었다. 그러나 테리는 나머지 세 명과 의견을 좁히기가 좀처럼 쉽지만은 않다. 개인의 이익이 아닌 정의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네 명의 의인의 정체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게 되는데, 사실 아무도 본 적이 없는 네 명의 남자를 찾는 일은 경찰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와중에 자신을 네 명의 의인 중 한 사람이라 밝히며 사면과 보상금을 요구하는 자가 신문사를 찾아가게 되는데.. 과연 협박을 받은 외무부 장관은 어떻게 될 것이며, 네 명의 의인은 무사히 자신들의 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을까. 이야기는 생각보다 술술 잘 읽힌다. 고전 추리소설이라고 해서 지루하다는 편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말이다. 지금이야 이런 주인공들의 설정이 특별하지 않게 느껴지지만, 이 작품이 무려 백 년 전에 발표되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놀랍기도 하다. 이 작품은 이후 속편이 계속 출간되어 전체 6편의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데, 다음 시리즈에서는 이들이 또 어떤 활약을 펼치게 될 지 궁금해진다. 투박하지만 정직한, 촌스럽지만 당시의 시대상이 느껴지는, 그런 고전 추리소설이 궁금하다면 에드거 월리스의 작품을 만나보길. 엄청난 다작을 했던 작가답게 결코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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