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익끼익 하는 소리가 나더니 펭귄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 펭귄은 우리가 있건 말건 개의치 않고 아장아장 저수지 가장자리까지 다가와서는 그리스
철학자같이 서서 가만히 있었다.
"뭘 하는 거지?
우치다가 말했다.
"저 펭귄들은 어디서 온 걸까?"
"몰라."
나는 우치다에게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p.71~72
<펭귄 하이웨이>는 오늘 동명의 애니메이션이 극장판으로
개봉되었다. 그에 맞추어 원작
소설도 이번에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는데, 애니메이션 이미지를 표지로 하고 있어 더욱 산뜻하고 귀엽다.
게다가 이야기의 주인공 아오야마는 초등학교 4학년생으로,
매일같이 노트에 많은 것을 기록하는 메모광에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자칭이지만) 어른스러운 소년이다. 아오야마는 교외에 있는 작은 도시에 살았는데,
어느 날 아침,
학교에 가는 길에 갑작스럽게 펭귄 무리들을 만나게 된다.
아니, 우리
동네에 어떻게 펭귄이?
아이들은 누구 하나 꼼짝하지 않았고, 뜬금없이 나타난 펭귄들은 왠지 먼 혹성에서 이제
막 지구에 도착한 우주 생명체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쨌든 그것들은 진짜 펭귄이었고,
나중에 알아보니 남극과 그 주변 섬에 서식하는 종이었다. 당연히 교외의 주택가에서 서식하는 새가
나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어떻게 펭귄들이 주택가
한가운데 나타나게 된 것이며, 어디에서 온 것일까. 떼거리로 나타난 펭귄은 곧 사라져 버리기도 하고,
그러다 아오야마는
'펭귄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펭귄 하이웨이'
연구에 착수해 펭귄에 대한 수수께끼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게 된다. 조용하고 평화롭던 마을은 펭귄이 나타난 이후 시끌
벅적, 믿기 어려운 일들이
하나씩 생겨나면서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판타지의 무대로 변하게 된다.
나는 무척 일찍 일어나서 이제 막 날이 밝은 거리를 홀로 탐험한다. 그럴 때,
우리 도시는 텅 비어 있어서 나는 당장이라도 세계의 끝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세계의 끝을 향해 매우
빠르게 달려갈 작정이다. 사람들이 도저히 쫓아오지 못할 정도로 빨리.
세계의 끝으로 통하는 길은 펭귄 하이웨이다. 그 길을 따라가면 다시 한 번 누나를 만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것은 가설이
아니다. 나의
신념이다. p.419
치과 누나의 가슴에 대한 호기심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단것을 좋아하며 아홉 시만 되면 졸음을 참을 수 없는 소년과 이유 없이 며칠씩
연락이 두절되고, 아무렇지도
않게 특별한 능력을 보여주기도 하는 쿨하고 신비로운 누나를 비롯해서 펭귄 사건 이후 아오야마와 함께 마을을 탐험하는
친구들까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모두 당장이라도 페이지 바깥으로 걸어나올 것처럼 생생하다.
체스 판에서 박쥐가 피어 오르고, 우산에서 망고가 열리고, 흰긴수염고래가 수로를 헤엄치고, 숲 속에서 '바다'가 발견되는 등 말도 안 되는 온갖 판타지가
난무하는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아기자기하고 유머스러운 코드를 잃지 않아 어느 정도 현실에 발을 내딛고 있는 기분이 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이야기는
언제나 교토를 배경으로 펼쳐졌는데, 이번 작품은 이례적으로,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아기자기한 교외 도시를 배경으로 그려지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그의 대표작인
<유정천 가족>,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등과 최근작인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 등의 작품들 모두 어딘가 유쾌하면서도
기묘한, 그리고 현실을
넘나드는 매혹적인 판타지와 특유의 이야기꾼다운 문체와 스토리를 선보였었다.
이번 작품 역시 모리미 도미히코 특유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종횡무진 마구
달려가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읽어 왔던 SF소설과는 전혀 다른 식으로 전개되는 판타지라 풋풋한 성장 소설 같기도 하고, 따뜻한 판타지로 읽히기도 한다. 줄거리만 보자면 조금
이상하지만, 그럼에도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뭉클하고 여운이 남는, 그래서 잊지 못할 잔상을 만들어 내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