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 24시 - 상
마보융 지음, 양성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암흑 세상의 통로를 걷다 보니 마치 동굴 미로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간간히 어디서인가 흐느낌과 비명이 들려와 흡사 지하 감옥 같기도 했다. 요여능은 장안성의 암흑 세상에 발을 디뎠다는 생각에 극도로 긴장했다. 장안성의 암흑 세상은 피비린내와 탐욕이 가득했다. 이곳은 법도, 도덕과 정의도 통하지 않는, 아수라도처럼 잔혹한 세상이다. 여기에서 살아남은 자는 가장 간악한 인간이리라. 이때문에 관부에서도 이곳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p.142~143

중국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였던 당나라의 서울이 바로 '장안'이다. 장안은 인구가 100만 명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 도시였다. 작가인 마보융은 장안을 가리켜 '시공의 한계를 뛰어넘는 매력적인 도시, 고전과 현대적 요소를 두루 갖춘 곳'이라고 말한다. 그는 양한 가능성을 품은 이 도시는 창작자가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매우 이상적인 무대라고 생각했고, ‘천보 3재 원소절, 장안에 큰불이 있었다는 역사서 속 짧은 기록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고대 국제도시를 배경으로 한 대테러전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이 작품은서양에 로마가 있다면 동양에는 장안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찬란했던 대도시 장안에서 일어난 하루를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분량이 만만치 않다. 상권이 600페이지가 넘고, 하권도 500페이지가 넘으니 말이다.

마보융은 역사서에서 기록된 사건을 입체적으로 재현하고, 허구의 인물과 실재했던 역사 속 인물들을 함께 등장시켜 개연성 뛰어난 팩션을 만들어냈다. 수많은 인종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그곳에 있었던 다채로운 문화와 여러 모습의 가지각색 인생들을 그려내고 있어서인지, 이렇게나 두툼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단 한 페이지도 지루할 틈 없는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중국의 히가시노 게이고라 불린다고 하던데, 그야말로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훌륭한 작품이다. 화제의 드라마 <장안십이시진> 원작 소설이기도 하다는데, 책을 읽는 내내 바로 눈 앞에서 장면들이 보여지는 것처럼 생생한 작품이라 영상화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당황스러운 질문을 받은 요여능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갈등했다. 교활하기 이를 데 없는 질문이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당연히 도리에 어긋난 일이지만 가만히 있으면 더 많은 사람이 죽게 된다. 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프고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한 명을 죽이면 백 명을 살릴 수 있어. 한 명을 죽이겠는가, 백 명을 죽게 내버려둘 텐가?  p.202~203

서역의 위협에 대비해 조직된 특수기관 정안사는 장안을 불바다로 만들려는 돌궐의 테러 계획 정보를 입수한다. 하지만 작은 실수로 늑대 전사들의 적장인 조파연을 놓치게 되고, 정안사의 젊은 수장 이필에게 문서관리를 맡고 있는 서빈이 적임자를 추천한다. 만년현 불량수로 9, 무소불위의 전직 수사관이자 현재는 상관을 살해해 사형수 신세인 장소경이었다. 그가 수색과 체포에 관한 한 장안 최고라는 말에 이필은 장소경을 석방해 파격적으로 그를 기용한다. 천재 관료 이필의 지략과 장안 108방을 훤히 꿰뚫고 있는 장소경의 활약으로 돌궐의 테러를 막고 그 배후 세력을 파헤치는 스토리는 대체 어느 부분이 클라이막스인지 모를 정도로 끊임없는 긴장의 연속이다. 모종의 암살 집단, 장안사 내부의 첩자, 조정의 반대파와 장안 뒷골목의 세력까지 더해지면서 곧 장안성에 닥칠 재앙에 대한 무시무시한 폭풍이 시작된다. 특히나 대화재를 막을 시간이 앞으로 몇 시간 남지 않았다는 제한 조건이 주는 압박감이 매 페이지마다 더욱 긴박감 넘치는 스릴을 만들어 내고 있다.

특히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해서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있는데, 목적을 위해서라면 최소한의 인간의 도리나 의무도 필요 없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장소경과 곁에서 그를 감시하면서 점차 그에게 설득되어 가는 요여능, 그리고 당 조정 최고의 인재인 이필 등 저마다의 대의와 신념, 야망이 혼란의 도시 장안에서 한데 뒤섞이면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호색한, 사형수, 오존염라, 여자를 사지에 몰아넣지 않는 군자, 혹독하고 무자비한 관리, 능력자, 정의로운 협객.. 이 모두가 겨우 몇 시간 동안 장소경이 보여준 모습들이다. 그와 함께 행동하는 이들은 여전히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게나 한 작품에서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던 캐릭터가 있었나 싶게 장소경은 독특한 인물이다. 과연 이들은 24시간 내에 위기의 장안성을 구할 수 있을 것인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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