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외딴 성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서혜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8월
평점 :
품절


고코로에게는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었다.

'사나다 미오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해주세요.'

비 냄새를 비웃은 그 애가 고코로 앞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소원이 고코로의 등을 밀기라도 하는 양, 고코로는 양손을 거울 표면에 대고 마치 성문을 밀어젖히듯이 힘껏 밀었다.   p.81

중학교 1학년인 고코로는 입학한 첫 달인 4월만 학교를 가고 그 뒤로는 가지 않고 있다. 등교거부아들을 위한 마음의 교실이라는 스쿨에도 가기로 했다가 아침이면 배가 아파 가질 못한다. 학급의 중심인 미오리네 그룹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나서부터 고코로는 학교가 싫어 졌다. 그리고 이제는 학교뿐만 아니라 아예 집 밖에도 나갈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매일 방에서 텔레비전만 틀어 놓고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방에 있던 전신거울이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한다. 이상하다 싶어 손을 뻗자 그대로 거울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만다. 그곳은 마치 서양 동화에서나 볼 법한 웅장한 성문이 달려있는 성이었다. 늑대 가면을 한 어린 소녀가 어안이 벙벙해있는 고코로에게 말한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이 성에 초대받으셨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성으로 들어오게 된 일곱 명의 아이들에게 늑대가면의 소녀는 성의 규칙에 대해 설명한다. 오늘부터 내년 3월까지 이 성 안에서 소원의 방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찾아내면, 그 한 사람은 원하는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성은 오직 그 기간 동안만 열려 있고, 기간 동안 열쇠를 찾아내지 못하면 열쇠는 소멸, 그 안에 누군가 열쇠를 찾아 소원을 이루면 성은 닫힌다. 매일 성이 열리는 것은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이며, 이후에는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고 그 후까지 성에 남아 있으면 늑대에게 잡아 먹힌다고 한다. 추리닝 차림의 얼짱 남자아이, 포니테일의 똑 부러진 여자아이, 안경을 낀 성우 목소리의 여자아이, 게임기를 만지작대는 건방진 남자아이, 주근깨투성이의 차분한 남자아이, 조금 살찌고 마음 약해 보이는 남자 아이, 그리고 고코로. 이들은 대체 왜 이곳에 불려온 걸까.

 

"기껏해야 학굔데 말이지."

"기껏해야 학교?"

".'

고코로는 놀라운 그 말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학교는 자신의 전부였기 때문에 가는 것도 안 가는 것도 굉장히 괴로운 일이었다. 도저히 '기껏해야 학교'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p.480

영미권의 소설이었다면, 이러한 초기 설정 이후 이야기는 소원의 방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일곱 명의 아이들 간의 서바이벌로 진행될 것이다. 소원의 방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소원을 이루는 자도 단 한 명뿐. 게다가 어떤 이유로 불려온 지 알 수 없는 너무도 다른 개성과 스타일을 소유한 일곱 명의 아이들이 모였으니 자연스레 경쟁 구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츠지무라 미즈키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아마도 저자가 교육학을 전공했고, '일 년 내내 매일 즐겁게 학교에 가는 학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가야 하는 곳이 자신을 벼랑으로 내몰고 목숨까지 끊고 싶을 정도의 마음이 들게 만든다면 도망쳐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그럴 것이다. 어른들의 시선으로 등교거부 학생을 바라 본다면, 어딘가 문제가 있는 사람 혹은 게으르고 꾀병을 일삼는 무기력한 사람 내지는 사회 부적응자, 낙오자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츠지무라 미즈키는 그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 본다. 학교가 싫은 사람은 싫어해도 괜찮다고. 죽을 만큼 학교에 가는 것이 힘들다면 도망쳐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다.

누구나 한번 쯤은 내가 속해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누구에게 기댈 수도 없고, 타인에게 상처 받고, 마음속으로는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현실 속에서 고립되는 듯한 느낌도 들고, 지독하게 외로울 때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봐 주고, 이해해주고, 나와 비슷한 상처를 경험해 봤던 이가 공감해주고, 마음을 다독여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등교 거부 중인 현실과 거울 속 세계인 환상을 넘나 들며 펼쳐지는 이 작품은 바로 그런 판타지를 따뜻하고 뭉클하게 그려내고 있다. 판타지스러운 설정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이고, 또한 너무도 세심하게 인물들의 심리를 그려내어 감정 이입할 수 있도록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거울 속 세계의 정체, 그리고 과연 누가 소원의 이룰 수 있는 열쇠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 뿐만 아니라 왜 하필 일곱 명의 학생들이 선택된 것인지, 그들 각각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고코로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미스터리로서도 너무 매혹적인 작품이고, 우리 모두 한 때 겪었던 시기를 거쳐가는 한 소녀의 성장 소설로도 너무나 훌륭하다. 특히나 후반부에 가서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에는 정말 왈칵 눈물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 감동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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