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목사님이
화재 현장에서 제대로 빠져 나오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금식 탓이 클 거예요.
장로님 말씀대로 목사님은 그날부터 계속 금식하면서 기도했으니까요. 밤늦게까지 교회에 머무르는 날도
많았고.... 주일예배 설교할
때도 보니까 얼굴이 거무튀튀하고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는 게....
좀 조마조마했거든요.
저러다가 쓰러지고 말지,
저러다가 큰 병 나고 말지... 제가 그만두시라고 말씀 드리려고 했는데.... 그 와중에 화재가 나버린
거예요. P.61
한적한 시골 마을 목양면의 한 교회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여전히 화재가 발생한 원인은 오리무중이다. 이야기는 화재의 원인을 추리하는 마을 사람들
각각의 증언을 통해서 진행된다. 다들 각자의 상황에서, 각자 주관적으로 알고 있던 정보들과 경험한 일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거라 모두 제각각이다. 하지만 분명 화재는 인위적인 사고로
보이고, 누군가 일부러
그랬다면 과연 누가 방화 사건을 저지른 것일까.
열두 명의 서술자들은 마치 경찰에게 취조를 당해 자백을 하는 듯한 느낌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는데, 결국 화재 사건의
범인은 밝혀지지만, 이 소설의
미스터리는 방화를 누가 일으켰는지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번 화재로 사망한 이들 중에
지하 1층 교육관에 혼자
있었던 최요한 목사도 있었다. 그는 이 교회를 세운 최근직 장로의 아들이다.
그리고 최근직 장로는 젊은 시절 사고로 아내와 아이들을 잃고 극도의 절망 속에 스스로 생명을
놓을 결심을 했으나 하나님을 만난 이후 제2의 삶을 사는 인물이다. 누군가는 바로 그 최요한 목사가 스스로 불을 냈다고 하고,
누군가는 당시 금식 중이어서 화재 현장에서 제대로 빠져 나오지 못했을
뿐이라고, 누군가는 그가
모범생 스타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일도 혼자 속으로 삼키고 기도하는 그런 성격이라고, 또 다른 이는 목사를 그 새끼라 부르며 애 엄마에게 푸념을 늘어 놓으며 자신의
언니에게 수작을 걸었다고 한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목양면 방화 사건의 숨겨진 전말은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그 목사가 그런 거라죠? 그 새끼가 불낸 거라죠? 내가 그 새끼가 무슨 큰 사고 칠 거 같아서 불안 불안했는데.... 지난달에도 언니한테 이사가자고 했는데... 씨발, 추석만 지나면 알아보려고
했는데... 좆같은
새끼... 죽으려면 지혼자
뒤질 것이지....
진정이 안 되니까 이러는 거
아니에요.... 뭘 아직
몰라요? 조사하고 말고 할 게
뭐 있어요? 불이 거기에서부터
난 거라는데.... 어후, 나 진짜
속에서 열불이 뻗쳐서.... 진짜로 막 여기가, 내 가슴이, 막
다 타버릴 거 같다구요! P.65~66
이번 이기호 작가의 신작에는 '욥기 43장'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기호 작가는 꽤
오래 전부터 <욥기>의
후속편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그가 읽은 구약 속 욥은, 자신의 자식들이 고통 속에서 죽은 뒤에도 여호화의 이름을 찬송하는 이상한 아버지였기에, 젊었을 때도 나이가 들어 아버지가 된 후에도 여러
번 읽었지만 좀처럼 욥이라는 인물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전체
42장으로 이루어진 성경 「욥기」의 번외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욥을 이해할 수 없는
마음으로,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과연 그는 자식을 두 번이나 잃는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하나님의 뒤로 숨어버린 현실의 욥을 어떻게 그려내고
있을까. 이 소설은 총 열두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장은 모두 다른 열두 명의 서술자가 등장하여 방화 사건의 원인에 대해 추리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흥미로운 건 작가가 열두 명의 증언자 중 하나로
하나님을 세우고, 신성이 아닌
하나님의 인성을 드러내며 절대 신의 존재를 희화화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하여 무거운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이기호 특유의 유쾌함이 종교를 잘 모르는 이들도 술술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게 만들고 있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그 다섯 번째 작품은 이기호 작가의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이다.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편혜영 작가를 시작으로
박형서, 김경욱, 윤성희
작가에 이어 이기호 작가의 작품까지 출간이 되었다.
이 시리즈는 매월
25일 출간되는 월간 핀이기도 한데, 이후에 이어질 작가들의 라인업 또한 매우 기대감을 갖게
한다. 정이현, 정용준, 김금희, 김성중, 손보미
등...현재 한국 소설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이기도 해서 핀시리즈로 만나볼 그들의 작품이 손꼽아 기다려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