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비행 夜間飛行 - 홍콩을 날다
이소정 지음 / 바른북스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2047. 홍콩이 중국에 영구 귀속되는 해이다.

그러므로 홍콩이라는 유통기한 짧은 단편영화를 하루라도 빨리 보길 원한다면, 서둘러야 한다. 홍콩은 수천 개의 유기물이 용솟음치는 작은 용암이며, 거대한 비디오아트이며, 온갖 언어와 냄새와 표정과 추억이 떠다니는 섬이다.   P.7

홍콩, 어느 골목에서는 <중경삼림>을 만나고, 어느 식당에서는 <화양연화>, 어느 밤거리에서는 <천장지구>가 떠오르는 나라이다. 내가 홍콩에 여행을 다녀온 지 어느 새 십 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홍콩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에서 홍콩까지의 거리는 1,292마일, 세 시간 반 조금 넘는 비행시간, 한 시간의 시차. 한 번쯤의 터뷸런스를 견디고 열 번쯤의 건조함을 이겨내면 후덥지근한 공기와 마주하게 되는 그 곳. 홍콩이라는 가깝고도 먼 나라에 내가 알고 있던 것들, 내가 미처 몰랐던 것들이 쌓여 책을 덮자 마자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저자는 오랜 시간 홀로 홍콩을 다니며 여행 일기를 쌓아 왔다고 한다. 그렇게 발품을 팔아 수집한 정보들은 그녀의 홍콩에 대한 애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수년 간 취재한 홍콩에 대한 정보와 감상으로 탄생한 이 책은 여느 여행 에세이와는 전혀 다른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화양연화, 아비정전, 희극지왕, 타락천사, 캐리비안의 홍콩섬, 열혈남아 등... 홍콩의 옛 영화들을 거리로 불러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있는 이 책은 '여행 가이드'가 아니라서 더 매력적이었다. 

 

홍콩을 생각하면 몰려드는 거대한 이미지들. 그건 어느 오래된 단편영화 같기도 하고, 미숙한 바느질로 엮어놓은 천쪼가리 같다. 사자성어를 영어로 풀이해 놓은 작은 책의 페이지, 코카콜라 박스를 뒤집어 식탁으로 스는 사람들, 빙글빙글 손잡이를 돌려 열어야 하는 빨간 택시와 창문으로 보이는 금빛 빌딩들.... 이 모든 걸 찢고 오리고 붙이고 매달아서 거대한 콜라주를 만들고 싶다.   p.85~86

계획 없이 무작정 홍콩에 왔던 날, 눈 감고도 다닐 수 있는 침사추이였지만 적당한 가격의 숙소를 찾기가 어려웠다. 결국 돌고 돌아 어느 허름한 건물 5층에 있는 숙소를 찾았는데, 창문 하나 제대로 없는 답답한 방과 족히 30년은 되어 보이는 엘리베이터를 보면서도 저자는 생각한다. 꼭 홍콩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고급 호텔이 줄 수 없는 이런 불안한 느낌이 자신을 영화 주인공이 된 것처럼 만든다고 말이다. 그리고는 언젠가 너무나 지쳐 창 밖을 볼 힘도 없을 때, 사진 속 왕페이와 양조위의 눈빛이 나를 구원해 주겠지, 하고 가져온 사진들을 꺼낸다. 감기 때문에 쓰러져 자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그렇게 그녀는 양조위가 거닐었을 법한 거리를 찾기 위해 또 한 번 기운을 내서 밖으로 나간다.

대부분의 이러한 에피소드들이 독자인 내가 느끼기에도 정말 영화 같다는 느낌이 물씬 풍겨서 너무 설레었다. 사실 홍콩은 여행지로서는 이미 너무 많이 알려진 나라이고,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가본 곳이다. 대충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홍콩에 관련된 수많은 정보들이 뜨고, 주변에 홍콩 한 번 안 가본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 책 속에서 보여지는 홍콩은 완전히 새롭다. 저자의 애정 넘치는 시선으로 바라본 홍콩은 너무도 매력적이고, 너무도 깊이 있고, 향수에 빠지게 만들고, 영화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그야말로 책을 덮자 마자 홍콩행 티켓을 끊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그런 책이다. 다시, 홍콩에 가야겠다. 저자처럼 새벽의 고요한 홍콩을 맞이하기 위해, 야간비행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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