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
구스미 마사유키 지음, 최윤영 옮김 / 인디고(글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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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에 비하면 스테이크는 갱단 같다. 언뜻 보기에도 악역 느낌이다. 검은 가죽 장갑을 끼고 있는 듯하다. 그 속에 큰 금반지도 끼고 있는 듯하다. 반면에 돈가스는 새하얀 목장갑이 어울릴 만한 좋은 사람 같다.

요전 날, 밤새 일하기에 앞서 주저 없이 돈가스 정식으로 배를 채웠다. 배를 채우다. 이 얼마나 남자다운 말인가. 가게는 이미 정해져 있다. 카운터 자리로만 된 돈가스 정식집이다. 드르륵(격렬하게 미닫이를 여는 소리).  P.30

하루 종일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쳤던 마음과 온갖 스트레스들이 저절로 사라지는 기분도 드는 순간이란 바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달콤한 무스 케잌과 바삭한 크루아상, 뜨끈한 갈비탕과 칼칼한 김치찌개, 시원한 생맥주에 바삭한 군만두.. 뭐라도 좋을 것 같다. 생각만 해도 침샘이 고이는 그 음식들을 한 움큼 떠서 입으로 가져가는 순간, 무슨 일이 있었든 상관없어. 괜찮아. 라는 마음이 들테니 말이다. 그렇게 음식은 우리를 잠시나마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데려가 주곤 한다. 지금 내 상황이 어떤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문제 거리들이 얼마나 쌓여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일이 또 오늘 같이 반복될 거라는 거라는 걸 생각하면 얼마나 지루한가. 거기다 오늘도, 내일도 늘 비슷한 반찬에 끼니를 때우기 위한 식사가 된다면 일상을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낙이 사라지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이런 책이 필요하다.

이 책은 <고독한 미식가> <낮의 목욕탕과 술> 등으로 먹는 행위의 즐거움을 재미있게 알려 주었던 구스마 마사유키의 본격 '식욕 자극 에세이'이다. 특별한 음식들이 아니라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들이라 더욱 와닿고, 아는 맛이라 더 군침이 돌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고기구이, 라면, 돈가스, 샌드위치, 카레라이스, 오니기리, 단팥빵, 튀김덮밥, 메밀국수 등등... 26가지 일상의 음식들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스스로를 매일 먹는 생각만 하는식탐 아재라고 소개할 정도라서, 그가 음식을 대하는 자세에서 묻어나는 순수한 즐거움이 글에도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다. 식재료가 가장 맛있는 계절. 그 음식을 맛있게 먹는 자신만의 순서, 잘 어울리는 음식 조합, 음식에 얽힌 추억까지... 애정 넘치는 그의 입담에 읽는 내내 군침이 돌고 배가 고파지고 말았다. 저자 역시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배가 고파 온다며, 그런 창피스러운 자신의 식탐을 숨김없이 글로 담았다고 한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나왔다. , 먹어 보자. 뭐부터 먹을까. 나는 대체로 오징어 먼저. 앞니로 충분히 잘리는 이 부드러움. 통통하니 두껍다. 그리고 밥. 그렇지. 폭신폭신하다. , 맛있다. 다음 보리멸. 이게 또 가볍고 담백하니 기가 막힌다. 매콤한 양념과 튀김옷이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다.

새우. , 이건 탱탱한 게 좋은 새우군. 맛있네. 그래도 딱히 특별 대접하지 않는다. 나는 평등하게 먹어 나간다. 절임채소로 입가심 그리고 된장국 한 모금. 여기서 처음으로 한숨을 돌린다. 무의식중에 앞으로 고꾸라져 있던 허리를 편다. , 행복하다.  P.181

고기구이에는 반드시 흰 쌀밥과 함께 여야 하고, 고깃집에서는 맥주를 무조건 병으로 주문해야 한다. 생맥주잔처럼 무거운 걸 들고는 움직임이 둔해서 고기를 대할 수 없다나. 라면을 먹을 때는 테이블 자리보다는 카운터 자리가 좋고, 돈가스를 맛있게 먹으려면 돈가스 양의 최소 다섯 배 이상의 양배추가 필요하다고 한다. 양배추를 인색하게 아끼는 돈가스집은 지옥에 떨어져야 한다는 말도 서슴치 않는다. 카레라이스는 본격적으로 먹기 전 후각으로 매콤한 감칠맛을 먼저 느껴보면 좋고, 식은 카레와 뜨거운 밥의 조합은 야식으로도 그만이다. 오니기리는 역시 바깥에서 먹어야 제맛인데, 청명하게 펼쳐진 풍경이 보이는 장소를 찾아 먹으면 더할 나위 없단다. 가끔 나 자신만을 위한 호사를 누리고 싶은 날에는, 무리해서 비싼 장어찬합을 뻔뻔스럽게 먹으러 간다고. 거기다 그런 무리함을 비웃지 않고 정중히 받아들여 주는 것이 장어찬합이라는 음식의 용기가 지닌 도량이라며, 그래서 고급 레스토랑에서와는 달리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굉장히 진지한데 유머러스하고, 마치 음식이 내 눈앞에 놓여 있는 것처럼 생생하면서도 상상의 여지를 주는 풍경이 그려져 마음을 쏙 빼앗기게 만드는 책이다. 솔직하다 못해 거침없는 식탐에 대한 고백이 너무도 절절해서 공감, 또 공감하며 읽었던 것 같다. 음식에 대한 글 위주로 풀어낸 에세이 형식이지만, 곳곳에 해당 음식의 일러스트가 있고, 각 장마다 네 컷 만화가 수록되어 있어 더욱 흥미진진했다. 정신 없이 가족들 뒷바라지를 하고 난 후 한숨 돌리며 마시는 커피 한 잔, 직장인들에게는 이런 저런 스트레스를 털어낼 수 있는 유일한 낙인 점심, 그리고 오늘 하루도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과도 같은 저녁까지.. 우리의 일상은 매 순간 먹고, 마시는 행위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우리를 내일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자 위로와 응원이기도 하고 말이다. 저자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일이야말로 일상 속최고의 힐링이라고 이야기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식탐 만세!!' 다른 걸 조금 양보하고,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먹는 즐거움은 절대 포기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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