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 여성으로서의 내 모습들을 후회할 때가 종종 있다.
수많은 모습들이
있었다. 딸, 언니 혹은
누나, 경찰, 거친
동료, 다양한 종류의 나쁜
년, 버림받은
연인, 이상적인
아내, 영웅, 살인자. 난
진실을 말하는 데 능숙하므로, 그 모든 모습들에 대한 사실을 곧 말해주겠다.
비밀을 지키는 것과 거짓말을 하는 것은 똑같은 기술을 필요로 한다. 둘 모두 습관이 되고 거의 중독이 되어서 심지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상대할 때도 그 중독성을 피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자신의 나이를 스스럼없이 알려주는 여자는 절대 믿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런 비밀조차 지킬
수 없다면, 당신의 비밀도
지키지 못할 테니.
브리짓 퀸, 59세, 그녀는
전직 FBI 요원으로 현재는
결혼 후 남편과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가 특수 요원으로 일하던 당시, 160센티미터의 키에 금발머리, 10대 치어리더와 같은 몸매로 인신매매범이나
성범죄자들의 미끼 역할을 하는 위장 업무를 주로 했었다.
하지만 척추 몇 개를 접합해야 했던 사고로 인해 위장 업무를 더 이상 할 수
없었고, 은퇴가 가까워질 무렵
비무장 상태의 범인을 죽이는 바람에 윤리 위원회의 내사와 범인의 가족들과의 소송까지 겪어야 했다. 퇴직 후 생활 역시 평탄하지
못했지만, 상담사의 조언으로
대학에서 불교학 수업을 청강하다 만난 지금의 남편으로 인해 결혼과 함께 과거는 묻어두고 이상적인 아내로 사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과거는 결코
그녀를 놔두지 않는다.
66번 고속도로 살인마로 불린 연쇄살인범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66번 고속도로
살인사건은 그녀가 맡았던 사건들 중 가장 규모가 컸던 사건이자,
결국 미제로 남았던 사건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가르치고 지시했던 젊은 FBI 요원이 범인의 마지막
희생자였고, 아직까지 그녀의
시체조자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잡힌 용의자 플로이드 린치의 자백에 미심쩍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
FBI 특수 요원 로라 콜먼은 당시 사건 지휘자였던 브리짓 퀸에게 도움을
청한다. 우연히 잡혀서
연쇄살인마임을 자백한 남자, 과연 그가 정말 66번 고속도로 살인마일까? 혹은 모방범일까? 아니라면 어떻게 그가 진범밖에 알 수 없는 사실들을 알고 있는 것일까.
이것이 바로 다수의 피해자 유족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사건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잦아들고 영화가 끝난 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당신이 보지
못하는 부분들 말이다. 나쁜
사람이 잡히면 가족들 역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마침내 정의가 실현되었다며 일을 종결짓고, 형사 역을 연기한 배우들은 뒤돌아 멋지게 카메라 밖으로
사라진다. 또한 극을 보고
있던 관객들은 들고 있던 팝콘을 버리고 기름기 묻은 손가락을 옷자락에 닦으며 집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어둠이 내린 뒤 자신의 집 차고로 들어서며
혹시라도 차 뒤에 누군가 숨어 있지 않을까 상상하며 약간의 공포감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당연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삶은 전과 똑같이
이어진다. 랄랄라.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중년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전직 FBI 요원 브리짓 퀸은 은퇴한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맨 손으로
건장한 남자를 제압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남편인 카를로에게 자신이 얼마든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애써 평범한 일상을 살아왔다. 그런데 나이 든 여성들만을 노리는 성범죄자에 맞서다 우발적으로 그만 그를 죽이고 만다. 물론 정당방위였다. 하지만 그녀는 망설인다. 범죄 현장과는 전혀 상관없는 평화로운 세계에서
살아온 남편의 삶을 깨트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시체를 사고처럼 위장하고 현장에서 자신의 흔적을 지운다. 그리고 그 돌이킬 수 없는 선택으로 인해 그녀의
삶은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이 꼬이게 된다.
저자인 베키 매스터먼은 과학수사
분야에 관한 원고를 검토하는 편집자로 활동했던 이력 때문인지 이 작품이 데뷔작인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탄탄하다. 연쇄 살인범 사건 수사에 대한 플롯은 스릴 넘치고
속도감 있게 전개되고, 나이
든 전직 수사관의 내적 갈등이 섬세하고 리얼하게 그려져 있어 스토리에 깊이를 더해준다. 그리고 끔찍한 범죄가 지나가고 난 뒤의 시간들과 범죄 피해자들의 남겨진 삶에
대해서도 객관적이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작품 속에 담아 내고 있다.
브리짓 퀸이 등장하는 시리즈가 이후에도 더 출간되었다고 하니, 국내에서도 이어서 계속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