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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노는 정원 - 딱 일 년만 그곳에 살기로 했다
미야시타 나츠 지음, 권남희 옮김 / 책세상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부엌 창으로 보는 전망이 좋은 것도 관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매일 기분 좋게 부엌에 선다.
마을주민회 어머니부에서 홋카이도 사슴 고기로 만두를 만든 체험도 영향이 있을지
모른다. 음식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다. 홋카이도 사슴을 쏜다. 피를 빼고 해체한다. 그 고기를 간다. 만두피를 만들고 만두소를 넣어 찌고.
남편이 홋카이도에 한번 살아보는 게 소원이라고 해서 미야시타 나츠와 그녀의 세 아이들은 아빠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남편과 그녀 였기에 홋카이도에서도 대자연속으로,
다이세쓰산국립공원 안에 있는 도무라우시라는 마을로 향한다. 그곳은 가장 가까운 슈퍼까지 산을
내려가서 37킬로미터나 가야
되고, 초,중학교는 병설
학교로 현재 학생은 모두 합쳐 열 명, 휴대 전화는 3개
통신사 모두 불통, 텔레비전은
난시청 지역이라고 한다. 과연
그런 오지에서 열네 살, 열두
살, 아홉 살의 아이들이 살고
싶어 할까. 그런데 예상과
달리 아이들은 눈을 반짝거리며 재미있겠다고 찬성이다.
그곳엔 고등학교가 없기 때문에 장남이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일 년 한정으로 가서 살기로
한다. 그리고 미야시타 나츠는
그곳 생활을 에세이로 쓰기로 했고, 이 책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신들이 노는 정원'이라 불리는 마을, 도무라우시에서 온 가족이 보내는 봄방학 같은 일 년은 과연
어떨까. 곰과
북방여우, 훗카이도 사슴 등의
야생동물들이 수시로 출몰하고 한겨울에는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그곳,
도시의 속도와 경쟁으로 이루어진 삶에 익숙한 그들이 과연 산골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까. 그런데
웬걸, 그곳에서 그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즐거움이 넘치는 나날을 보낸다.
우선 집에서 밥을 먹는 횟수가 급격히 늘게 된다.. 도시에 살 때는 일이 바쁘면 외식하는 일도
흔했지만, 여기서는 외식을
하려고 해도 식당이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산에서 내려가서 먹고, 다시 올라오려면 가볍게 두 시간 반이 걸리니 웬만하면 외식은 꿈도 못 꾸는 생활이다. 산책 길은 매일 같은 곳을 걸어도 날마다 시시각각
다르다. 그리고 처음으로
공기가 맛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맛있는 물처럼 순한 맛, 음표로 말하자면 도레미파솔 같은 맑은 맛이 나는 공기란 어떤 걸까. 5월인데도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보고 있노라면 크리스마스가 곧 다가올 거라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하늘엔
별이 쏟아질 듯이 많이 떠 있는 그 곳,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별이 빼곡하다니..
도시의 하늘에서는 꿈도 못 꿀 풍경이다.
돌아오는 길, 풍경이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길가에 난 초록색 풀이라고밖에 인식하지 않았던 덩어리가 자기주장을 시작한다. 왕머루야! 호장이야! 이런 일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오보에 음색을 알면 지금까지 들어온
교향곡에서 갑자기 오보에 선율이 두드러지게 들리고,
그 곡이 새로운 얼굴을 갖게 되는 것. 몰랐던 말의 의미를 접하면 문장의 깊이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울리는
것.
미야시타 나츠는 전작에서도 음악과 자연에 대한 편안하고 감각적인 묘사와 따뜻하고 선한 스토리가 너무 인상적인
작가였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10월부터 4월까지
내내 눈이 내리는 날씨라니 얼마나 추울까. 게다가 그곳은 한여름에 저체온증으로 등산객들이 잇따라 쓰러졌다는 조난 사건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초등학교는 물론 중학교에도 교복이 없어 각자
적당한 추리닝을 한 벌 입고 등요하는 학교라니.
근무하는 선생님들 역기 이런 오지로 부임을 자원한 이들답게 모두 괴짜로 아이들을 문화적으로
교육하겠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리고 이곳의 학교에는 불필요한 시험이나 숙제 대신 낚시와 캠핑,
등산 같은 모험이 매일매일 펼쳐진다. 세 아이들에게는 정말 그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최고의 학습 환경이
아니었을까. 아이들에게
자연이야말로 최고의 공부가 아닌가. 나도 미야시타 나츠 가족처럼, 가족끼리 꼭 끌어안고 딱 일 년만 이런 곳에서 살고 싶어 졌다.
특히나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이곳 산촌 마을의 모습이 너무도 부러웠다.
이곳의 입학식과 운동회,
학예회,
캠핑,
등산과 같은 학교 행사에서 보여지는 풍경이란 낯설지만, 한번쯤 경험해 보고 싶은 그것이었으니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의 눈으로 아이들의 성장 과정과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해 내고 있는 이야기라,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책이 될 것
같다. 이 책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 판타지보다
더 환상적인 현실을 그리고 있다. 특별한 사계절을 경험해 보고 싶다면,
평범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