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천명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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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은 천명관의 소설이 『고래』였는지, 『고령화 가족』이었는지 확실하진 않다. 비슷한 시기에 읽었는데 『고령화 가족』을 산 날을 기억한다. 약속이 있어 종로에 갔는데 시간이 남아 구경도 할 겸 교보문고에 갔다. 그날은 희한하게도 한국문학 서가를 찾았고, 문학상 수상작을 모아둔 책장 앞에 섰다. 뜨문뜨문 독서하던 때였지만 아마 한국 소설을 한 권 사려고 했던 모양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서가 구석에서 쭈구려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계산하고 마저 읽었다. 그 책은 『고령화 가족』이었다.


『고령화 가족』은 재밌지만 특별하지 않았다. 특별한 건 『고래』다. 설화·신화적 상상력을 전개하는 힘 있고 노련한 필치, 그야말로 수작이다. 근래 읽은 한국문학 중에 최고인데 내가 한국문학을 많이 접하지 않기도 하지만...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작품이 아니라 문장이다.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에서 성애를 묘사한, 다음 문장. “나는 어둠 속에서 미끈거리는 여옥이의 몸 안으로 남해의 푸르른 물결 하나를 밀어 넣었다.”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이토록 아름다운 문장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 책은 꽤 오래 절판이었고 얼마 전 재출간되었다.


나름대로 한국 소설을 읽어보려 했으나 그다지 끌리는 작품도, 인상 깊은 글도 없다. 아!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있구나. 내가 생각하는 천명관의 장점은 뛰어난 스토리텔링, 그 달변적 서사에 있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 역시 그러하다. 『고래』가 극장,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면 이 소설은 영화의 낭만이 저물어가는 시대를 그린다고 할까. ‘브루스 리’로 상징되는 시절, 그 때에 대한 향수 말이다.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던 이라 그런지 캐릭터와 장면묘사에 아주 뛰어나고, 그래서인지 포토제닉한 장면들이 많다. 흡입력에 관해서는 말하면 입 아프다.


주인공 권도운(삼촌)은 권씨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에서 눈총을 받는데, 그가 낫살 지긋한 이복형제들의 아들 뻘인 ‘서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워낙 인망이 두터웠던지라 도운의 존재는 더 충격으로 다가온다. 집안의 어른, 아버지의 아내가 그를 거둠으로써 수근대는 목소리는 잦아들었지만 그래도 눈칫밥 먹기가 어디 쉬운가. 나(권상규)보다 다섯 살 많은 삼촌은 수줍음이 많은데다 말을 더듬어 무시를 당하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불량배 도치와 시비가 붙고 그를 제압함으로써 삼촌을 보는 눈빛들이 조금씩 달라진다.


집에서는 나름대로 삼촌에 대한 미래 계획이 있었다. 농고를 졸업하면 적당한 때 결혼시켜 논을 몇 마지기 떼어주고 독립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삼촌은 꿈이 있었다. 바로 브루스 리 같은 무도인의 길을 걷는 것! 그러나 뒷산에서 홀로 연마한 무술에는 한계가 있었다. 여튼 고교 졸업 후 징집을 기다리던 삼촌은 원치 않는 소동에 휘말리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향한다. 이후 꿈을 안고 홍콩으로 가고, 군대에 가고,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고, 그곳에서 원수와 친구가 되고, 고향으로 돌아와 불량배가 되었다가 으악새 배우가 되어 ‘나’와 술잔을 기울인다.


꿈을 좇는 삼촌의 여정은 모퉁이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마주한다. 개인적이고 역사적인 비극 앞에 가슴이 아려지다가도 피식하게 되는 것은 유머, 아이러니들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삼촌이 더 이상 말을 더듬지 않게 되는 것은 삼청교육대에서 받은 혹독한 고문 덕이라던가 하는…. 서자로 태어났기에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살지만, 삼촌의 삶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소시민들의 세계에서도 지켜져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삼촌과 비슷한 세대의 나(권상규)는 소인배의 전형같아 보인다. 중3이 된 상규의 치졸한 마음은 종태의 인생을 망가뜨린다.


같은 시간대를 배경으로 한 한국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화자들의 전형을 보는 느낌이었다. 부족함 없이 자라 대학생이 되고, 시대의 부름에 응답할지 어떨지 결정하지 못하고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타입. 자존심은 세지만 능력은 못 미치고, 결국 열등감으로 인해 주변에 피해를 주고 자기연민에 빠져 현실을 회피하는 그런 인물... 아직 2권을 읽지 않았지만 예상이 된다. 지켜본다는 의미에선 독자 또한 포함이 되는 듯 하고.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캐릭터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재미있게 읽히는 것은 작가의 능력이라 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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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9-11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권만 ebook 으로 읽었는데 ..어쩌다보니 2권을 놓쳤어요 . 책장 넘기며 봐야겠다 하고 담아놓곤 깜빡 잊었는데 ㅡㅎㅎㅎ 2권리뷰 기다릴게요!^^

에이바 2016-09-11 19:32   좋아요 1 | URL
2권... 언젠간 보겠죠? ㅋㅋㅋ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장소님..

[그장소] 2016-09-11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에이바 2016-09-19 09:47   좋아요 1 | URL
*^^*

서니데이 2016-09-13 2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이바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에이바 2016-09-19 09:47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도 긴 연휴 잘 보내셨길 바랍니다.^^

초딩 2016-09-14 1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석 잘 보내세요~~~ 에이바님~

에이바 2016-09-19 09:4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초딩님도 추석 잘 보내셨길 바라요...^^
 

                                (인포그래픽 출처: http://crownpublishing.com/hogarth-shakespeare/)


 

2016년은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서거 400주기가 되는 해이다. 두 작가는 1616년 4월 23일에 사망했는데, 이 날은 1995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책의 날’로 지정되었다. 각각 영국과 스페인을 대표하는 이 세계적 문호들은, 자국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물로 손꼽힌다. 올해는 작가들 관련 다양한 문화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문학동네에서는 『햄릿』, 글항아리에서는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 민음사에서는 셰익스피어 평전인 『세계를 향한 의지』가 출간되었다. 또 영국의 출판사 호가스 랜덤하우스가 진행 중인 작가들의 오마주 프로젝트가 있다. 이 장기 프로젝트는 현대문학 출판사에서 우리말로 옮기는 중이다. 셰익스피어 재해석 프로젝트 중 두 편은 이미 우리말로도 번역되었다. 희극 『겨울 이야기』를 고쳐 쓴 『시간의 틈The Gap of Time』과 희비극 『베니스의 상인』을 고쳐 쓴 『샤일록은 내 이름Shylock is My Name』이다.

 

호가스 셰익스피어 리톨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결정된 작가들과 작품은 다음과 같다. 무대에 올리기 위해 씌어진 희곡을 소설로 개작함으로써, 시간과 배경에서의 제한이 풀렸다. 한국 출간예정일은 현대문학 출판사 블로그를 참조하였다.


지넷 윈터슨 / 시간의 틈 / 겨울 이야기 (2015년 10월 6일 출간, 한국 2016년 6월 20일 출간)

하워드 제이콥슨 / 샤일록은 내 이름 / 베니스의 상인 (2016년 2월 6일 출간, 한국 상동)

앤 타일러 / 식초 소녀 / 말괄량이 길들이기 (2016년 6월 7일 출간, 한국 2016년 10월 출간)

마거릿 애트우드 / 마녀의 씨 / 템페스트 (2016년 10월 11일 예정, 한국 2017년 11월 출간)

요 네스뵈 / 맥베스 (2017년 2월 4일 예정, 한국 2018년 3월 예정/ 2018년으로 미뤄짐)

트레이시 슈발리에 / 오셀로 (2017년 5월 출간, 한국 예정)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 / 리어 왕 (2018년 4월 3일 예정, 한국 미정)

질리언 플린 / 햄릿 (2021년 1월 5일 예정, 한국 2020년 예정:블로그 오타인 듯)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작가와 개작, 원전 소설들을 간단히 소개한다.

 

 

시간의 틈

지넷 윈터슨 저/허진 역

현대문학 | 2016년 06월


지넷 윈터슨은 1985년,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Oranges Are Not the Only Fruit』로 휫브레드상을 수상하면서 알려진 작가다. 그녀가 선택한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는 동시대 작가 로버트 그린의 『판도스토―시간의 승리』를 다시 쓴 이야기이므로 이 리톨드 시리즈와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시칠리아의 왕 레온테스가 왕비 헤르미오네의 외도를 의심하면서 버려진, 갓 태어난 공주 페르디타의 이야기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윈터슨의 개인사를 떠올리게 한다. 『겨울 이야기』를 현대적인 배경으로 옮긴 『시간의 틈』의 플롯은 원전의 플롯에 상응하며, 윈터슨은 디테일을 되살리면서 설득력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 『시간의 틈』은 읽고 리뷰를 썼다. http://blog.aladin.co.kr/769383179/8622930

 

 

 


샤일록은 내 이름

하워드 제이컵슨 저/이종인 역

현대문학 | 2016년 06월

 

하워드 제이컵슨은 케임브리지 대학 영문과에서 셰익스피어를 전공하였으며, 2010년 『영국 남자의 문제The Finkler Question』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유대계 영국인으로서, 제이컵슨이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유대인이 등장하는 『베니스의 상인』을 선택한 것은 큰 도전일 터다. 고리대금업자이자 악인으로 묘사되는 샤일록은 그렇기 때문에 반유대주의를 대변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제이컵슨에 따르면, 샤일록에 대해 논쟁하는 것은 현대의 관심사에 대해 논쟁하는 것이라 한다. 『샤일록은 내 이름』에는 그의 전작인 『영국 남자의 문제』의 주제, 유대인이 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드러나 있다.

 

 

 

 

 

Vinegar Girl

Tyler, Anne

Random House | 2016년 06월

앤 타일러 / 식초 소녀 / 말괄량이 길들이기 (2016년 10월 한국 출간 예정)


1989년, 『종이시계』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앤 타일러는 2015년, 『파란 실타래』로 맨부커 후보에 올랐다. 6월 출간된 『식초 소녀Vinegar Girl』은 셰익스피어의 희극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개작한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이 극에서 '말괄량이'를 '길들이는' 과정을 통해 당대 여성관과 결혼관을 드러내고 있다. 여성이 남성의 의견에 반대하거나 화를 내는 것처럼만 보여도 '말괄량이'가 되며,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란 내용은 현대의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안겨준다. 극의 마지막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해피엔딩인지 아닌지가 달라진다. 앤 타일러는 어떻게 해석하였을까? 

 

 

 

 

 

-2016년 10월 14일 추가

식초 아가씨

앤 타일러 저/공경희 역

현대문학 | 2016년 10월

 

현대 미국의 중산층 가족을 그려 온 작가 앤 타일러의 셰익스피어 다시 쓰기.. 배경은 이탈리아에서 미국 볼티모어로 옮겨졌다고 한다.

 

밀워키 저널 센티널 (추천) : 지금 활동하는 미국 작가 가운데 앤 타일러만큼 결혼에 대해 잘 쓴 이가 있었던가. 아니면 영원토록 행복하게 사는 금실 좋은 부부라는 환상과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실제로 함께 지내는 대체로 울적하지만 우스꽝스럽기도 한 놀라운 사건 사이의 불일치에 대해 누가 그렇게 변함없이 솔직했었나. 『식초 아가씨』는 유쾌하고 낙천적이고 기발하고 온정적이며, 여느 때와 같이 등장인물을 향한 타일러의 특별한 애정으로 충만하다.

 

 

 

 

 

Hag-Seed

Margaret Atwood | Vintage Books

마거릿 애트우드 / 마녀의 씨 / 템페스트 (2016년 10월)


2000년 『눈먼 암살자』로 부커상 수상, 1985년 『시녀 이야기』를 발표한 캐나다의 거장. 그녀가 선택한 『템페스트(폭풍우)』는 마법을 쓸 줄 아는 프로스페로가 지배하는 섬을 배경으로 한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희곡이며 많은 시간 동안 해석에 대한 논쟁을 낳은 작품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많은 평론가들은 유럽 식민지주의자의 전신으로서 프로스페로를 집중 탐구해왔다. 호가스 시리즈 트레일러에서 애트우드는 이 극을 선택한 이유를 '마법이 나오잖아 당연한 거 아님?ㅇㅇ' 이라고...

 

 

 

 

 

-2017년 11월 30일 추가

마녀의 씨

마거릿 애트우드 저/송은주 역

현대문학 | 2017년 11월

 

애트우드의 『마녀의 씨』는 측근에게 배신당해 모든 것을 잃고 변방으로 밀려난 주인공이 긴 세월 절치부심한 끝에 악인들을 벌하고 잃었던 것을 되찾는다는 『템페스트』의 기본 구도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동시에 독창적이고 현대적인 소설로 ‘다시 쓰는’ 어려운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작품의 배경이 400년 전 절해고도에서 현대의 교도소로 바뀌고, 셰익스피어가 만든 마법과 환상이 21세기에 걸맞은 컴퓨터 장치와 특수 효과들로 대체되고, 셰익스피어의 프로스페로가 21세기 셰익스피어 연극 축제의 예술 감독 필릭스로, 사악한 동생 안토니오가 사악한 부하 직원 토니로, 순결한 딸 미란다가 당차고 자기주장 강한 여배우 앤마리 그린랜드로, 정령 아리엘과 ‘마녀의 씨’ 칼리반, 프로스페로의 수족인 도깨비 개들이 연극 <템페스트>에서 그들을 연기하는 죄수들로 바뀌는 것을 보면 애트우드가 원작과 개작 사이의 연결 고리를 얼마나 절묘하게 준비했는지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책소개 중)

 

 

 

요 네스뵈 / 맥베스 (2018년 출간 예정)


핫한 작가, '해리 홀레 시리즈'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유명 작가 요 네스뵈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네스뵈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개작할 예정이다. 희곡 설명도 유명하니 생략. (요 네스뵈의 이름은 익숙지 않아 헷갈리곤 하는데 요! 네스뵈로 외우면 된다...) 

 

 

 

 

New Boy : Othello Retold (Hogarth Shakespeare) 

트레이시 슈발리에 저 | Vintage Publishing | 2017-05-11 

평생을 델프트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빛의 화가, 네덜란드의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그린 북구의 모나리자, 『진주 귀고리 소녀』를 소설로 되살려낸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이방인'이라는 관점에서 『오셀로』를 개작할 예정이다. 인터뷰 영상에 따르면, 30년을 영국에서 살았음에도 늘 이방인임을 느낀다고... (한국어판 출간예정)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 / 리어 왕 (2018년 출간 예정)


5권으로 구성된 패트릭 멜로즈 시리즈로 유명한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의 소설은 단 한 권도!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시리즈 네번째 권인 『모유Mother's Milk』는 2006년 부커상 후보, 2007년 페미나 상 외국문학 부문에서 수상하였다. 세인트 오빈은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을 개작할 예정인데 현대문학 출판사 블로그에는 번역 출간 일정이 나와 있지 않다.

 


 

길리언 플린 / 햄릿 (2021년 출간 예정)


베스트셀러 그리고 동명 영화의 원작으로서 더욱 알려진, 『나를 찾아줘Gone Girl』의 작가 길리언 플린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개작할 예정이다. 


>>>>>> 『햄릿』도 리뷰와 페이퍼를 썼다. 

리뷰: http://blog.aladin.co.kr/769383179/8697909

페이퍼 햄릿의 고민: http://blog.aladin.co.kr/769383179/8711506

페이퍼 오필리어: http://blog.aladin.co.kr/769383179/8742656




>>>>>> 아래 영상은 호가스 셰익스피어 트레일러.



So long as men can breathe, or eyes can see,

So long lives this, and this gives life to thee.

-트레일러 마지막에 작가들이 암송하는 것은 셰익스피어 소네트 18




>>>>>> 참여 작가들의 작품들 중 추천작과 셰익스피어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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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09-19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전에 말씀드렸나 몰라요.
이 페이퍼는 정말 <이달의 페이퍼>예요. 너무너무 알찬 정보가 쏙쏙!!!
에이바님 안내 따라 쭉쭉 읽고 싶은데, 가능할지....
일단 셰익스피어를 읽고 나서요~~~ ㅎㅎ

에이바 2016-10-14 13:00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댓글을 이제 봤네요!! 앤 타일러의『식초 아가씨』가 출간되어 추가하러 왔는데 반갑습니다. ㅎㅎ 다시쓰기 한 작품을 먼저 보고 원작을 보는 것도 재밌는 것 같아요. 이 시대의 셰익스피어들을 먼저 만나 보는 거잖아요. 파이팅이에요! 저도 셰익스피어 읽기 잊지 않고 한 작품씩 독파할 거예요. 같이 읽어요 >_<
 

-포가 쓴 〈율랄리〉 원고 (출처: 위키피디아)

 



율랄리



내 영혼은 홀로 거했다

신음의 바다에서

내 영혼은 정체된 조류였다

아름답고 상냥한 율랄리

       수줍어하는 신부가 되기까지

노랑머리의 어린 율랄리

       나의 미소 짓는 신부가 되기까지


아아 밤하늘 별들도

그만큼 빛나는 그 소녀의 눈만큼

그만큼은 밝지 않았다!

수증기가 보라색 진주색

달빛 섞어 만드는 눈의 결정(結晶)은

정숙한 율랄리의 하찮은 컬과도 견줄 수 없다

반짝이는 눈을 가진 율랄리

       그녀의 꾸밈없는 미미한 머리칼 컬과도 견줄 수 없다


의심도 고통도

다시는 생기지 않는다

그녀의 영혼은 탄식에 탄식으로 답하고

하늘의 아슈타르테는

하루 종일 밝고

강렬하게 빛난다

그럴 때 율랄리는 엄마 같은 눈을 들어 그녀를 본다

그럴 때 율랄리는 연보라색 눈를 들어 그녀를 본다



《꿈속의 꿈》(106-107), 공진호 역


 

〈율랄리 Eulalie-A Song, 1844〉 역자 해설: 율랄리를 통해 외로움과 절망에서 구원 받는 노래. 그녀는 산출력과 성적인 사랑의 여신 아슈타르테에게서 아름다움과 힘을 얻는다.

 


-Virginia Poe (1822~1847), 사후 그려진 초상

 


율랄리는 에드거 앨런 포의 아내, 버지니아를 가리키는 것 같다. 결혼을 한 시인이 얼마나 들뜨고 행복했던가. 외롭고 상처입은 지난 날을 보상받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찾아보니 〈Deep in Earth〉라는 2행의 시가 더 있다. 버지니아가 결핵으로 사망한 1847년, 〈율랄리〉의 원고에 남긴 글, 연필로 쓴 아주 희미한 글은 다음과 같다.


  

Deep in earth my love is lying

    And I must weep alone


땅 속 깊이 내 사랑 누웠네

  나 홀로 눈물 흘려야하네



〈율랄리〉에 덧붙이려던 것이었는지, 아니면 버지니아를 잃은 슬픔을 표현한 건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이 글이 암시하는 것은 시인이 다시 외로워졌다는 것이다. 결혼하기 이전처럼...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기형도, 《빈 집》 마지막 행

 


〈Deep in Earth〉를 기형도 시인의 단어를 빌려 번역한 것은 읽자마자 이 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사랑이 땅에 묻히는 것과 기형도의 사랑이 빈 집에 갇히는 것... 두 시는 모두 사랑하는 이, 혹은 사랑 자체의 상실을 노래하고 있다. 포의 사랑은 죽음이 앗아갔다. 하지만 사랑의 감정이 중단되었거나 거부되었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그러나 기형도의 사랑에선 죽음이 암시되진 않으나, 대상의 부재로 인해 그 감정이 더 이상 상호적이지 않음을 느낀다.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사랑은, 그러니까 돌려받지 못하는 사랑은 미완성인 걸까. 포의 마음에서 툭 떨어져 나온 2행의 시구처럼.


포의 작품이 가진 특유의 분위기는 시론과도 관계 있다. 그가 생각하는 시의 정수는 아름다움이고, 이를 잘 설명하는 것은 우울한 톤과 운율(음악성)이며, 그 소재는 미인의 죽음이다. 그 예로 잘 알려진 시 〈애너벨 리〉와 어제 포스팅한 〈울랄룸〉이 있다. 그러다면 아름다움은 미인의 죽음으로서만 표현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순수하게 아름다움 그 자체를 찬양하고 노래하는 시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헬렌To Helen〉이다.





헬렌 (1)



헬렌, 당신의 아름다움은

  여행에 지친 방랑자들을 태우고

고향을 향하여 부드럽게

  향기로운 바다를 항해하는

  옛 니케아의 군함과 같아요


당신의 히아신스 머리카락 고전적인 얼굴

  물의 요정 같은 자태는

절망적인 바다에서 오랜 세월 방황하던 나에게

  그리스였던 영광 로마였던 장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었지요


저기 저 찬란하게 빛나는 우묵한 창가에

  석영 등잔불을 들고 서 있는

당신은 정말 조각상 같아요

아아! 당신은 프시케

성스러운 땅에서 온 프시케



《꿈속의 꿈》(85), 공진호 역




〈헬렌(1) To Helen, 1831〉 역자해설: 14살 때 만난 동급생의 어머니 제인 스티스 스태너드를 위하여 쓴 시이다. 그녀의 상냥함과 우아함은 포에게 황량했던 세상을 아름다운 것으로 비치게 해주었다. 그런 이상적인 여인에게 어울리는 이름으로 트로이의 헬렌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시를 지었다. 그녀는 1824년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헬렌To Helen〉이란 제목을 단 시는 두 작품이 있다. 하나는 제인 스태너드를 위하여, 다른 하나는 사라 헬렌 휘트먼을 위하여 쓴 시이다. 여기서는 처음 씌어진 시만 보려고 한다. 친구 엄마에게 쓴 사랑의 시라 하니 무언가 불손한 느낌도 든다. 그러나 포의 생애와 시구들을 잘 살펴보면 너무도 아름다운 사랑의 송가임을 알 수 있다. 알다시피, 포는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었고 양부 앨런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상냥하고 따스한 어머니, 친구의 어머니였던 아름다운 제인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금방이었다.


포는 제인을 지상 최고의 미인으로 꼽히던 트로이의 헬레네(트로이 전쟁을 일으켰던 바로 그 헬레네)에 비견한다. '절망적인 바다에서 오랜 세월 방황하던' 선원인 자신(포의 어린시절)을 위로해주었던 그이로, 에로스가 사랑하는 '프시케'(〈울랄룸〉 포스트의 프시케 신화 참조)로 말이다.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시어의 면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숭고하기까지 하다. 그래서인지 처음엔 그 나이에 쓴 작품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천재는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달은 것이다. 실제로 에드거는 제인 스태너드를 자주 찾았고, 그녀는 우울해하는 아이를 위로해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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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6-09-09 0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에이바님이랑 저랑 둘다 기형도가 스쳐 갔네요. 문학교(敎)라고 해야 하나ㅎ;

에이바 2016-09-09 08:43   좋아요 1 | URL
그렇네요 아갈마님... 예전에 기형도 시와 그로테스크에 대해 쓰신 글이 인상깊었습니다. 내공이...ㅠㅠ

AgalmA 2016-09-09 21:47   좋아요 1 | URL
내공이라니; 에이바님 내공에 제가 박수칠 때가 더 많을 걸요^^b
 

-제프 버클리가 낭송하는 울랄룸.



〈울랄룸Ulalume〉(1847) -  아티초크 공진호 해설: 연인이 죽고 1년이 되었을 때의 갈망을 그린다. 사랑하는 아내 버지니아가 죽은 해에 발표되었다. 비극적으로 젊은 나이에 죽은 아름다운 여인을 상실한 슬픔을 그리는 시 중 하나다.



에드거 앨런 포의 시, 〈울랄룸〉은 아내 버지니아의 죽음에서 비롯된 슬픔을 노래한다. 시월의 쓸쓸한 밤, 화자는 위어 지역의 오베르 호수에서 영혼(사이키, 여기서는 프시케로 지칭, 여성으로 그려짐)과 대화한다. 활화산 같은 가슴을 안고, 지금이 어느 때이고 어디를 돌아다니는지조차 모른 채로. 어둠이 이지러지고 길에 드리운 광채, 그것은 아슈타르테(비너스)의 초승달에서 비롯한 것이다. 화자는 여신이 자신을 구하러 왔다고 생각하지만 프시케는 이 별을 악귀라며 믿지 않는다. 프시케를 달래며 도착한 무덤가. 그는 깨닫는다. 죽은 연인의 무덤 주위를 거닐었음을.

 

포의 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죽음’의 이미지가 여기서도 확인된다. 울랄룸은 죽은 연인의 이름이다. 사랑을 상실하고 깊은 슬픔에 빠진 화자는, 연인이 죽은 지 1년이 되는 날 그 무덤가를 무의식중 배회했던 것이다. 프시케Psyche는 영혼이라는 뜻이지만,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이기도 하다. 아슈타르테(비너스, 아프로디테)를 믿지 말라고 하는 그녀가 애달프게 느껴진다.




"그것은 인정 있고 자비로운 악귀였을까? -

우리가 가는 길을 막고 이 숲의 비밀을 알지 못하게 한 것은,

이 숲 속에 감추어진 것을 알지 못하게 한 것은,

초승달 영혼의 림보에서 행성의 망령을 불러낸 것은,

행성의 영혼들이 거하는 지옥에서

이 사악하게 반짝이는 행성을 불러낸 것은,

아아 그것은 숲의 악귀들이었을까?"

 

〈울랄룸〉의 마지막 행, 《꿈속의 꿈》 78쪽



 


-보통 프시케 주변에 그려진 나비는 ‘긴 잠에서 깨어난’ 프시케를 상징한다.


프시케 신화

 

빼어난 아름다움 탓에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의 미움을 산 프시케. 여신은 아들 에로스에게 그녀를 저주하는 화살을 쏠 것을 명하지만, 에로스는 실수로 화살을 빗맞아 프시케를 사랑하게 된다. 사랑을 알게 된 에로스는 소년에서 청년이 되고, 신들도 두려워하는 괴물(에로스의 화살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남편이 되리라는 신탁으로 프시케는 버려진다. 서풍인 제피로스가 그녀를 호화로운 궁전에 데려다주고, 보이지 않는 하인들이 시중을 든다. 밤에 찾아오는 남편은 다정하지만 절대로 얼굴을 봐서는 안 된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동생을 질투한 언니들의 꾐으로 결국 프시케는 칼을 들고 등불을 켜 남편의 얼굴을 본다. 금기가 깨지자 에로스는 날아가 버리고, 잘못을 후회하며 남편을 찾던 프시케는 데메테르 여신의 도움으로 아프로디테가 주는 과업을 받는다. 에로스를 두려워 한 신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과업들을 완수하고 저승에까지 다녀온 프시케. 마지막 임무는 아름다움을 받아오는 것이었는데, 남편을 만나기 전 까칠해진 외모를 걱정한(그 고생을 했으니...) 프시케는 상자를 열게 되고, 영원한 잠에 빠진다. 결국 에로스가 그녀를 구하고 아프로디테의 인정을 받아 결혼, 이후 여신이 된다.


 

 

〈울랄룸〉이 언급되는 작품들 (참고: 위키피디아)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데뷔작인 《낙원의 이쪽》의 주인공 에머리 블레인이 〈울랄룸〉을 좋아하고 낭송하는 장면이 나온다.

-H. P. 러브크래프트의 《광기의 산맥》에 등장하는 인물이 이 시를 언급한다. 산을 보며 포가 쓴 시의 이미지의 원천이 되었을 거라며 몇 자를 왼다. 러브크래프트의 초기시인 《네메시스》는 포의 〈울랄룸〉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로저 젤라즈니의 1993년 소설, 리처드 레이먼의 2001년 소설 《고독한 시월의 밤》은 모두 〈울랄룸〉의 시구를 딴 것이다.

-스탠리 큐브릭의 《롤리타》에서 험버트 험버트가 롤리타에게 이 시의 일부를 들려준다.

  


추가) 아슈타르테


〈울랄룸〉과 〈율랄리〉에 등장하는 아슈타르테. 시를 해석할 때 〈율랄리〉에서는 여신의 긍정적인 면이 극대화된다고 보면 될 듯 하다. 그러나 〈울랄룸〉에서 아슈테르테는 신화와 맞물려 알쏭달쏭하게 여겨진다. 화자와 그의 영혼(프시케)도 그 정체에 의아해 한다.


아슈타르테는 원래 수메르 여신이다. (최초의 문명, 고도로 발달된 문명인 수메르의 신화는 다른 신화들의 원형으로 일컬어진다.) 이난나, 이슈타르, 아스타로트, 밀랏타, 아프로디테, 비너스 모두 이 여신을 가리킨다. 수메르인들은 신들이 성행위를 자주 해야 비가 많이 내려 풍년이 든다고 생각했다. 비의 신과 창조의 신의 결합 중 여신이 흘리는 땀이 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난나 신전에서는 성적행위가 종교 의식, 제례로 여겨졌다. 출산과 풍작을 기원하던 신앙이 신화를 업고 종교가 된 것이다. 제례의식 중 왕이 이난나를 상징하는 왕후나 여사제와 관계한 것도 풍작을 위해서였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이 지역의 여성들은 일생에 한 번 여신에게 봉사를 해야했다. 신전 앞뜰에 앉아 있다가 '밀랏타 여신의 이름으로'라 외치고 은화를 던진 남자와 관계해야 했다. 돈의 액수는 중요치 않았으며 남녀가 관계한 뒤 이 돈을 신전에 바쳐야 여신에 대한 봉사를 다한 것이다. 이는 신에 대한 헌신이어서 사회적으로 찬양되었다. 신전 매춘, 속세와 종교의 만남으로 인간들은 문란해졌다. 유대인들이 식겁하고 가나안 땅으로 간 것(아브라함이 우르 출신) 그리고 성경 속 수메르 문화(바빌론 문화)가 사특한 것으로 여겨지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문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음에 따라 아슈타르테는 아프로디테를 거쳐 비너스(베누스)가 되었다. 신화 속에서 이난나는 사랑과 출산, 풍작 그리고 전쟁의 신이다. 대체로 질투가 많았던 그녀의 행동은 예측이 불가했으며, 갈가메쉬 서사시에서도 이런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참고: 《세 종교 이야기》(홍익희,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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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07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너스톤 출판사의 <포 전집> 에 수록된 소설에 ‘아슈타르테’가 언급된 문장이 있는 걸 봤는데 소설 제목이 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생소한 단어라서 따로 메모한 줄 알았는데, 암만 찾아봐도 기록한 내용이 없어요. 다시 한 번 찾아봐야겠어요. ㅠㅠ

에이바 2016-09-07 20:16   좋아요 0 | URL
혹시 찾으시면 저도 알려주세요ㅋㅋㅋ 코너스톤 전집 별로라고 하던데 전자책은 행사도 하고 해서... 언젠가 보긴 해야할 것 같아요.

cyrus 2016-09-08 08:34   좋아요 0 | URL
가독성이 《우울과 몽상》보다 좋은데요, 코너스톤 전집에도 사소한 오역이 많아요.

에이바 2016-09-08 23:44   좋아요 0 | URL
네, 아무래도 전집이라는데 의의를 더 두어야겠죠...

cyrus 2016-09-14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세요. ^^
 
로미오와 줄리엣 을유세계문학전집 8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서경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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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인공들처럼 비극적인 연인은 옛 전설이나 신화, 중세 로맨스에도 등장한다. (피라보스와 티스베, 트리스탄과 이졸데, 트로일로스와 크리세이드 등) 15∼16세기 유럽에서는 원수 집안에서 태어난 두 연인을 소재로 한 노벨라가 유행했다. 루이지 다 포르토의 1530년 작품, 『로메오와 줄리에타』의 줄거리와 등장인물들은 셰익스피어 작품과 유사하다. 여기에 살을 붙이고, 번역되고 다시 변형된 아서 브룩의 『로메우스와 줄리엣의 비극적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가장 중요한 출전으로 간주된다.


앞선 작품들을 자유롭게 참조하고 차용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집필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학자들은 문체상 특징과 표현, 주제적 측면의 연관성을 들어 『한 여름 밤의 꿈』, 『리처드 2세』와 비슷한 시기인 1595년 혹은 그 전후 집필되었으리라 본다. 이 ‘불운한 별자리 얽힌 한 쌍 연인(a pair of star-cross'd lovers)’의 비극적 결말은 낭만적 사랑의 신화로 자리 잡았다. 유명세에도 불구, 『로미오와 줄리엣』이 셰익스피어 4대 비극에 포함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극의 주인공들이 운명의 ‘행위자’가 아니라 ‘희생자’로 그려져 성격 비극의 공식에 못 미치기 때문이었다.


해설자가 등장하여 극의 내용을 소개하자마자 펼쳐지는 베로나 길거리의 싸움은 저속하기 그지없다. 몬터규와 캐풀렛 집안의 하인들과 주인들이 한데 섞여 칼을 휘두르는 이 엉망진창의 도시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름’이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름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는 물음을 던진다.


줄리엣  오, 로미오, 로미오, 당신은 왜 로미오인가요? (…)


이름에 뭐가 들어 있단 거죠? 

우리가 장미라고 부르는 그 꽃은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똑같이 향기로울 거예요. (…)


로미오, 당신의 이름을 벗어던지고,

당신의 어떤 부분과도 상관없는 당신 이름 대신

저를 송두리째 가져가세요. (2막 2장_55쪽)


‘이름’만큼이나 가식적인 것은 극 초반에 등장하는 사랑이다. 로미오가 빠져 있던 로절라인에 대한 감정은 실체 없는 사랑이다. 페트라르카가 쓴 연가에서 라우라를 갈망하며 사랑의 고통을 겪듯이, 로절라인을 갈망하는 로미오의 연가는 소네트로 표현된다. 사랑도 관습적이었던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첫 대화도 소네트로 이루어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로절라인과 줄리엣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두 연인의 조력자이자, 로미오가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랑에 넋을 잃는다’고 꾸짖었던 로런스 신부와 로미오의 대화이다.


로미오  제가 지금 사랑하는 그녀는

정에는 정으로, 사랑에는 사랑으로 보답해 주는 여인이랍니다.

이전의 여인은 그렇지 않았어요.


로런스  아, 그 여인은 잘 알고 있었지.

자네의 사랑은 철자를 쓸 줄도 모르면서 외워서 읽는 식이었다는 것을. (2막 3장_68쪽)


열네 살이 채 되지 않은 줄리엣과, 그보다 서너 살 많을 로미오의 사랑은 놀라울 정도로 열정적이다. 미성숙한 십대이기에 감정에 휩쓸린 것이 아니냐고? 오히려 어리기 때문에 감정 자체에 집중할 수 있고, 더욱 순수할 수 있구나 싶다. 사랑하며 성숙해지는 두 연인의 성장이 기껍고, 끝을 알면서도 응원하게 된다. 사랑에 설레면서도 불안을 감추지 않는 진솔함으로 로미오에게 사랑이란 주고받는 것임을 알려주는 줄리엣. 그녀가 사랑을 위해 두 번의 죽음을 무릅쓰는 용기를 볼 때, 그 숭고한 감정을 어떻게 십대의 치기로 치부할 수 있을까.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 그들이 만나고 헤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4∼5일이다. 짧은 기간 동안 놀랍도록 타오르는 이 사랑에, 로런스 신부는 ‘격렬한 기쁨엔 격렬한 종말이 있게 마련’이라 예견한다. 처음부터 암시되는 이 죽음은 두 집안의 화해를 낳으며 사랑을 인정받는다. 베로나 영주는 두 집안 간 증오 때문에 두 연인이 죽었다고 결론내리며, 이들의 관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어쩌면 죽음으로 완성되고 증명된, 순수한 사랑이기에, 그 신화가 더 공고해졌으리라.


『로미오와 줄리엣』이 씌어진 시기 영국 사회의 정치·사회·경제적 변화는 사랑과 결혼에 대한 관념을 변화시켰다. 때문에 남녀 간의 성적인 사랑을 긍정적으로, 그 사랑의 완성인 결혼을 찬미하는 낭만적 희극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캐풀렛의 가부장적 태도이다. 베로나의 기성세대의 반목이 그 자녀들에 초래하는 비극적 결과는 엘리자베스 1세 치세 동안 벌어진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교도 간 분쟁을 떠올리게 한다. 서른 살 셰익스피어는 이 또한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참고: 스탠리 웰스 공저, 『셰익스피어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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