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은 왜 끝없이 망설이고 고민하는 것일까? 레어티즈처럼 복수하겠다며 무대포로 밀고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포틴브래스처럼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는 타입도 아니다. 아마도 햄릿이 현대적 인물이라 일컬어지는 데는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단순하지 않다는 것! 햄릿은 덴마크의 위대한 지배자 햄릿 왕의 외아들이다. 용맹하고 존경받는 왕과 아름다운 왕비에게서 태어난 왕자는 덴마크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서른 살 왕자는 정치적 세력이 전무한 학자 타입으로 보인다. 극 초반에서 그가 여태 대학에 있었다 하며 연극에 대한 깊은 이해는 이를 뒷받침한다.
작고한 햄릿 왕은 왕비 거트루드를 깊이 사랑한다. 그 생전에 이미 동생 클로디어스와 간통해왔던, 부도덕한 아내를 여전히 아낀다. 어머니에게 ‘숙덕이 없다면 있는 척이라도 하십시오’ 일갈하는 아들에게 나타나 아비의 복수를 하되, 어미를 미워하지 말라고 한다. 자신이 죽고 얼마 되지도 않아 재혼한 무정한 배우자를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러겠냐는 말이다. 햄릿은 선왕의 깊은 사랑을 봐 왔을 것이다. 그것이 너무도 당연한데 어찌 장례식 후 너무도 행복해하는 어머니를 용서할 수 있겠는가. 이 크나큰 배신감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남편을 사별한 아내는 재가를 하면 안 되느냐, 그런 것이 아니다. 햄릿은 자신의 부재중 일어난 급격한 변화에 휩쓸린다. 게다가 클로디어스와 거트루드라니! 이 근친상간적이며 왕위찬탈을 연상시키는 결합이라니. 클로디어스에 아부하는 신하들, 연회를 벌이며 즐거워하는 모습들……. 덴마크는 썩었다는 햄릿의 자조에는 클로디어스라는 좀, 병증이 있다. 보라, 어머니에 대한 혐오를. 상(喪) 중인 사람은 자신 밖에 없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엘시노 궁을. 햄릿은 염세를 느끼고 자살 충동에 이른다.
금빛 갑옷을 입고 나타난 유령은 햄릿에게만 말을 건넨다. 유령의 말은 햄릿에게만 들린다는 것은 어쩌면, 선왕의 이야기, 그 죽음에 대한 의혹을 풀고자 하는 ‘관심’을 가진 이는 왕자 밖에 없다고 해석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햄릿은 정치적 세력이 없는, 대학에서 공부만 한 인물처럼 보인다. 그의 지성은 현 상황에 대한 회의를 낳는다. 유령의 말이 진실인가? 진실이라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 아, 나는 겁쟁이로구나. 살해당한 아버지의 아들인 나는 신세타령만 할 뿐 행동을 취하지는 않는구나.
그것이 바로 ‘살 것이냐 아니면 죽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이다. 햄릿은 죽음에 집착하고 있다. 생에 대한 혐오로 염세와 우울이 깊어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연극을 통해 클로디어스에 대한 혐의를 확증한 이후에도 고민하고 결정을 미루는 것- 그것은 결국 복수를 성공하더라도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데 있다. 클로디어스로 상징되는 덴마크의 부패는 그를 죽인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신의 능력 밖 일이기 때문에, 고민하다보면 자꾸 분별심이 끼어들어 핑계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결국 ‘신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기려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