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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ㅣ 다시 읽고 싶은 명작 2
엔도 슈사쿠 지음, 김윤성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기로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문장이 술술 읽혔고 영화가 원작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수회가 열도에 상륙한지 오래, 해외 교역을 위해 가톨릭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던 일본 정부의 태도가 변했다. 중앙에서 지방 정부를 통제하기 위함이다. 신부와 수사, 신자들에 대한 박해는 최종 추방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굴복하지 않은 신부들은 고문당한 뒤 순교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고위직인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했다는 소식이 로마 바티칸에 전해진다. 페레이라 신부 아래 수학했던 젊은 신부 셋이 뭉쳐 진상을 알아보기로 한다. 인도를 거쳐 겨우 중국 마카오에 도착했는데, 이 곳 선교학원 원장 바리냐노 신부는 밀항에 반대한다. 일본의 신자들이 궐기한 시마바라에서 학살이 벌어졌고 포르투갈과의 교역도 중단되어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다. 말라리아에 걸린 호안테 신부를 남기고 로드리고와 가르페 신부는 길잡이 기치지로와 함께 바다를 건넌다.
어부출신인 기치지로는 교활한 눈을 하고 비겁한 행동을 일삼았지만 일본에 대해 모르는 신부들은 그를 의지할 수 밖에 없다. 기치지로의 인도로 만난 일본의 신자들은 포르투갈어 몇 가지를 사용하며 신부들을 마을에 모신다. 로드리고 신부는 그들의 빈궁하고 비참한 생활에 충격을 받지만 신자들이 비밀 조직을 결성하여 신앙을 지키는 모습에 감동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이며 선교가 아니겠는가? 소문을 듣고 옆 마을에서 찾아온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받는다. 그 간절한 빛이 떠오른 얼굴을 보며 로드리고는 문득 불안을 느낀다. 십자가, 메달, 성화 등에 집착하는 모습에서 혹 교리를 잘못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관리들에 의해 신자 셋이 색출되어 수책형에 처해진다. 바다에 기둥을 세워 묶인 뒤 밀물에 의해 서서히 죽어가는 벌이다. 신부를 모셔왔다 으스대던 기치지로는 너무도 쉽게 배교한 뒤 달아난다. 마카오에 있을 때 듣기로, 기치지로는 관리가 위협하는 말만 듣고도 배교했다고 했다.
페레이라 신부를 찾고, 신자들을 찾기 위해 가르페 신부와 헤어진 로드리고 신부는 산길을 헤매며 주님의 침묵에 대해 생각한다. 잔인한 현실 앞에 간절히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무력함, 이런 고통 속에 침묵하는 주님을 떠올리면 마음이 어지럽다. 산길에서 다시 만난 기치지로는 고해를 청하고 신부는 그에게 노여움과 혐오를 느낀다. 예루살렘에서의 마지막 날 예수께서 유다에게 가라고 하셨을 때 (그가 배신할 것을 알면서) 마음이 이랬을까. 신부를 챙기는 듯하던 기치지로는 그를 관리에 고발한다. 끌려간 오두막에서 만난 신자와의 대화는 로드리고를 놀라게 한다. 가톨릭 수사가 가르치기를 천당에는 영겁과 안락이 있으며 연공도 없고 굶주림이나 병, 노역이 없는 세계라 했다는 것이다. 포르투갈어를 하는 일본인 통역관은 자신을 선교학원 출신이라 소개하며 외국인 신부들이 일본인들을 경멸하고 업신여겼다고 한다. 그러면서 진정 하느님이 있다면 천당으로 가는 길이 이토록 고통스럽겠냐고 반문한다.
이후 수령 이노우에와의 대화에서도 드러나는 바이지만, 로드리고 신부가 무지몽매한 일본인들을 계몽하려는 뉘앙스를 주는 것은 사실이다. 토착종교를 대체하는 그리스도교의 교리. 어린 양이라 여겨 신자들을 동정하지만 그들의 학식과 생활, 문화 수준을 하등하게 여기는 것도 느껴진다. 일단 선교라는 행위가 그렇지 않나. 진정한 사랑과 이해, 인정으로 포용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권위를 내세워 고압적인 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계몽하여 원죄로부터 해방시켜주겠다는 의도가 있을 터. 옥사에 갇혔다가 풀려나 관리들과 대화하고 또 배교하지 않은 신자들이 고문받고 순교하는 것을 보면서 로드리고 신부는 회의를 느낀다. 가르페 신부의 죽음도 그를 흔들어 놓는다. 일본에 도착한 뒤 숨어다니는 자신을 예수의 희생과 죽음에 동일시하였지만 자신은 고문을 당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았다.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는 로드리고 신부. 그가 배교하지 않으면 신자들을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는다.
이 나라의 어리석은 백성들에게 선교사들의 이상은 서구 열강들의 이익과 연관되어 있으며, 결국 원치 않는 사랑을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이노우에의 주장도 어떤 면에서는 옳다. 그리고 로드리고를 배교하라 설득하려는 페레이라 신부의 증언은 결정적이었다. '나는 22년이 지나서야 일본인들이 교리를 그릇되게 받아들였음을 알았다. 이 나라는 늪과 같아서 어떤 나무든 뿌리가 썩어 자랄 수 없다.' 로드리고 신부가 목격한 일본의 교회는 기존의 사찰을 활용한 것이었다. 이 곳에 와 만난 신자들의 태도, 대화를 떠올리면서도 로드리고 신부는 거짓 신앙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는가 의문한다. 페레이라 신부는 말한다. '내가 배교한 것은 주님이 침묵하셨기 때문이다. 고문도 죽음도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나 때문에, 배교했음에도 고문당하고 죽임당하는 신자들이 있다. 예수가 일본에 계셨다면 그 분도 배교했을 것이다.' 이 말은 로드리고 신부의 번뇌를 꿰뚫는다.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기치지로의 존재가 인상적이다. 로드리고 신부를 관에 넘기고 나서 그는 계속해서 신부를 찾아온다. 온갖 모욕을 당하고, 신부가 자기를 꺼리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고해하여 회심(배교했다가 신앙을 다시 찾음)한 뒤 다시 배교하길 반복한다. 관리들에게 신자들의 거취를 고발하면서도 스스로의 약함을 드러내어 울부짖는 존재. 이방의 세계에서 로드리고 신부가 느끼는 두려움과 위협을 상징하고 한편으로는 마음 깊숙이 숨기고 싶은 수치스러운 무엇. 그것을 가리키는 것이 기치지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로드리고 신부가 페레이라 신부를 보며 증오와 모멸, 연대감과 자기 연민을 느끼듯이 기치지로의 비겁하고 치졸한 모습 또한 거울 속 자신 안에 있는 것이다. 주의 침묵을 근거로 배교한 것은 타인을 위한 내 믿음을 꺾은 것에 대해 정당화밖에 더 되는가, 로드리고는 조소한다. 결국 내 안의 믿음이 나의 약함에 굴복한 것이다. 기치지로도 나와 같다...
로드리고 신부는 일본 정부의 숱한 검증과 감시 속에서도 마음 속에서 지켜온 믿음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면서 이러한 말을 한다. "강한 자도 약한 자도 없다. 강한 자보다 약한 자가 괴로워하지 않았다고 그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는가?(329쪽)" 나의 신앙이 이기적이지는 않은지, 내 뜻대로 곡해하여 믿지는 않았는지 또 무엇을 옳다고 여길 기준이나 근거는 어떠한지 생각해 볼 문제다. 선교라는 이름으로 나의 믿음을 전파하려는 행위가 강요이자 폭력이 되어, 절박한 이에게 헛된 희망을 불러일으킨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말이다. 이 소설은 결국 믿고 섬기는 하느님의 침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이 겪는 잔인한 현실과 상상할 수 없는 고통들. 성경에 등장하는 욥이 숱한 고난 속에서도 하느님을 한 번도 원망하지 않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욥에게 질문을 던진 악마가 묻고, 로드리고 신부는 이렇게 대답한다. 주는 지금 여기에 나와 함께 괴로워하고 계신다고. 엔도 슈사쿠의 깊고 오랜 사유가 느껴진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