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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키 파크
마틴 크루즈 스미스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17년 4월
평점 :
재미있나? 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이 작품을 재미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읽기 전에는 세월의 흐름이 느껴질까 조금 저어되었다. 1981년에 출간된 소설이기 때문에 고루하게 느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기우였다. 「고리키 파크」에 등장하는 냉전 시대는 진짜다. 작가가 미국인이 아니라 정말 그 시절을 살아낸 소련인이 아닌가 할 정도로 입체적이다. 존 르 카레의 범죄소설과 비견될 만 하지만, 읽는 내내 보다 최근에 출간되었으며 대중성을 입증받은 톰 롭 스미스의 「차일드 44」와 비교하였다. 「차일드 44」의 진행은 배경이 과거로 설정되었음에도 스타일리시함이 느껴진다. 철저히 계산된 구조 위에 얹힌 세련미, 영화를 연상시키는 능동적인 액션, 지극히 현대적인 범죄인 연쇄살인 사건 그리고 결말을 예상할 수 있는 조금은 뻔한 복선까지 말이다. 현대 방첩물이 눈 앞에 그려지는 느낌이다. 그에 비해 「고리키 파크」는 우직하다. 이 작품에는 「차일드 44」가 범접할 수 없는 세계의 아우라가 있다. 사색적인 주인공 아르카디 렌코가 맞닥뜨리는 사건은 소련 사회의 부조리와 맞물리며 그로 인해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가 대두하기 때문이다.
아르카디 렌코는 조국 영웅의 아들이라는 훌륭한 출신 성분에도 불구하고 요직도 아닌 한직, 잡범들을 소탕하는 수사관에 머물러 있다. 당 활동에도 무심하고, 야망이 없어 보이는 아르카디. 배당받은 사건을 적당한 선에서 매듭짓고 KGB에 넘기려했지만 수사가 진행될수록 사건에 몰입하게 된다. 그렇게 아르카디가 통찰력과 용기를 발휘하고 또 영웅적 면모를 띠면서부터 조금씩 흥미로워졌다. 사실 도입 부분이 잘 읽히지 않아 몇 번을 다시 펼쳐야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680쪽 위에 펼쳐지는 이야기들의 밀도가 치밀하기 때문이었다. 사건들을 어느 정도 펼쳐놓으면 설렁설렁 진행될 만한데 그렇지 않다. 아르카디 렌코의 수사 방식도 아주 끈질기다. 용의자가 일찍 등장하고 범인의 정체도 빨리 밝혀지지만 여전히 재미있다. 여기서의 재미는 말초적이라기 보다는 약간은 학문적인 재미라 할까? 소설은 범인의 정체보다도 살인 사건과 그것을 넘어선 거대한 음모, 그 크레바스의 틈을 들여다보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따라서 수사의 결과보다, 차근히 단계를 밟아가는 수사 과정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조각을 하나씩 맞추며 퍼즐을 완성하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사건이 해결된다고 해서 통괘함이나 희열이 느껴지진 않는다. 얼어붙은 강과 그 위에 쌓인 눈이 상징하듯, 감춰진 진실이 폭로되는 과정과 결과에는 슬픔과 우울이 짙게 덧칠돼 있다. 철저히 통제된 자유, 그 안에서 권력을 누리고 또 권력에서 배제된 이들 사이를 걷는 외인 아르카디 렌코. 그의 시선은 KGB와 검찰, 당 지도부의 연결고리를 거쳐 냉전시대 주적이었던 미국까지 뻗어간다. 사회에 내재된 규칙을 받아들여 그 안에서 성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과 도덕적 해이를 상징하는 인물, 부역자로서의 괴로움을 변명하는 이까지... 이 소설이 재현해낸 현실감은 눈 앞에 그려지는 부류가 아니라 피부에 오소소 돋아나는 부류다. 알 리가 없는데, 그 시절의 비릿함이 코 끝을 맴돌고 씁쓸함을 삼키게 된다. 살아남기 위하여 혹은 욕망을 위하여 가족, 친구, 동료를 배신하는 시대에서 발견한 사랑. 그 감정은 인물들의 신념조차 잠깐 가리는 듯 하지만 이야기는 가던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줄이자면, 소련 시스템 아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훌륭하게 재현한 소설이다. 그 풍모는 고전이라 이름 붙이기에 아깝지 않다.
에드거 앨런 포를 떠올리게 하는, 네버모어라는 이름의 1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아르카디 렌코 시리즈>는 30년 동안 8부작이 발표되었다고 한다. 시리즈가 끝까지 출간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리뷰를 쓰게 되었다. 미리니름을 피하려다보니 리뷰 내용이 두루뭉실하게 표현된 감은 있지만, 범죄소설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 쯤 꼭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후속작에서 아르카디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까? 이 작품이 보다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