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에게 왼손 연주란 어떤 의미일까? 전공자도 아니고, 이제 그 장르 입문자로서 보면 이렇다. 왼손과 오른손을 그대로 건반 위에 올리면 왼손은 낮은 음역, 오른손은 높은 음역이 된다. 선율은 높은 음으로 연주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왼손은 자연스럽게 반주를 맡는다. 물론 곡에 따라 왼손이 오른손보다 높은 음역대에 위치하기도 한다. 어쨌든 피아노를 연주하는 입장에서 왼손보다는 오른손의 손가락 움직임에 더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최근 관심 있게 지켜보는 피아니스트의 공연 리뷰를 보면 왼손의 탄탄한 연주가 언급된다. 오른손의 자유로운 루바토를 위해 왼손의 정박을 중시한 쇼팽, 그의 까다로운 작품을 연주하는 입장에서 참 좋은 칭찬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예술계통 종사자 중엔 왼손잡이가 많아 보이지만) 왼손이 주선율을 맡는 피아노 작품은 얼마나 될까? 열 개의 손가락을 다양하게 사용하는, 건반의 음역대가 넓은 작품을 제외하고 말이다. 어쨌든 왼손 위주의 작품은 스크랴빈의 곡, 비트겐슈타인(그 철학자의 형)을 위해 라벨이 쓴 작품 정도가 떠오른다.



위 영상의 8분 38초부터 보면, 필립 카사르가 샤마유의 왼손 연주를 칭찬한다. (카사르는 드뷔시, 슈베르트 스페셜리스트로 여겨지는 듯 하다) 카사르가 파리 음악원을 졸업할 때 스승이었던 주느비에브 주아-뒤티유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얘야, 아직 왼손 연주에서 더 훈련할게 남았구나.” 아주 예리한 조언이었다고. 그는 샤마유의 지난 연주활동, 예를 들어 리스트의 《순례의 해》 등에서도 왼손 연주의 풍성함을 봐 왔다며 칭찬한다. 왼손잡이냐 물었더니 샤마유는 오른손잡이라고. 이 젊은 피아니스트는 카사르의 칭찬에 기쁨을 표현하면서 말한다. 그 역시 왼손 연주가 곡을 이끌어나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보통 디테일한 오른손 연주에 신경 쓰게 되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이다.

 

너무 뻔한 이야기일까? 반주가 아닌 연주, 왼손의 중요성… 프로의 세계는 알수록 더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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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철 2016-01-29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오, 신선한 이야기인데요!^^

그나저나 `루바토`라... 괜히 외워 두고 있어야겠습니다....

에이바 2016-01-29 13:29   좋아요 0 | URL
왠지 음악용어를 알고 있으면 유식해진 것 같지 않나요? 루바토... ㅎㅎ

오거서 2016-01-29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 전공자 아니면 악보를 봐가면서 피아노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왼손의 중요성을 안다고 봅니다. 그런 기교를 필요로 하는 음악은 언급하셨다시피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감상자한테 참신한 주제의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에이바 2016-01-29 13:34   좋아요 0 | URL
막연하게 연주를 감상하다가 (저도 악보를 볼 줄 알지만, 진지하게 들은지 얼마 안 되어서요) 연주에서의 구조적인 문제, 즉 연주자는 어떻게 관객에게 자신의 해석을 설득시킬 것인가? 같은 면에서 흥미로웠습니다. 왼손의 기교보다도, 저는 단순히 왼손이 주된 역할을 하는 작품이 궁금했어요.ㅎㅎ

살리미 2016-01-29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피아노를 조금 배웠습니다만, 저는 심각한 오른손잡이여서 왼손치기가 너무 어려웠었어요. 왼손의 힘이 약해서 현란한 연주는 절대로!! 할 수 없고 쿵쿵 반주나 겨우 할 수 있었죠 ㅎㅎ
왼손이 주 선율을 맡는 작품도 있긴 하군요. 이 글을 읽고서야 저도 주로 피아니스트들의 오른손에만 집중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네요 ㅎㅎ
그리고 인터뷰 영상... 하나도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샤마유는 너무 착하고 순진해보이네요 ㅎㅎ 은근 매력남!

에이바 2016-01-29 13:37   좋아요 0 | URL
저 역시 악기들을 배우긴 했지만 단순한 취미였기에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보통 현악기나 목관악기를 피아노와 함께 배운다고 치면, 피아노를 전공으로 선택하게 되더라도 좀 더 넓은 시야에서 작품을 해석하게 되나 봐요. 아는 사람 눈과 귀엔 그게 보이고 들린다는군요.

물고기자리 2016-01-29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말로 연주를 위한 연주군요^^ 오늘 남은 시간은 왼손처럼 살아볼까 해요:) 마침 잠시 쉬며 커피 한 잔과 함께 읽기에 좋은 글이었어요.. ㅎ

살리미 2016-01-29 13:39   좋아요 1 | URL
물고기자리님~ 저도 커피 한잔 하던중에 음악도 듣고 물고기자리님도 만나고 ㅎㅎ
커피숍에 와 있는 기분인걸요? ㅎ

에이바 2016-01-29 13:44   좋아요 1 | URL
라벨 음악 아름답죠... 음악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서 좋아요. 설득당하는 기분요. 지드의 말처럼, 설득하고 유혹하는 쇼팽으로 진지한 클래식에 입문하니, 어렸을 땐 몰랐던 의문들이 생겨요.ㅎㅎ

물고기자리 2016-01-29 13:44   좋아요 1 | URL
에이바 님이 아니라 깜놀^^ㅋ

그치만 무척 반갑고 좋네요ㅎㅎ
카페에서 한 잔 하는 느낌이에요.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음악과 더불어..^^

프레이야 2016-01-29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왼손이 주선율을 이끄는 곡이 따로 있었군요. 오른손의 자유로운 루바토를 위한 왼손의 정박,이라는 글귀가 쏘옥 들어옵니다. 피아노 치는 작은딸이 좋아하는 쇼팽이 그걸 중시했군요. 잘 읽었어요.

에이바 2016-01-29 18:15   좋아요 0 | URL
쇼팽이 즉흥연주의 대가였다고 해요. 한번은 자신은 정박을 지키고 있다며 지인과 싸우기도 했는데 결국 메트로놈으로 쟀다고 해요. 누가 옳았는지는 비밀입니다. ㅎㅎ

다락방 2016-01-29 14: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짧지만 지적이고 멋진 글이에요, 에이바님. 이래서 에이바님 글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나저나 피아니스트, 왼손, 이란 단어들을 들으니 `시드니 셀던`의 소설이 생각나요. 아마도 [별빛은 쏟아지고] 였을 것 같은데요,

그 소설속에서 여자주인공은 피아니스트 남자와 결혼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이 피아니스트는 되게 유명하고 세계 각지로 공연을 다니는지라 간혹 여자가 외로워했어요. 이 여자는 건축설계 일을 했는데, 여자의 남자동료 한 명이 그런 여자를 안쓰럽게 여겨 피아니스트 남편의 손목을 자른다..는 얘기가 나와요. 일전에 자기들끼리 그런 대화를 한 적이 있었어요.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사고로 왼 손을 잃었는데 오른손 만으로도 훌륭한 연주를 했다는 이야기요. 그래서 이 동료 남자는 남편의 오른손을 잘라버려요...


결국 남편은 피아니스트 생명이 끝장나는데, 에이바님의 이 글을 읽으니 그 이야기는 다르게 진행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시드니 셀던이 아직 살아서 그 소설을 쓰기 전이었고, 에이바님의 글을 읽었다면 말이죠.

에이바 2016-01-29 18:20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별 것 아닌 글에 이렇게 극찬하시면... ☞☜ 말씀하신 셀던의 소설은 거의 고어 수준인데요. 피아니스트에게 손을 앗아가는 건 죽이는 것보다 더 가혹한 일이잖아요. ㅠㅜ 정말 상상할수록 몸서리쳐지네요... 슈만의 경우가 그래서 피아노를 포기해야 했고, 스크랴빈은 왼손 비중이 높은 곡을 작곡했지만... 레온 플레이셔는 오른손 마비로 연주계를 떠나 제자를 양성하고, 결국 부단한 노력 하에 양손으로 연주할 수 있게 되었죠. 정말 대단한 분이에요... 시드니 셀던이 플라이셔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써 주었더라면! 셀던의 이름 참 오랜만에 들어요 ㅎㅎ

만병통치약 2016-01-29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 국가공인 4단의 입장에서 보면 저 피아니스트의 손이 참 곱군요......^^

오거서 2016-01-29 14:48   좋아요 0 | URL
만병통치약 님은 미처 몰라본 피아노 실력자였군요. 손이 곱다는 디테일까지 캐치하다니 국가공인 4단이라 다르네요 ^^

에이바 2016-01-29 18:22   좋아요 0 | URL
역시 만병통치약님...! 국가공인 유단자다우신 코멘트입니다. ㅎㅎ

사과나비🍎 2016-01-29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좋은 연주 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에이바 2016-01-29 18:2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사과나비님^^

서니데이 2016-01-29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바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에이바 2016-01-29 18:23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좋은 시간 보내세요^^

AgalmA 2016-01-29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왼손은 거들 뿐 - 슬램덩크 명대사
한유주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소설 생각도 잠시...

에이바 2016-01-29 20:56   좋아요 0 | URL
안선생님...! 피아노가 치고 싶어요...!!! 전 정대만을 좋아했었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