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달러로 세상에 뛰어들어라 - 삶의 방식을 재발견하고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법
크리스 길아보 지음, 강혜구.김희정 옮김 / 명진출판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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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2/15~12/29
 30대 초반, 한참 직장 생활에 접어들어 사회인의 일반적인 모습이 내면에 자리잡았다고 여기는 한편, 아직도 이상적인 삶에 대한 동경과 꿈을 버리지 못하여, 고민하는 시기이다.


 결국 최선의 선택으로 지금 위치와 자리에서 일하고 있지만, 막상 내가 꿈꾸던 사회 생활과는 엇나간 느낌이 자꾸 든다. 자신의 업무가 스스로 맞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는 것은 아니다. 일단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파악도 안된 상황에서, 스스로 주도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닌 시스템에 맞춰진 메뉴얼을 보면서, 가끔씩 내 생각을 개입시켜 일을 처리하기는 하지만,, 무거운 문제나 중요한 해결책 요청은 언제나 윗선에 보고하여 답변을 받아야 처리하는 방식은 안정된 직장에서의 수명 연장은 가능할 지라도, 전체적으로 나의 인생 안에서의 경력으로써 독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나라의 현실 속에서,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직장생활을 박차고 다른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단순한 용기의 유무뿐만이 아닌, 앞으로 생존과 인생의 진로를 가늠하는 중요한 포인트이다. 확실하게 실패할 확률이 그런대로 유지 할 수 있는 확률보다 월등히 높고, 아이디어가 좋아도 자금과 제도및 법 등의 규제 앞에서 꿈을 접어야 하는 사례를 많이 보곤 하였다. 큰 맘먹고 대출을 받고 집을 정리하여 자금을 마련하여도,  한 차례 실패는 병가지상사가 아닌, 영원한 나락으로 떨어져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면 과연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자살을 하는 많은 사람들 중 그 원인이 자신의 비즈니스 문제인 사람도 꽤나 많다.


 현재 자금 상황도 좋지 않고, 습득한 전문지식도, 잘하는 취미도 가지지도 못한 내가 과연 새롭게 사업이란 것을 할 수 있을까? 기존에는 내가 그래도 흥미를 느껴왔던 외식산업에 대해서 고민을 했는데, 나름 자금만 갖추면 아이디어와 경험, 젊은 나이를 무기로 해볼만 하다고 여겼지만, 자금 마련이 만만하지 않다. 한 푼도 없는대다가 빚도 조금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혼자 사는 것 자체가 용한 상황이다. 그러나 아직 꿈은 버리지 않았다. 꾸준한 독서와 느릿하지만 외국어도 이어가고 있고,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회는 언젠가 꼭 온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직접 '마이크로 비즈니스'에 속한 몇 개의 사업을 선공적으 론칭 시키고, 경제적, 시간적, 공간적 자유를 얻었다. 돈도 벌면서, 자신의 관심사(가족,혹은 취미)에 여유를 가지고, 원하는 곳 어디서나, 이동하여 일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자유 말이다. 저자는 생계와 가치 2가지를 다 얻기 위해 마이크로 비즈니스를 꿈꿔왔고, 결실을 맺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많은 다른 소규모 사업가의 사례와 성공담을 연구하고 분석하여 이 책을 펴냈다.


 일반적인 소규모, 1인 기업의 창업이 아닌, 기존의 전통적인 직업 관념 및 분류 체계를 극복하여, 새로운 직업과 자신의 생계 뿐만이 아닌 남을 도울 수 있는 가치를 추구하는 비즈니스가 진정한 마이크로 비즈니스라고 말한다.  즐길 수 있으면서, 돈도 벌고 가치 공유를 한꺼번에 하는 이러한 비즈니스는 전에도 언급한 공유 경제와 어느정도 교집합을 이루며, 새로운 직업관을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꼭 대출은 필수적인 것이 아니며 100달러 정도로도 자신의 재능과 아이디어로 승부할 수 있고, 직원을 꼭 고용해야 하는 것이 아닌, 1인 기업의 형태 또는, 동업자와 협력을 통해서 사업을 키울 수도 있고, 기존과 동일하게 더욱 일에 수고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를 경영하는 것이 가능하다.


 일단 창업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고객/제품과 서비스/결제수단 등의 3가지 요소를 갖추면 언제 어디서든, 업무를 할 수 있다. 책에서는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는지, 고객층을 파악하는지에 대해 설명이 나와 있다. 구체적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지정하지는 않지만,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많은 주제와 맞는 사례를 나열하고는 있지만, 이미 우리가 한번 생각 해봄직한 아이디어와, 전혀 고객층이 극소수일 것으로 에상되는 사업마저도, 끝내 성공을 하는 것을 보면, 이미 레드 오션에 진입하고 있는 경우로 생각되지만, 그만큼 아직도 우리가 생각만 하고 실행은 해보지 않았던 결과일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중간에 리스트와 시트 등으로 사업계획을 학습 할 수 있는 설명도 있지만, 현재로써는 사업에 구체적으로 다가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참고만 해두었다.


 이러한 긍정적인 요소들로 책 내용을 채우고 있지만, 나에 대비해서, 약간 아쉬운 것은 책에서는 창업을 할 때, 자신의 특기와 취미를 바탕으로 사업에 접근하는 전략및 사례가 들려 있지만, 나의 경우는 아직 특기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다만 의욕만 가지고 있다는 것에 쉽게 책의 메세지에 대입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꼭 재능 뿐만이 아닌 판매하려는 아이디어의 참신함으로 승부하는 사례가 약간 있어 그나마 위안거리가 되었다.


  주로 우리 나라의 사례가 아닌 전 세계적인 다양한 그것 때문에, 로컬라이징이나, 책 자체에서 아이디어를 뽑아 낼 것은 없지만 방법론적인 부분에서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책의 한 부분을 프랜차이즈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을 보고, 나 또한 프랜차이즈로써는 경영학적 마인드보다는 또 하나의 봉급생활자로써의 전락하는 길이라고 여겨진다.


 바로 시작할 지 아니면, 앞으로 10년 후 일지는 모르지만, 책에서 전달한 것처럼, 생활함에 있어서 사물의 현상 하나하나를 꼼꼼히 관찰하는 습관을 들이고,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겟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의 사업, 마이크로 비즈니스를 시작할 그 때를 기다리며 지금 열심히 살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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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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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11/3

 

 책의 내용은 쉬운데, 생각을 정리하기가 어려워 읽다 말다 하다가, 얼른 끝내야 할 것 같아서, 읽어 치웠다. 제목이 전달하는 것처럼 단순히 채식을 하자라는 내용은 아니다. 실상은 엄청 복잡하고, 골치 아픈 문제들을 직면하여 생각해 보자는 내용. 요즘 들어 식습관과 식단과 더 나아가서는 식량 자원에 대한 문제 의식을 키우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미식가로써의 특징 보다는 다양한 맛있는 음식을 접하고 싶은 나만의 욕심이랄까.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내가 잘 아는 작가는 아니지만, 예전부터 소설을 써왔던 작가이다. 그가 르포르타쥬, 픽션의 글을 책임의식을 가지고 쓴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최소한 이 두꺼운 책을 쓰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고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직접 현장을 다녀오고, 관련자들을 인터뷰를 했던 노력을 책 속에서 발견 할 수 있어서 신뢰감을 주었다. 이렇게 발품을 팔아 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유대교인이고 대가족 아래에서 자란 그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부터 문제를 제기하여 시작하였다. 어렸을 적 먹을 것 대한 가치관의 확립부터, 자라서는 채식주의자가 되기 위한 결심을 가지기 위할 때까지. 한번에 신념을 가지고 사진이 20여년 이상을 가지고 있던 식습관을 버리기란 상당히 힘든 일이고, 저자 도한 스스로 채식을 했다, 놓았다 하였다. 그러나, 채식을 하겠다는 목표는 꾸준히 가지고 있고, 그가 물리적인 채식선언이 아닌 진심으로 어떠한 신념아래서 생겨난 마음가짐으로 채식을 선언하게 되는 순간 자유롭게 되었다.

 

 이 책은 단순히 채식주의와 잡식주의와의 대결구도가 아니고, 현대 사회에 만연하게 된 과잉 육식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의식을 바로 잡게끔 독자들에게 실상을 알려주고 생각을 하게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그리고 이러한 육식을 시장에 전파하는 공장식 축산업에 대한 비판과, 동물과 사람으로써의 윤리적 관점을 철학적인 문제 제기를 통해 생각하게끔 깊은 내용을 지닌 책이다.
 핵심적인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다소 난잡한 작은 단위로써의 단어 설명으로 점차 범위를 넒혀 핵심에 접근하는 방식 사용해서 진위파악과 방대한 정보때문에 이해는 힘들었으나, 여러번 읽으면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제일 핵심 적인 메세지는 현대인들은 육식을 과하게 한다는 점. 그로 말미암에 소비자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축산업은 점차 가족적인 목축업에서, 재벌및 대기업의 주도 하에, 공장식 축산업을 발전되기에 이른다. 공장식 축산업은 가축을 과학적인 기술을 이용하여, 창조주와의 애초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온갖 항셍제와 약을 주입시키고,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동물을 좁은 공간에 가두어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가축을 공장식으로 사육하여 고기를 생산해 내는 산업을 말한다. 때문에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고기는 위의 비윤리적, 비인도적, 비상식적, 비위생적인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르게 된다. 점점 육류의 가격은 내려가고, 우리는 더 많은 고기를 소비하게 된다. 비단 건강의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고기를 얻기 위해, 사료로 쓰는 곡물은 산림을 파괴하여 늘리는 경작지에서 생겨나며, 이 것은 종의 단순화, 사료의 대량 생산화를 위해 또다시 화학비료를 개발하고, 유전자를 조작하는 품종을 개발하는 비자연적인 처리를 통해 만들어진 생산물이다. 이러한 곡물은 빈곤한 국가의 식량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량이지만, 이 것은 가축을 먹이기 위해 생산되었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돌아가지 않는 비극적인 식량이다. 파괴된 산림은 생태계의 상태 악화를 가져오고,  지구온난화를 초래하여, 자연적인 지형과 자원을 없앤다. 이것은 종국에는 인간에게 돌아온다.

 

 위 상황만 본다면 상당히 상황이 최악에 도래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생산된 축산물은 인간의 건강을 위협한다. 만약 한 명의 인간이 2평의 공간에서 먹기만 하고, 싸기만 하고, 운동부족으로 골다공증맟 과다비만의으로 고통을 겪고, 약물을 주입받아 죽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도축장에 실려가 온전치 못한 마취로 의식과 신경이 살아있는 상황에서 쇠톱과 전기 충격기로 온몽이 잘리고 난자당하는 고통을 견딜 수가 있을까? 이러한 고기가 과연 건강한 고기가 될 수 있을까? 이 고기를 먹으면 얼마나 건강에 위협을 줄 수 있을까?

 

 또한 윤리적인 방향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인간과 동일한 생명을 부여받았음에도, 인간의 수명의 몇십분의 일을 고통스럽게 살아가다가 죽는 동물의 권리를 비록 지켜지지 못할 뿐이지만 최소한 살아가는 시간동안에는 고통을 최소한 억제하고, 자유를 최대한 줌으로써 윤리적인 방법으로 가축을 키울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책 안에 있다.

 

 거의 공장식 축산업이 시장을 잠식하고, 우리들의 식생활도 필요 이상으로 고기를 소비하는 추세로 가고 있는 시점에서, 이 정도 파악했으면 우리의 할 일은 고기 섭취를 줄이는 길이다. 나 또한 고기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줄이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는 가족농의 소규모 축산업에서 더 좋은 환경에서 행복하게 지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고기를 소비하도록 노력하고, 공장식 축산업의 희생되는 고기 소비를 줄임으로써,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하려는 노력을 동시에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맛있는 채식 음식이 많이 등장하고, 권위자들이 채식을 권유하고 직접 행동함으로써, 사회의 분위기및 비인도적인 축산업에 대한 응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공장식 축산업을 위축시키고 소멸시키는 방법은 우리가 그 생산품을 소비하지 않고, 보이콧하면 된다.

 

 옛날, 오래전에 고기를 필요량 만큼 소비했던 그때는 채식을 하더라도 강건한 몸과 체력을 가질 수 있었다. 과도한 체중증가로 건강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채식을 당장 하자는 것이 아니다. 나처럼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고기를 못끊을 것이고, 그것이 비윤리적인 행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공장식 축산업을 빨리 황폐화시키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목표이자 바램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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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정호승.안도현.장석남.하응백 지음 / 공감의기쁨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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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1/24


 다들 그렇듯이 사랑이라는 것 때문에, 다른 것은 다 제껴두고 슬퍼하고 기뻐할만큼 빠져들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누구나, 이 때는 시인이 된다. 세상이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느껴지고, 그 누구보다 절망에 빠졌다고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대론 허망하게 시간의 치유법에 따라 잊어버리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랑을 만나서 덮어버리곤 한다.


 이 때는 그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 시 한 구절 한 구절마다 내 얘기이고 마치 나를 위한 이야기인 것처럼. 그리고 나도 내 마음을 털어서 시 한 편을 쓰고 싶었던 그 순간. 물론 대부분의 정인들은 그 마음을 시로 치환하지는 않았겠지만, 이 책에서는 시로 써 그 마음을 표현하여 아름답던 추억과 절망의 기억의 편린을 남겼었던, 그렇지 않으면, 그러한 마음을 담았던 시들을 느끼며, 추억하는 3명의 시인과 1명의 문학인이 자신의 시에 대한 고백을 써 내려간다.


 시인들의 연배와 살아온 시대상이 비슷한 지 몰라도, 약간씩은 그 생각들이 겹치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시인은 그 시대의 시대정신을 버리고서는 그 아픔을 견디기는 힘들었을 테지. 그러나 슬픔과 아픔, 기쁨과 희열은 항상 동일한 시를 바라보며 느끼진 않는다. 모든 시가 똑같은 메세지로 가슴 속에 들어선다면, 세상은 얼마나 단조로울까. 여기 4명의 공통 저자들은 획일적인 정답을 위한 시의 해석이 아닌, 자신의 경험과 기억에 비춰서 그 시를 자신만의 언어로 해석한다. 그것이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때로는 시인과 시와의 관계가 어색할 때도 있다.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 는 그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의 피를 끓게 했는가? 하지만, 그는 지금 그런 시대정신을 잃어버리고, 기득권 세력에 붙고 말았다. 그 옛날 서정주 시인의 아름다운 시들은 시인 자신의 친일행각으로 약간은 퇴색했기는 하지만, 아름다운 시 자체가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어느 시가 유명하고. 어느 시인이 유명하다는 건 그냥 일반적인 잣대이다. 우리는 우리와 나의 마음의 호수에 물결을 일으키는 시를 발견하는것이 소망이고, 기쁨이다. 특히 사랑에 대한 시는 정답이 없고 끝도 없으나 나는 계속 갈망할 것 같다. 쉬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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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 박찬일 셰프 음식 에세이
박찬일 지음 / 푸른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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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11/23

 

어렸을 때는 그다지 먹을 것에 대한 기억이 없다. 5살 이전에는 드문드문 조각처럼 나는 기억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덩어리에서 내가 좋아하는 맛의 기억은 흐릿하기만 하다.


 내 또래 아이들에게는 어릴 때의 맛은 단연 '과자'였다. 그 중에서도 '불량식품'에 대한 향수는 먹을 것에 대한 욕심 보다는 더 달콤하고 짜릿한 맛을 갈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자라면서는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시골로 낙향하여 살아온 것에 대한 약간은 서글픈 기억만 있다.


 삼시 세 끼 밥을 먹는 것은 부족함이 없었지만, 더욱 맛있는 간식을 먹고 싶었고, 특히 고기를 많이 먹고 싶었다. 삽겹살에 대한 추억은 우리 나라 사람이라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다 가지고 있을 터. 돌아가서, 밥상머리에서 살짝 내는 나의 투정은 아버지의 서슬어린 호통에 사라져버리기 일 수 였고, 밥상에서 먹는 맛은 단조롭기 그지 없었다.


 맛에 대한 기억은 유년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촌놈이라 레스토랑에서 칼질 해 본 경험이 없던 나와 내 동생으로써는 처음 겪는 경양식집 돈까스에 대한 추억이 단연 떠 오른다.. 무슨 행사날 엄마 손이 나 잡고 따라나가야 맛볼 돈까스와 코스로 나오는 크림스프에 대한 찬미는 아직도 생생하다.


 서울로 아버지 친구를 만나러 손잡고 같을 때 처음으로 상봉터미널에 버스를 타고 구경갔고, 동대문운동장역에서 옷가게를 하시던 아버지 친구의 사모님과 함께 갔던 켄터키프라이드치킨의 맛은 지금 생각해보면 입에서 녹는 맛이었다. 그 이후 동네에서 먹던 '이서X 양념치킨' 따위는 너무도 촌스러운 맛이었다. 
 대학 올라온 이후로는 나의 맛에 대한 집착은 더 해갔다. 다만 뭐 비싸고 특별하고, 스페셜한 맛보다는 어떤 순간 누구와 함께 했다는 것이 제대로 양념으로 작용했고, 나의 기분이 어떠했는지는 더더욱 중요한 비밀의 레시피로써 자리잡았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은 정말 내가 속이 엄청 상해있을 때, 최악의 요리로써 느겨졌고, 대충 만든 유부초밥을 그 누군가가 행복하게 먹어주는 것을 보면서 즐길 때에는 엄청난 진미로 느껴졌고, 특별한 요리로서 기억에 남는 것이다.


 아직 많은 사람들 중에 맛에 대한 정도에서는 거의 빗겨나갔다고 볼 만큼 미각이 특출 난것도 아니어서 맛집에 대한 집착은 덜했지만, 내가 어떤 음식을 갈구하고, 이 행복을 누군가와 함게 한다면 그 것만큼 추억으로써 소중하게 남는 것은 없을 것이다.


 저자는 모든 행복했던 기억들은 먹는 것도 한 몫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특히 식재료 하나하나는 맛을 따져봤을 때, 서로 경중과 상하 고하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 할 정도로 다양한 맛에 대한 기억을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서술하였다. 내가 별로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요리조차, '아 꼭 한번 먹어보고 싶다.'라고 할 만큼 이야기는 맛깔나고, 재대로 맛에 몰입하게 한다. 그리고 독자들로 하여금 그 기억의 장소에 가서 비밀을 공유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게끔 한다. 박찬일 쉐프는 이 것을 의도하고자 이렇게 했는가? 그렇다면 그는 정말로 한국에서 몇안되는 제대로 된 식당 홍보사업가라고 부를 수 있겠다.


 여러 책을 읽다가 보면, 여운이 남는 부분이 많다. 그 중에서 음식에 관련된 부분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아, 이 사람이 실연할 때, 마셧던 커피의 맛은 어땟을까? 나도 그렇지 않았을까?, '이 사람이 큰 전투를 앞두고 마셨던 술의 맛은 어땠을까? 등등.' 박찬일 쉐프는 그 느낌을 상상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맛에 대한 화살표를 쫓아가서, 그 것에 대한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낸다. 그 자신이 먹었던 그 요리는 나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점차 건강을 생각하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식재료는 웰빙이나 유기농의 키워드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전에 맛볼 수 있었던 그 맛은 과학의 힘이나, 기업농의 대량생산의 발전에 다라 퇴색해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약간은 부족했지만,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맛볼 수 있었던 요리들은 그렇게 추억의 요리로 멀어져 가고, 다른 한편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은 더욱 소박한 밥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가끔 욕심을 부려 건강을 계속 생각할 순 없더라도 소중한 기억을 남겨줄 음식을 즐긴다는 것은 자연도 용서를 해주지 않을 까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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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노동의 이유를 묻다 ㅣ 주니어 클래식 6
노명우 지음 / 사계절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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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11/25


 막스 베버가 저술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종교혁명 직후 칼뱅의 '예정설'을 바탕으로 신도들의 사후 세계에 천국에 가는 사람은 예정되어 있다는 믿음을 자본주의 논리를 적용하여, 결국 신도들 개개인은 천국에 가는 것이 정해져 있으니, 그 증거로 현재 삶에서 성공적인 것을 보여줘야 하는 증거를 만들어 내야 하는 다는 신념 하에 노동윤리가 발달했다고 말한다. 신교도들, 그러니가 프로테스탄트로 불려지는 사람들은 경제활동을 위해 금욕적인 삶을 살고 근면성실하게 노동을 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부를 쌓은 사람들은 이미 사후 세계에 구원을 받을 사람들의 증거를 보여줘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자본주의의 밑바탕이 되어, 많은 노동자들을 더욱 숙련되게 만들기 위해 자본주의 초기의 기업에서 적용하였다. 그것은 이제 종교를 향한 신념에서, 인생의 성공을 거두기 위한 증거를 찾기 위한 욕망에서 꽃피우는 자본주의 정신이었다. 이 시기에 많은 사람은 시간을 철저히 관리하며, 돈을 버는 것으로 그 증거를 찾으려고 자본주의의 노동윤리가 세속적으로 수정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는 말 그대로 열심히 일하면 돈을 많이 벌고, 더욱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그러한 사회적 지위가 향상된 많은 사람들이 나왔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프랭클린'이라고 저자는 언급한다. 이 대표적으로 금욕과 자기관리를 통해 사회적으로 명망을 쌓고, 성공한 인물을 대변하는 인물은 노동을 통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보여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노동윤리를 따랐다.


 현대 저명한 경제학자중 하나인, '토드 부크홀츠'가 주장하는 바에 빠르면, 사람은 일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하에서,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것은 자아실현이며, 더욱 자신의 가치를 높힐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어차피 평범한 인간은 일을 해야 살아갈 수 있다. 먹고 입고 자는 것 자체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경제활동을 해야 수입이 발생하며, 그 수입은 다시 소비를 위한 촉매제의 역할을 하니까. 그런데, 워낙 일을 꼭 해야하는 것이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고 정주영 회장이 그랬던가? 그 다음날 일할 것이 너무나 기뻐서 잠도 제대로 못 이루었다고.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런 마음가짐이 임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일은 괴롭다. 나의 에너지를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쏟아 부어야 하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수면, 취미생활, 여행 등등의 여가활동을 줄여가면서 그 시간을 소비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는 일벌레야 말로 취고의 찬사이며, 그런 사람이 많은 회사일수록 성장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에야 몇몇 작은 회사들은 실험적인 직원복지정책을 취하며, 직원들로 하여금 최대한 노동을 함에 있어서 편안하고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 주려고 하지만, 그래도 일을 변함이 없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 자체가 좋을 지 몰라도, 일하는 환경이나, 복지, 동료들 성향, 급여수준은 더욱 복잡하게 일에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급여가 쎄면 즐거운 마음으로 고된 일이하도 하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월급이 많고, 최상의 근로 환경이더라도 상사가 '개' 같은 인간이면 최악의 마음가짐으로 일을 증오하게 되기까지 한다.


 일부 사람들은 직장의 부품으로 취급당하는 것을 거부하며, 최소한의 경제활동을 하며, 자신의 원하는 삶을 살지만, 일반인이 보기에는 너무 열악하고,초라한 삶으로 보여지는 경우가 있어 거부감이 들 수도 있고, 이미 소비생활패턴 자체가 고정이라 쉽게 의욕적으로 삶의 방식을 변경하는 것이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애를 가지고 키우는 것 자체가 이미 노동을 통하여 소득을 발생시켜야 가능한 일이므로, 우리는 이렇게 알면서도 좋아하지 않지만, 부품이 되기를 원한다. 이 책에서 언급하였듯이 생계를 넘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노동을 해야하고, 그 노동을 하게끔 하는 원천은 바로 '두려움'이다. 돈을 벌지 않으면 나중에 노후생활은 보장할 수 없어,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벌어 자기계발에 투자하고 투자활동을 하게 된다. 자본주의의 원리는 이런 하나하나의 일반인들의 노동활동 의해 기초를 다지게 되고, 이 두려움을 이용하여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관리한다. 이러한 현대인의 노동윤리의 중심은 '돈' 그 자체이다.


 하나의 종교와 자본주의와의 관계를 연관시킨 막스 베버는 자신이 활동하던 시대가 아닌 17~18세기 초기 자본주의 사회가 형성이 될 때를 분석하여, 명작을 만들었다. 하면 그 원리가 현대 사회에서도 적용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 저자가 짧지만 본격적으로 분석하여 결론을 만들었다.


 과거의 노동윤리의 원천은 '두려움'이었다면 현대인의 '두려움'도 노동을 하게 하기 위한 연료라고 말한다. 예전 프로테스탄트가 '구원'과 '선택'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면, 현대인은 '돈'에 대한 두려움을 잊기 위해 열심히 일해왔다고 말한다. 돈은 곧 사회적 성공이며, 인생의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한 방법이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현대사회에서는 이 두려움을 철저하게 이용하였다.


 그리고 그 외에 또 노동을 하게끔 하는 원인은 현대사회에서 만연한 '소비지상주의'이다. 매스미디어의 발달은 많은 더 나은 삶이라고 조명하는 화려한 모습을 일반 대중에게 보여주었고, 욕망의 실현을 위해 돈을 많이 벌게끔 격려했다. 사람들은 그래서 그 소비를 위해 더 많은 봉급을 주는 일자리를 원하고 욕망하는 삶으로 노동을 견뎌왔다.


 위 같은 상황'에서, 현대 자본주의사회는 또 다른 개념을 만들었다. '반 노동주의'는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잇는 도박이 노동의 어려움을 뒤집을 수 잇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이념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철저히 자본주의의 본질 자체를 따르는 삶이다. 개인적으로 주식투자 자체도 하나의 합법적 도박행위 라고 여기지니까. 누구는 이득을 보면, 누구는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이 자본주의에서 최고의 미덕이 투자자로써의 성공이라면, 그 뒤에는 개미의 눈물이 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 노동주의'는 노동 자체를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닌 삶의 방식이다. 노동을 통해 삶의 방식이 개선되고 자아실현을 꿈꿀 수 있는가? 단순한 공장노동 자체가 이를 뒷받침 하는 근거로 보기엔 말도 안된다. 비 노동주의를 따르는 사람은 노동윤리는 상위자가 하위자를 억압하고 통제하기 위한 하나의 기계장치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런 기계장치의 부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원치 않으며, 굴복하지 않기위한 자율적인 노동을 꿈꾸고 자신이 원하고 자기실현을 할 수 잇는 노동화동을 원한다. 칼 막스의 사위인 '라파르그'는 게으를 수 있는 귄리라고 이를 설명하였다.


 과연 나와 우리는 어떤 방식의 삶을 꿈꾸며 살 것인가? 소비지향적인 삶으로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노동활동을 할 것인가? 조금 부족하더라고 나 만을 위한 진정한 노동활동을 할 것인가? 어느 것에 정답은 없다. 누구도 정답을 내려줄 절대자는 없고 언제나 비판은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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