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6~11/25
막스 베버가 저술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종교혁명 직후 칼뱅의 '예정설'을 바탕으로 신도들의 사후 세계에 천국에 가는 사람은 예정되어 있다는 믿음을 자본주의 논리를 적용하여, 결국 신도들 개개인은 천국에 가는 것이 정해져 있으니, 그 증거로 현재 삶에서 성공적인 것을 보여줘야 하는 증거를 만들어 내야 하는 다는 신념 하에 노동윤리가 발달했다고 말한다. 신교도들, 그러니가 프로테스탄트로 불려지는 사람들은 경제활동을 위해 금욕적인 삶을 살고 근면성실하게 노동을 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부를 쌓은 사람들은 이미 사후 세계에 구원을 받을 사람들의 증거를 보여줘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자본주의의 밑바탕이 되어, 많은 노동자들을 더욱 숙련되게 만들기 위해 자본주의 초기의 기업에서 적용하였다. 그것은 이제 종교를 향한 신념에서, 인생의 성공을 거두기 위한 증거를 찾기 위한 욕망에서 꽃피우는 자본주의 정신이었다. 이 시기에 많은 사람은 시간을 철저히 관리하며, 돈을 버는 것으로 그 증거를 찾으려고 자본주의의 노동윤리가 세속적으로 수정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는 말 그대로 열심히 일하면 돈을 많이 벌고, 더욱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그러한 사회적 지위가 향상된 많은 사람들이 나왔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프랭클린'이라고 저자는 언급한다. 이 대표적으로 금욕과 자기관리를 통해 사회적으로 명망을 쌓고, 성공한 인물을 대변하는 인물은 노동을 통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보여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노동윤리를 따랐다.
현대 저명한 경제학자중 하나인, '토드 부크홀츠'가 주장하는 바에 빠르면, 사람은 일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하에서,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것은 자아실현이며, 더욱 자신의 가치를 높힐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어차피 평범한 인간은 일을 해야 살아갈 수 있다. 먹고 입고 자는 것 자체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경제활동을 해야 수입이 발생하며, 그 수입은 다시 소비를 위한 촉매제의 역할을 하니까. 그런데, 워낙 일을 꼭 해야하는 것이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고 정주영 회장이 그랬던가? 그 다음날 일할 것이 너무나 기뻐서 잠도 제대로 못 이루었다고.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런 마음가짐이 임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일은 괴롭다. 나의 에너지를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쏟아 부어야 하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수면, 취미생활, 여행 등등의 여가활동을 줄여가면서 그 시간을 소비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는 일벌레야 말로 취고의 찬사이며, 그런 사람이 많은 회사일수록 성장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에야 몇몇 작은 회사들은 실험적인 직원복지정책을 취하며, 직원들로 하여금 최대한 노동을 함에 있어서 편안하고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 주려고 하지만, 그래도 일을 변함이 없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 자체가 좋을 지 몰라도, 일하는 환경이나, 복지, 동료들 성향, 급여수준은 더욱 복잡하게 일에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급여가 쎄면 즐거운 마음으로 고된 일이하도 하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월급이 많고, 최상의 근로 환경이더라도 상사가 '개' 같은 인간이면 최악의 마음가짐으로 일을 증오하게 되기까지 한다.
일부 사람들은 직장의 부품으로 취급당하는 것을 거부하며, 최소한의 경제활동을 하며, 자신의 원하는 삶을 살지만, 일반인이 보기에는 너무 열악하고,초라한 삶으로 보여지는 경우가 있어 거부감이 들 수도 있고, 이미 소비생활패턴 자체가 고정이라 쉽게 의욕적으로 삶의 방식을 변경하는 것이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애를 가지고 키우는 것 자체가 이미 노동을 통하여 소득을 발생시켜야 가능한 일이므로, 우리는 이렇게 알면서도 좋아하지 않지만, 부품이 되기를 원한다. 이 책에서 언급하였듯이 생계를 넘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노동을 해야하고, 그 노동을 하게끔 하는 원천은 바로 '두려움'이다. 돈을 벌지 않으면 나중에 노후생활은 보장할 수 없어,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벌어 자기계발에 투자하고 투자활동을 하게 된다. 자본주의의 원리는 이런 하나하나의 일반인들의 노동활동 의해 기초를 다지게 되고, 이 두려움을 이용하여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관리한다. 이러한 현대인의 노동윤리의 중심은 '돈' 그 자체이다.
하나의 종교와 자본주의와의 관계를 연관시킨 막스 베버는 자신이 활동하던 시대가 아닌 17~18세기 초기 자본주의 사회가 형성이 될 때를 분석하여, 명작을 만들었다. 하면 그 원리가 현대 사회에서도 적용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 저자가 짧지만 본격적으로 분석하여 결론을 만들었다.
과거의 노동윤리의 원천은 '두려움'이었다면 현대인의 '두려움'도 노동을 하게 하기 위한 연료라고 말한다. 예전 프로테스탄트가 '구원'과 '선택'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면, 현대인은 '돈'에 대한 두려움을 잊기 위해 열심히 일해왔다고 말한다. 돈은 곧 사회적 성공이며, 인생의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한 방법이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현대사회에서는 이 두려움을 철저하게 이용하였다.
그리고 그 외에 또 노동을 하게끔 하는 원인은 현대사회에서 만연한 '소비지상주의'이다. 매스미디어의 발달은 많은 더 나은 삶이라고 조명하는 화려한 모습을 일반 대중에게 보여주었고, 욕망의 실현을 위해 돈을 많이 벌게끔 격려했다. 사람들은 그래서 그 소비를 위해 더 많은 봉급을 주는 일자리를 원하고 욕망하는 삶으로 노동을 견뎌왔다.
위 같은 상황'에서, 현대 자본주의사회는 또 다른 개념을 만들었다. '반 노동주의'는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잇는 도박이 노동의 어려움을 뒤집을 수 잇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이념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철저히 자본주의의 본질 자체를 따르는 삶이다. 개인적으로 주식투자 자체도 하나의 합법적 도박행위 라고 여기지니까. 누구는 이득을 보면, 누구는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이 자본주의에서 최고의 미덕이 투자자로써의 성공이라면, 그 뒤에는 개미의 눈물이 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 노동주의'는 노동 자체를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닌 삶의 방식이다. 노동을 통해 삶의 방식이 개선되고 자아실현을 꿈꿀 수 있는가? 단순한 공장노동 자체가 이를 뒷받침 하는 근거로 보기엔 말도 안된다. 비 노동주의를 따르는 사람은 노동윤리는 상위자가 하위자를 억압하고 통제하기 위한 하나의 기계장치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런 기계장치의 부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원치 않으며, 굴복하지 않기위한 자율적인 노동을 꿈꾸고 자신이 원하고 자기실현을 할 수 잇는 노동화동을 원한다. 칼 막스의 사위인 '라파르그'는 게으를 수 있는 귄리라고 이를 설명하였다.
과연 나와 우리는 어떤 방식의 삶을 꿈꾸며 살 것인가? 소비지향적인 삶으로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노동활동을 할 것인가? 조금 부족하더라고 나 만을 위한 진정한 노동활동을 할 것인가? 어느 것에 정답은 없다. 누구도 정답을 내려줄 절대자는 없고 언제나 비판은 있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