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 박찬일 셰프 음식 에세이
박찬일 지음 / 푸른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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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11/23

 

어렸을 때는 그다지 먹을 것에 대한 기억이 없다. 5살 이전에는 드문드문 조각처럼 나는 기억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덩어리에서 내가 좋아하는 맛의 기억은 흐릿하기만 하다.


 내 또래 아이들에게는 어릴 때의 맛은 단연 '과자'였다. 그 중에서도 '불량식품'에 대한 향수는 먹을 것에 대한 욕심 보다는 더 달콤하고 짜릿한 맛을 갈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자라면서는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시골로 낙향하여 살아온 것에 대한 약간은 서글픈 기억만 있다.


 삼시 세 끼 밥을 먹는 것은 부족함이 없었지만, 더욱 맛있는 간식을 먹고 싶었고, 특히 고기를 많이 먹고 싶었다. 삽겹살에 대한 추억은 우리 나라 사람이라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다 가지고 있을 터. 돌아가서, 밥상머리에서 살짝 내는 나의 투정은 아버지의 서슬어린 호통에 사라져버리기 일 수 였고, 밥상에서 먹는 맛은 단조롭기 그지 없었다.


 맛에 대한 기억은 유년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촌놈이라 레스토랑에서 칼질 해 본 경험이 없던 나와 내 동생으로써는 처음 겪는 경양식집 돈까스에 대한 추억이 단연 떠 오른다.. 무슨 행사날 엄마 손이 나 잡고 따라나가야 맛볼 돈까스와 코스로 나오는 크림스프에 대한 찬미는 아직도 생생하다.


 서울로 아버지 친구를 만나러 손잡고 같을 때 처음으로 상봉터미널에 버스를 타고 구경갔고, 동대문운동장역에서 옷가게를 하시던 아버지 친구의 사모님과 함께 갔던 켄터키프라이드치킨의 맛은 지금 생각해보면 입에서 녹는 맛이었다. 그 이후 동네에서 먹던 '이서X 양념치킨' 따위는 너무도 촌스러운 맛이었다. 
 대학 올라온 이후로는 나의 맛에 대한 집착은 더 해갔다. 다만 뭐 비싸고 특별하고, 스페셜한 맛보다는 어떤 순간 누구와 함께 했다는 것이 제대로 양념으로 작용했고, 나의 기분이 어떠했는지는 더더욱 중요한 비밀의 레시피로써 자리잡았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은 정말 내가 속이 엄청 상해있을 때, 최악의 요리로써 느겨졌고, 대충 만든 유부초밥을 그 누군가가 행복하게 먹어주는 것을 보면서 즐길 때에는 엄청난 진미로 느껴졌고, 특별한 요리로서 기억에 남는 것이다.


 아직 많은 사람들 중에 맛에 대한 정도에서는 거의 빗겨나갔다고 볼 만큼 미각이 특출 난것도 아니어서 맛집에 대한 집착은 덜했지만, 내가 어떤 음식을 갈구하고, 이 행복을 누군가와 함게 한다면 그 것만큼 추억으로써 소중하게 남는 것은 없을 것이다.


 저자는 모든 행복했던 기억들은 먹는 것도 한 몫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특히 식재료 하나하나는 맛을 따져봤을 때, 서로 경중과 상하 고하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 할 정도로 다양한 맛에 대한 기억을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서술하였다. 내가 별로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요리조차, '아 꼭 한번 먹어보고 싶다.'라고 할 만큼 이야기는 맛깔나고, 재대로 맛에 몰입하게 한다. 그리고 독자들로 하여금 그 기억의 장소에 가서 비밀을 공유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게끔 한다. 박찬일 쉐프는 이 것을 의도하고자 이렇게 했는가? 그렇다면 그는 정말로 한국에서 몇안되는 제대로 된 식당 홍보사업가라고 부를 수 있겠다.


 여러 책을 읽다가 보면, 여운이 남는 부분이 많다. 그 중에서 음식에 관련된 부분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아, 이 사람이 실연할 때, 마셧던 커피의 맛은 어땟을까? 나도 그렇지 않았을까?, '이 사람이 큰 전투를 앞두고 마셨던 술의 맛은 어땠을까? 등등.' 박찬일 쉐프는 그 느낌을 상상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맛에 대한 화살표를 쫓아가서, 그 것에 대한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낸다. 그 자신이 먹었던 그 요리는 나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점차 건강을 생각하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식재료는 웰빙이나 유기농의 키워드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전에 맛볼 수 있었던 그 맛은 과학의 힘이나, 기업농의 대량생산의 발전에 다라 퇴색해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약간은 부족했지만,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맛볼 수 있었던 요리들은 그렇게 추억의 요리로 멀어져 가고, 다른 한편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은 더욱 소박한 밥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가끔 욕심을 부려 건강을 계속 생각할 순 없더라도 소중한 기억을 남겨줄 음식을 즐긴다는 것은 자연도 용서를 해주지 않을 까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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