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바다 - 바다에서 만들어진 근대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25~9/21

 

바닷길이 열리면서, 세계는 격동을 맞았다. 현존했던 여러 문명은 육로를 통해서 점진적으로 교류를 해가면서 융합된 문화를 탄생시켰지만, 대양을 건너 서로 극단적으로 이질적인 문명끼리의 충돌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그것이 후세에 비극이 될지, 찬란한 초석이 될지도 모른 채 말이다.

 세계사의 석학 중 하나의 주경철 교수의 저서로써, 내용의 수준을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교양수준에 맞추면서, 영양가를 빠뜨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던 책이다.

 

 기존의 세계사 주류가 대륙중심의 서술형식이었다면, ‘문명과 바다’에서는 대양을 중심으로 서술된 역사를 설명해준다. 시간의 흐름보다 세계사에 중요한 기여를 했던 키워드 위주로 설명을 해서, 일반 독자들이 편하게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필요한 챕터를 뽑아서 봐도 큰 무리가 없다.

 

 내 나이 또래들이라면 상당수 알고 있는 ‘대항해 시대’라는 게임이 있다. 일본에서 만들어 졌지만, 게임은 유럽 포르투갈, 스페인을 필두로 유럽을 중심세력으로 삼고 내용이 시작되는 것처럼, 지금까지의 세계사 연구는 서양사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왔고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게 게임처럼 낭만적인 이야기는 아니었다.

서양문명을 우수한 문명으로 인식하여, 그들의 위주의 관점으로 서술 되다 보다 아시아는 물론 신대륙의 독창적인 문명까지 저급한 문명으로 마치 서양이 구세주로써 종교와 문화를 미개한 문명권에 전달한 것처럼 쓰여져 있다는 것에 시각을 바로잡아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시각을 기초로 최대한 양자간 문명에 대해 동등하게 유지하여 설명을 하려고 애썼다.

 

그러면서, 우리 대중이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려주면서 해양문명의 발달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끔 해줬다. 최초의 해양교류의 중심은 중국이 앞서 갔다는 것.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배운 짤막한 분량의 정화의 대양 원정은 아프리카까지 명나라의 함대가 도착했으리라고 생각했지, 그것이 얼마나 세계사의 중요한 포인트인지는 그 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함대가 무역을 위해 식민지를 건설할 의도로 함대가 대양으로 나간 것이 그로부터 상당히 뒤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만약 명나라 함대가 식민지를 목적으로 계속하여 함대를 대양에 보냈다면, 지금 역사는 상당히 현재와 다른 양상으로써 동아시아 중심의 역사가 되었을 것이라고도 추론해본다. 어디까지나 추론이다.

 

 서양 함대가 대양을 건너 세계로 나갔을 계기는 이슬람 세력의 육로 봉쇄로 인한 새로운 루트의 무역을 위함이었지만, 그것은 점차 욕심으로 발전하여 무역을 넘어서 식민지 건설로 이어지고 월등한 기술을 이용하여 현지를 잔인하게 무력으로 써 짓밟고 기독교를 전파하는 과정까지 강제로 진행하는 등의 폭력적으로 변질되어 갔다.

 

 기독교의 아들을 자처하는 서양인들은 인종적으로 신대륙의 거주민을 열등한 민족으로 치부하고, 아프리카에서는 노예까지 만들어 신대륙에 자신들의 식민지의 노동력으로 삼는 등 자신들의 섬기는 신에 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신대륙의 풍부한 자원은 오히려 그들의 숨통을 죄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신대륙은 여러 작은 문명권들이 국가의 강력한 중심체제로써 이루어지지 않아 침탈이 심했지만, 인도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중앙집권의 역할을 하는 국가가 존재하였기에 그 정도가 덜했으나, 인도와 동남아는 그 문화의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물리력에 의해 기운을 잃고 식민지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 

 

 세계는 대양을 지배한 서양인들에 의한 침탈에 그들이 우월한 문화를 전파하는 억압구조로 재편되었다. 이는 해양횡단이 없었던 시절에 꽃피웠던 개개의 작은 문화들이 용광로에 녹아 없어지고, 서양중심의 문화와, 몇 개의 나름대로 무게를 지니고 있던 동양 문화만 남겨졌다. 자칫 서양문화의 우수성이 미개한 다른 문화를 눌러 없앴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 이는 민족우월주의와 연관되는 위험한 사상으로 변질되기도 하고, 책에서도 우려하는 내용을 볼 수 있다.

 

 정신적인 부분뿐만이 아닌, 대륙과 대륙간의 갑작스러운 교류는 생태환경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 새로운 바이러스와 병균이 신대륙과 유럽을 오가는 과정에서 많은 다양한 생물이 멸종되었고, 인위적으로도 인류의 욕심 때문에 멸종된 종들도 있다. 상당히 다양한 생물 종들은 지구의 긴긴 역사의 작은 손톱만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자취를 감추게 되는 서글픈 현실이 발생하기에 이르렀고, 그것을 막기 위한 인류의 역사와 생태학적 인식은 미약하였다.

 

 역사에서 배운다고 했다. 이러한 문명간의 충돌은 현재도 지금 계속되고 있다. 바다를 넘어 하늘을 이미 정복한 문화는 새로운 판도를 보여준다. 하나의 문명으로 흡수되어 사라지느냐, 독창적인 문화를 유지하면서, 후세에게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게끔 하느냐는 현재 역사인식을 어떻게 가지고 살아가는지 우리 자신에게 달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사랑하느냐고 묻거든 - 우리 시대 시인 57인이 노래한 사랑의 신작시 문학사상 테마시집 1
김남조.고은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할 때 사랑하라

 

정일근

 

사랑할 때 사랑하라.

열 손가락이 잘려나가도

손가락 마디 하나 남아 있다면

두 팔을 내어주어도

남은 눈물이 있다면

사랑하라, 사랑이

두 눈알을 다 가져가버려도

사랑이 몸뚱이만 남겨놓아도

사랑이 남아 있다면 사랑하라

지구별에 다시 빙하기가 오고

지구가 두꺼운 얼음에 덮여

검독수리가 죽고

향유고래가 죽고

흰 민들레가 죽고

오직 외발 하나 딛고 설 땅이 있다면

사랑하라

그 땅에 한 발 딛고 서서

나머지 한 발 들고 서 있을 수 있다면

사랑하라, 사랑은

용서보다 거룩한 용서

기도보다 절실한 기도

아무것도 가질 수 없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도

사랑이 있다면 사랑하라

사랑할 때 사랑하라

 

예전에는 나도 이랬었지, 좋았었지, 아름다웠지 푸념이 아닌 그 순간의 존재함을 깨달았을 때,

지금의 내가 있고, 그 순간을 즐겁게 추억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런 기억도 추억도 없이 살아갔다면, 얼마나 심히 메말랐고, 내 자신을 더 슬프게 느꼈을 것인지.

 기억의 책장의 갈피를 열고 내가 살았던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설레는 마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김종배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6/19~6/30

'이털남'의 명징한 진행으로 많은 시민들로 부터 시원함을 전달해 주는 시사평론가 김종배씨의 저서이다.

 일반적으로 비판적인 시각을 기르기 위해, 관점이 다른 극단의  신문을 보거나 아니면 중도적인 입장의 신문기사를 보면서 시각을 넓히라고들 하지만, 그는 이 책을 통해, 뉴스가 다 옮다는 생각 대신, 뉴스를 낱낱히 파헤쳐 해부하여, 이 뉴스가 거짓을 가지고 있는지 진실은 얼만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여, 뉴스를 재구성하여 독자가 진실을 파악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가지고, 그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핵심으로 나와있다.

 

 개인적으로도 내 입장과 맞물려 있는 뉴스를 보면 시원하고, 진실이라고 주장하게 되고, 반대편 입장의 논조를 가진 기사를 보면, 거짓임을 부르짖게 되는 것이 일상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진보하다고 여기는 언론사마저, 진실만을 얘기하지 않는다고 강변하며, 부적절한 관계를 찾아내는 '합리적 의심'을 무기삼아 숨어있는 진실까지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언론이 뉴스를 통하여 말하는 바가 100%  팩트는 있을 수, 없고, 심지어는 추측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용의 저질스런 기사도 있지만, 우리는 이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말고, 해부할 수 잇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뉴스 내부의 부적절한 관계를 찾아내어 합리적 의심능력을 키워야 할뿐만 아니라, 뉴스를 둘러싼 외부적인 환경과 뉴스 자체가 가지고 있는 사건의 부적절한 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정치적 의심'이라는 능력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적 의심'은 뉴스가 가진 의도와 숨은 목적을 발견하는 과장인 것이다.그면서 이를 사실을 다시 덮을 목적인지, 여론을 호도할 목적인지를 스스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논리적으로 글쓰기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타 독자의 서평과는 달리 나는, 이 세번째 부분에서 중요한 것을 배웠다. 그는 글쓰기는 화려한 표현과 수식을 통하여, 독자로 부터 읽기 쉽게끔 느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어떤 주제에 대해 확실한 주장을 하는 글을 쓰는 방법을 사례를 통해 알려 주고 있다. 어려운 낱말과 고상한 표현의 조합의 글뭉치가 아닌, 문장과 문장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 문장과 관점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 내용과 표현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피하고 긴밀한 관계를 구성함으로써 글을 쓰는것이 좋은 글이라고 말한다.

 이런 글의 원리는 앞에서 말한 뉴스를 읽는 것과 동일한 원리를 갖고 있다고 한다. 좋은 글을 위해서는 관점을 가지고, 명명백백한 주장을 내세우는 과정이 논리적이야야 한다.  이는 화려한 변화구를 어설프고 허점이 보이도록 던지는 투수보다, 오히려 대놓고 강한 돌직구를 내리 꽂는 투수의 공과 같아 보인다.

 

 "논리적인 글은 대놓고 표현하는 글이기에 에둘러 갈 수 없다. 있는 그대로, 생각한 그대로 표현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엄밀하게 표현해야 한다. "

     p249

 

  약간은 딱딱하기도 하지만 깔끔한 설명이 있어 자칫 메마를 분위기가 있을만 하면 곧 시원한 샤워를 하는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한번으로 이해를 할 수는 없고, 두고두고 뉴스를 보면서 '합리적 의심'과 '정치적 의심'을 가지고 뉴스를 분석하는 능력을 키워야 겠고, 아직 나처럼 글쓰기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야말로, 관점을 잡고 주제를 세워 그것에 맞는 근거를 제시함며 논리적인 글을 구성하고, 주장을 내세울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겠다. 일단은 여러 생각과 복잡한 생각이 섞인 주장을 하고 싶지만, 그것보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차근차근히 하나의 주장부터 정확하게 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고 나서부터 진정한 논리적인 글쓰기를 할 수 있겠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안도현 엮음, 김기찬 사진 / 이가서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2012.3.29~2012.4.16

 

 여행에세이를 읽다보니,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거 있잔아 아름다운 것을 봤는데, 말로 표현을 못하고 생각을 표출하지 못할 때의 그 답답함은 가끔 참담하고 내가 얼마나 메마른 사람이었는지를 되돌아보게 해준다는 것.

 

그래서 시집을 보기로 했다. 그냥 개인 시집을 보면 나같이 정서적 결핍이 많은 일반인은 힘들기에 시인이 골라준 모음 시집을 읽는 것이 처음에는 좋을 것 같기도 했고, 위 책은 안도현 시인이 직접 시를 골라서 해설까지 붙여준 덕택에 그나마 함축적인 의미를 지는 시어를 이해하기 쉽고 접근하기 용이하게 책이 구성 되었다는 거. 그리고 중요한건 알라딘에서 반값행사를 한 덕에 바로 지를 수 있었다는 장점이 한 몫했다.

 

 산문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요즘 사색을 하는데 시간을 내려고 노력하면서, 시집이 오히려 읽기에 편더 좋다고 느껴졌다.

시간에 쫒길 필요없이 한 편 보고 생각하고 멍때리고 하다보면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좋았다. 꼭 무언가를 해야하는 강박관념없이. 비록 시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특히나 이 책은 고 김기찬 사진작가가 남기고간 70년대 골목길의 정겨운 풍경을 함께 올려놈으로써, 시의 소박함과 소소한 아름다움을 더욱 부가해줘서 고마웠다. 소박한 아름다움. 화려한 시도 좋지만,이렇게 우리 대중들에게 가깝게 느껴지고, 마음을 적시는 시들이 지금은 좋다.

 

 

월식

강연호

 

오랜 세월 헤매 다녔지요

세상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그대 찾아

부르튼 생애가 그믐인 듯 저물었지요. 누가 그대 가려 놓았는지 야속해서

허구한 날 투정만 늘었답니다.

상처는 늘 혼자 처매어야 했기에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흐느낌

내가 우는 울음인 줄 알았구요

 

어찌 짐작이나 했겠어요

그대 가린 건 바로 내 그림자였다니요.

그대 언제나 내 뒤에서 울고 있었다니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7~4/11

 

 현대는 바야흐로, 긍정성이 넘치는 시대이다. 할 수 있다. We can do.를 외치고, 기업에서는 목표 달성을, 개개인도 자신을 이기기 위해,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오늘도 땀흘리고 있다. 지금의 나도, 한달에 10권의 책읽기를 위해여, 강박관념과 함께 글을 쓰고 있다. 목표한 양의 살을 빼기위해, 혹독하게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미래의 장밋빛 꿈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이성과 사회에 이 책이 나왔다.

 

 시중에 나오는 거의 모든 자기계발서적들이 말하듯, 성과사회의 매커니즘은 자기를 극복하는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 라던지, 타자와의 싸움에서의 승리보다 나자신과의 승리를 위한 방법, 긍정적 사고방식, 목표는 남이 아니고 나라고 많은 사회인들을 유혹하고 자유로운 강제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 억업과 강제의 규율이 지배하는 사회의 역사를 지나서 '우리는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고 뭐든지 할 수 있다'라고 믿는 경향이 있는데,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이것 또한, 자아를 억압하는 수단이 된 다는것, 규율이 지배하는 사회는 타자가 자신의 권리를 짓밟지만, 긍정성의 과잉은 자신 스스로를 무기력에 바뜨려 버린다. 그럼으로써 우울증이 현대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정신적 질병으로써 나타나게 됨을 설명하고 있다.

 

 "긍정성의 과잉 상태에서 아무 대책도 없이 무력하게 내던져져 있는 새로운 인간형은 그 어떤 주권도 지니지 못한다. 우일한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로써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물론 타자의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강조적 의미의 자아개념은 여전히 면역학적 범주다.

 그러나 우울증은 모든 면역학적 도식 바깥에 있다.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과 능력의 피로이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 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p28

 

 어렵게 설명한 말이지만,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의 덫에 걸려 우울사회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다가설 수 없는 목표앞에 좌절하며 우리는 얼마나 많은 무력감을 느꼈던가?  그러면서 남을 탓하기 보다는 내 탓을 하고, 자아를 위축시키게 된다.

 더 무서운 사실은 우리는 이러한 사회의 무강제적인 긍정성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여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 스스로 또한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면 얼마나 자책해왔던가?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의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P29

 

 그와 동시에 피로사회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는데, 저자가 말하는게 바로 철학적 삶, 사색적 삶(Vita contemplativa)이다. 인류의 모든 활동의 철학적인 사색을 통해 발전되었다는 것을 주창하며 이러한 상태가 '한나 아렌트'가 주창하는 활동적 삶(Vita activa)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하면서, 힘을 잃어가고 있고, 열심히 활동하고 노력하라는 사조로 바뀌는 추세라고 말한다. 활동하지 않는 자는 게으른 사람으로 표현되고, 성과를 올리기 위한 시대상에 미추어 걸맞는 사유라고 설명된다.  이는 긍정성과잉주의를 받들게 되고 사람들은 위의 현상을 겪게 되며 극단적인 우울증과 삶의 피로를 얻게 된다.

 

 관조의 힘,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이를 탈출할 방법이며,  니체의 말을 빌려 어떤 일이든 하 수 있는 긍정의 힘을 숭상하는것이 아닌 모든 것을 부정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정의 상태를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긍정의 힘만 믿고 과잉성에 치달리며, 자멸하는 길로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꼭 해야하고 이루어야 하는 의무는 없다. 무의의 삶처럼 하지 않을 권리도 인간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피로사회로 불리워지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성을 상실할 수 밖에 없다고 여겨진다. 그렇게 이해했는데, 책의 내용이 잘 읽히면서도 어려워서 내가 감당한 수준은 여기가지 다시 한번 기회가 있을 때 재독을 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