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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과 공자 - 패자의 등장과 철학자의 탄생 ㅣ 제자백가의 귀환 2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평점 :
1/14~1/23
짧게 줄여서 말하자면, '관중'의 현실주의 대 '공자' 이상주의 의 대결구도 로써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공자의 '인'을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과 다르게, 귀족의 의무인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해석하며 애인(愛人)을 인간 전부가 아닌, 지배층 계층으로 한정 지으며, 사상에 대한 한계를 들어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관중의 현실감각을 '유가'가 득세하기 이전에는 왕권 강화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써 높여 올려주며, 제나라 환공이 패권을 차지하기에 절대적으로 큰 역할을 하게 한 중요한 것이라고 역설한다.
관중은 실패자의 인생을 살면서 깨닫고 얻은 현실감각을 이용하여 제나라의 재상이 되면서 부터 활용하여 능력을 꽃 피웠다. '부국강병' 정책은 그로 인해 실현되었으며, 향후 몇 세기동안 관중의 성공담이 여러 유세가와 철학자들의 꿈으로 자리잡게 되었음은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이고, 이에 공자도 있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관중의 정치 논리 키워드는 '자발적 복종'이다. 강자로써의 실력을 키워 남들이 대적하지 못하게끔 자리를 잡고, 그들을 강력한 국력으로 억압하지 않고, 우월한 위치에서 주변국들과 벼슬아치들에게 시혜를 주는 역할로써 강국을 이뤄 나간다. 이러면 약소국들은 이 지위에 만족하게 되고 감히 강자에게 대들어 깨지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관중은 '백성'이라는 지배계층에게만 베풀지 아니하고 '민'이라고 불리는 최하위 계층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직시하고 있었으며, 그 힘을 쉽게 이용할 수 있게끔 자발적 복종의 논리를 펼쳤다. 이것은 민중을 위한 정치가 하닌 민중을 이용한 정치였으며, 그는 인본주의자가 아닌 국가의 힘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패권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로 인해 민중은 패권을 가지잔에게 복종을 하게 되고, 힘을 압축하여, 타국의 지배계층만 보인 나라를 누르기 쉽게 하였다. 이것은 현대의 민주주의와는 전혀 다른 논리이며, '목민'의 뉘앙스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책에서 언급한 라 보에티의 '자발적 복종'에서도 일부 표현되었던 것처럼 가장 효율적인 지배나 억압은 민중들이 스스로 지배,억압을 당하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 못할 때 가능한 것이라고 나와있다. 이는 현대의 복지국가와 비슷한 논리이며 이에 국가가 시민에게 대해는 태도를 시민들이 스스로 잘 판단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결국에는 성공한 관중에 비해, 공자는 생애에 전혀 꽃을 피우지 못하고, 주장만을 하다가 불씨만 남기고 역사에서 사라졌던 비운의 철학자였다(물론 수세기 이후에는 화려하게 부활했지만.)
공자는 '예'의 절대적 신봉자이며, 예가 체계적이었던, '주'나라에 대한 향수를 강하게 가지고 있던 사람이다.
또한 당시 '관중'의 성공담으로 들뜬 각종 철학자와 유세가들이 벼슬로써 정치에 참여하려고 했던 것과는 달리,
정치체계를 예로써 바로잡으로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모토에서부터 가족과의 관계를 나라 차원에서는 지배층과 피지배층과의 관계로 설명한다. 가족에서 예를 다하면, 정치에 나아가서도 그 메카니즘이 작동한다는 설명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효로 써 다하면, 신하는 아버지인 임금을 섬기면서 그 정신을 다할 것이다라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를 법가에서는 아들이 잘못하면, 아버지는 형벌을 내려야 하며, 아버지가 잘못한 것을 본 아들은 관가에 고발을 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법가사상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공자는 마찬가지로 '애인'에 치중하여 모든 사람을 사랑 하는 휴머니스트가 아닌, 신분제를 인정하며 귀족은 귀족의 본분을, 민중을 스스로의 의무와 귀족에 대한 봉사를 해야 국가 시스템이 바로서고, 이는 예가 바로서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는 공자의 사상과는 달리, 그도 현대의 시각에서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고 강신주 선생은 보았다.
'대부와 사'로써 대표되는 지배계층이 '예'를 몸에 새겨 '인'으로써 표출 될 때 '민'이라 불리는 피지배 계층은 감화되어 따른다는 원리이다. 이를 자세히 보면 '예'는 군자가 가질 수 있는 독문적 무기와 같은 것으로 표현되고, 민중은 소인으로써 어리석은 계층이며, 다만 따르거나, 거역하는 역할을 하는 하찮은 계층으로 전락시킨다.
또한, 공자의 논리로써는 왕 또한, 귀족계층을 '예'를 세워 귀족을 감화 시키지 못하면, 나라가 분란에 빠지게 된다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는 후에 나오겠지만, 귀족권력의 강화에 지대한 공헌을 세우며, 후에 우리나라로 넘어 올때 성리학이 전해지면서, 사대부의 말을 안듣는 왕은 갈아치우는 정치적 논리로까지 발생하게 되는 것 같다.
어찌되었든, 공자의 사상은 패권을 잡아 한 시대를 풍미하기를 원하는 군주에게 전혀 매력적이지 못하여 결국 그는 중용이 되지 못하기에 이른다. 법치로써 부국강병을 꾀하는 것에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당세에 정치원류로써 포함되지 못하게 되는 서러움을 공자는 고상한 철학으로써의 유를 만들어 나간다. 이는 후에, 법치와 덕치로써 왕권을 약화시키며 스스로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는 보수주의 귀족계층의 무기로써 이용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에서는 공자의 한계를 그리고 있다.
춘추시대에 한 시대를 풍미한 관중의 사상과 현대에 까지 철학에 원류로써 대우받는 공자의 사상 어느것이나, 민중들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관심을 조금 줄 뿐이지 주인공은 그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후에 나오는 손자와 오자, 그리고 묵자와 양주의 흥미진진한 얘기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