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류시화 엮음 / 오래된미래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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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을 마무리 하며, 한 줄 감상 납깁니다. 한 살 더 먹었고 매 해 갈수록 나이를 들어가는 것이 눈에 보이지만, 그래도 우울하지 않은 건 젊은 혈기가 줄어들수록 독서를 통한 삶의 지혜는 조금이나마 늘어나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인문학의 열풍에 힘입어 현대인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심리에세이와 마음가짐 방법을 알려주는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 서가에 자리잡고 있지만, 그래도 동서고금 막론하고 개인적으로 자 자신에 영향을 많이 주는 것은 고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문명이 탄생하고 역사가 쓰여져 오는 동안 많은 고전이 우리들의 가슴에 자리잡았지만, 그 중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장르 중 하나인 시는 고대에 쓰여져 있었던 것이라도 현대에 와서까지 생명력을 잃지 않고 과거나 현재의 동일성에 한 몫 하였습니다. 그 시절에도 사람 사는 동네에 희로애락은 당연히 있었겠지요.

 

 아직도 나에게는 시는 어렵습니다. 그 깊이가 있음을 알기에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지요. 학창시절 우리가 배우던 국어 교과서는 너무 시를 우리와 먼 곳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 먼 길을 돌아서 이렇게 시 앞에 서게 되었고, 마음의 치유 시집모음인 이 책을 만났습니다. 책을 통해서, 여행을 통해서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어느 독서보다도 저에게 와 닿은 것은 이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산문에서는 표현을 못하는 그 부분을 시어로써 잘 표현하고 일깨워 주었습니다. 무조건 긍정 일변도의 어투가 아닌, 슬프고 외롭고 힘든 감정까지도, 내 자식 마냥 잘 품어서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심어줍니다.

 세상을 살아가면 좋은 일만 앞에 다가오는 법이란 없으니까요. 호사다마라는 옛말도 있고, 좋은 일 뒤에 나쁜 날, 나쁜 날 뒤에 좋은 날은 내가 피하려고 온갖 노력을 해도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신에만 의지하여 모든 것을 내려놓자는 것이 아닌, 모든 감정들이 다 내 가 헤쳐나갈 길이라는 것을 어렵지만 다시 웃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모든 시가 다 와 닿을 수는 없습니다. 어느 날은 이 시가 어느 날은 저 시가 가슴을 울리겠지요.

 

 인간은 미완성으로써 언제나 감성적일 수도 없고, 언제나 강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시는 꼭 필요합니다. 이 치유 시들은 어렵지 않고, 그냥 사람이라면 정도는 다르겠지만 받아들일 여유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누구나 시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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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향기 - 머무름의 기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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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언제나 시간을 잡고, 지배하기를 원한다. 지금 소비하고 있는 시간을 더 소중하게 아껴가며 일하며 여가를 즐기고, 초와 초 단위까지 쪼개서 아낌없이 열심히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후회한다. 흘러가는 시간은 내가 통제를 할 수 있기를 바람에도 가속화되어 한참 뒤에 돌아보면 과거의 나는 작은 점으로 변하다가 이윽고 보이지 않는다. 더 열심히 충실한 자세로 시간을 사용하려고 하면 할수록 시간은 더 빨리 가버리고 의미는 사라기제 되는 것인지.

 

 저자는 이미 현대인이 소유하고자 하는 시간은 휩쓸러 가고 현재는 덧없이 쪼그라든다고 표현한다. 인간은 적절한 시간에 대한 감각을 잃고 제때죽지 못하는 시간에 종속되는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이 현재(Present)는 불시성이 강화되어 인생 밖으로 와서 삶을 불시에 종결시키는 폭력을 행사한다. 이것은 삶을 의미 있게 완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에 있다. 유리는 우리의 소질, 능력을 발휘하여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것이 삶의 전범이라고 착각하였다. 하지만 그만큼 죽음이라는 것은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시간의 개념을 나눠보면 여기에서 신화적 시간과 역사적 시간의 개념을 발견할 수 있다. 신화적인 관점에서 시간이란, 의미를 가지고 질서 속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역사적 시간은 이와 다르다. 시간은 앞으로 달려가며 정적이지 않다. 과거를 반복하지 않고 미래로 변화되어 간다. 그리하여 목표를 향해 선을 그리며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긴 하지만, 이 서사적 긴장 및 목적이 없어지면 이 선은 점으로 흩어질 뿐이다.

 

 신화적 시간은 과거의 것으로 사라져버리고 역사적 시간은 목적의식을 가지고 시간의 가속화를 촉진시키고 현대로 들어서면서 수많은 정보의 바다에 휩쓸리게 되면서 향기를 잃어버렸다. 그러면 선은 점으로 시간 사이의 간극을 만들게 되고, 이것은 의미 없는 시간을 인간으로 하여금 극한 공허감을 느끼게 하였다. 그 공허감을 없애기 위해 각종 사건에 의미를 만들어 넣어 점을 잇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것은 사색적인 머무름 대신 불안정한 시간을 더욱 빨리 가게끔 촉진하는 셈이 되어버렸다.

 

 보드리야르에 의하면, 역사의 실체가 사라지는 이유를 정보의 과밀화와 급변하는 사회와 정보가 존재감을 지워버리게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에 의하면 가속뿐만이 아닌 시간의 감속에도 포함된다고 말한다. 오히려 고착화되어 밀려드는 정보에 의해 역사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시간을 더 이상 의미의 매듭으로 묶어 두지 않고, 점점 가벼워지면서 역사대신 아무것도 의미 없는 시간의 휘발성화를 발생시킨다.

 

 근대로 넘어가면서 아직 시간의 서사적 특성은 없어지지 않았다. 계획적으로 삶을 실천하면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존재였고, 희망을 향해 달려가면서 시간의 가속화는 필연적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시간의 가속화가 강화된 것이 아니고 시간적 중력의 부재가 삶에서 균형을 빼앗고 혼란을 초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시간 속에는 모든 사건들이 무의미해직 난비하는 상황이 되었다.

 

 “더 빨리 살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결국 죽기도 빨리 죽고 만다. 삶을 충만하게 만드는 것은 사건들의 수가 아니라 지속성의 경험이다.” p65

 

 “인간은 짧은 나비의 단계를 넘기고 다시 걷는 자로서 땅 위로 돌아올 것 인가? 또는 땅의 무거움, 노동의 무거움을 아예 벗어던지고 가벼운 유영을, 유영하는 듯 느긋한 방랑을, 그러니까 부유하는 시간의 향기를 발견 할 것인가?” p66

 

 시간적으로 현재에서 미래를 넘어갈 때의 간극을 목표지향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 간격을 극복해야할 고난과 걸림돌로 표현이 된다. 오직 내가 할 일은 이 간격을 빠른 시간에 넘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그 사이 점과 점을 잇는 선은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이는 우리가 순례를 할 때 목적지를 향해 있는 길에서의 참회, 사색, 기도하는 시공간 적인 의미를 둔 장소와는 대립되는 개념이다. 가속화는 이 사이공간을 없애버리려는 시도라고 말한다. 즉 현대사회에서는 이 불필요한 간극을 극복하고 최대한 빨리 목표를 실현하는 것이 믿음이 되었다. 현대 사회의 모든 과학기술은 다 이 개념을 자양분으로 개발된 것이다. 간격의 사라짐으로 ‘사이’의 의미는 퇴색되었고 그래서 생겨나는 것은 지향점이 없는 공간이다. 여기저기를 의미 없이 돌아다니는 모습은 웹에서의 브라우징을 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이러면서 우리는 머무름의 미학대신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행위를 하는 인간이 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구절을 인용하며 시간이 지속성을 가질 수 있는 핵심을 논의하였다. 지속성을 위한 프루스트의 전략은 시간을 향기롭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시간은 촉각, 시각, 미각, 후각 등의 감각의 힘을 빌려, 기억을 촉발시키고 이는 시간의 향기로 만들 수 있다고 표현한다. 이는 기억의 이미지와 이야기를 재생산하게 하고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시간의 지속성에 따른 그 순간의 조합의 혜택인 것이다. 내 시간의 사건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게 하여 시간의 중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삶은 끊임없이 …… 사건들 사이에서 새로운 실을 자아내며, …… 그리하여 우리가 살았던 과거의 극히 사소한 지점과 다른 모든 지점들 사이에 존재하는 풍요로운 추억의 망은 우리에게 단지 그 가운데 어떤 연결선을 택한 것인가 하는 결정만을 허용할 뿐이다.”

p82 저자가 Marcel proust, Die wiedergefundene Zeit 에서 인용

 

 시간은 흘러감에 따라 아쉬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 지속성을 가진 시간은 흘러가면서 향기를 남기고 이후에 오는 시간은 나름의 향기를 풍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간의 향기들은 서사적이지 않고 사색적이다.

 

 “좋은 시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쓸데없는 것을 비워낸 정신이 바로 이러한 비움이 정신을 욕망에서 해방하고 시간에 깊이를 준다. 시간의 깊이는 모든 순간을 온 존재와 그 향기로운 영원성과 결합한다. 시간을 극도로 무상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욕망이다. 욕망으로 인해 정신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마구 내달리는 것이다. 정신이 가만히 서 있을 때, 정신이 자기 안에 편안히 머물러 있을 때, 좋은 시간이 생겨난다.” p100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접할 수 있는 미디어들은 이른바 세계의 탈거리 화를 일으킨다. 인터넷은 공간자체를 없애고 인간은 공간을 쉽게 머무르지 못하고 산만하게 돌아다니게 되었다. 그러면서 빠름을 추구하게 되었고 언제나 시간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시간이 없는 까닭은 노동에 의미를 두고 소비하며 일의 노예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고유하지 못한 실존 속의 현존재는 자기 자신을 세계에 빼앗기는 까닭에 시간을 잃어버린다. 단호하지 못한 자는 염려의 대상에게 분주하게 매달리며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염려의 대상으로 인해 자기 시간을 잃어버린다. 따라서 그런 이들은 입버릇처럼 나는 시간이 없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p108

 

 그러나 하이데거는 자신이 마구 산만하게 시간에 끌려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시간에 닻을 내리고 중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시간을 역사의 자장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시간이 흩날리는 것을 방지 하지 않기 위한 전략을 세웠다. 역사적 시간처럼 서사에 이끌려 어떠한 목적성으로 달려가는 것에서 한층 발전하여, 왕복과 회귀의 이미지로, 목표로 가버리는 것이 아니고 나를 이야기와 사건들의 중심으로 두고 한 사색적 머무름의 장소로 놓게 한다는 말이다.

 

 오늘날의 현대인은 이와 같은 시간의 간극의 허무함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어떠한 역할,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고, 이런 과도하고 결연한 태도에서 오히려 권태라는 부작용을 맞는다. 반드시 사건이 많이 일어나고 변화가 잃어나야 권태가 없어지고 충만한 시간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렇게 난비하는 시간 속에서 매일 동일한 행동과 선택을 맞이한다는 것은 권태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 책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유로운 인간이 따르는 삶의 양식중 제일 높게 평가하는 삶 중 진리의 사색적 고찰에 헌신하는 삶(비오스 테오레티코스)을 최고로 꼽았다. 오직 진리에 대한 사색적 헌신이 행복한 삶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노동은 삶의 욕구에 묶여있는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행복에 관여되어 있지 않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단순히 한가로움과 신경 끄기와는 연습이 아니다. 사색은 진리를 향한 노력이라는 말로써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의 인간의 모습은 이런 사색적 삶과는 거리가 먼 소비사회에서 시간에 의해 버림받는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시간의 향기는 사색적이고 정적인 활동이 아닌 노동 후 잉여 시간을 노동을 하기 위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휘발적인 사건과 체험으로 채워가고 있다. 이러한 시간이 향기를 가지고 있을까? 자본주의로 들어섬에 따라 모든 사물과 정보는 가속화되고 의미가 없어지고, 현대인은 이러한 소비재에 길들여져 지속성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고 있다. 노동의 시간은 지속성이 없다 소비된다. 내 삶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사색적 삶은 지속성을 실천한다. 노동을 중단시키고 또 다른 나의 시간을 정립한다. 사유 활동은 오히려 활동적 삶보다 한 단계 고차원적인 활발함을 가지고 있다. 사색하는 동안에는 좌우가 없고 깊이가 없고 높이 없이 무한하게 나아갈 수 있는 공간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날 사회에서는 과감한 결단력과 행동과 근면이 미덕인 사회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그만큼 시간은 물처럼 흘러가 버린다. 내 삶의 시간이 침잠하고 사색하지 않는 삶에는 이러한 노동에 대하여 수동적인 동물로 전락해버리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마지막 부분의 니체의 말을 인용하면서 마무리를 짓기로 한다.

 

“우리 문명은 평온의 결핍으로 인해 새로운 야만 상태로 치닫고 있다. 활동하는 자 그러니까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은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따라서 관조적인 면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인간 교정 작업 가운데 하나이다.”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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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 - 꽃보다 시보다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고민정 글.사진 / 마음의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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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1/28~12/1

 

순수하고 티 없는 맑은 영혼과 곧은 정신을 가진 남자와 그 마음을 지켜주는 여자의 용기.

고민정, 그녀의 용기는 그 남자, 조기영 시인이 만들어 준 것이리라. 화려하거나 극적인 사랑과 일과 삶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소박하더라도, 따뜻하고 기분 좋은 메시지를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배려와 이해, 두 가지로 서로의 사랑을 지켜왔고, 앞으로도 그 사랑 영원히 지켜가길 바래본다.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다. 내 가슴이 그 사람을 선택했을 뿐.”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을 나의 인생을 우리가 함께 쓰고 있다. 난 지금 행복하다.”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하기에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우린 매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국경을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분명 자신의 것을 조금 내놓아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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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퐁스 도데 단편집
알퐁스 도데 지음, 신혜선 옮김 / 책만드는집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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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성년이 훨씬 넘어서 다시 보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이런 저런 잡생각을 하다 보니, 어린 시절 여운이 많이 남았었던 소설을 찾고 있다가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던 ‘별’이란 단편소설이 문득 떠올랐다. ‘상실의 시대’와 더불어 아직도 내 연애관에 한쪽 구석을 자리 잡고 있었던 그것. 만약 교과서에 없었고, 성년에 우연히 읽었더라면 기억에도 남지 않은 그럴 이야기였다. 결국 마무리는 독자의 상상대로 가기 마련이긴 하지만 과연 사랑이 이루어짐의 여부를 떠나 목동의 그 시간의 그 순간의 행복감이 지금 사랑을 갈구하는 많은 열혈 젊은이들이 원하는 바로 그것일 테니 말이다. 그것이 어떤 사랑으로 변해갈지는 본인만이 알 테고 그 순간만큼은 남녀가 진심이라고 믿을 것이다.

 

 

 별’ 외에도 ‘알퐁스 도데’가 쓴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내가 학창시절 읽었던 또 다른 소설인 ‘마지막 수업’이 있었다. 작가는 인간의 희로애락의 서정적인 내용에 관련된 많은 문학작품을 남겼지만, 이 단편을 읽으면 그가 얼마나 조국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평소에는 문화의 고마움을 모르다가 막상 상실위기에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그 수업에 참여하는 선생님을 비롯한 학생, 마을 사람들은 평소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조국애를 조그만 알자스지방의 시골 학교 마지막 수업에서 느끼게 된다. 언어는 단지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그 문화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곧 이어서 아멜 선생님은 프랑스어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프랑스어는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분명하며 가장 확실한 언어라는 것, 그래서 우리 모두는 그 말을 잘 지켜야 하고,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었다. 한 국민이 다른 나라의 노예가 된다고 해도 자기 나라 말을 잊지 않고 간직하면 그 감옥의 열쇠를 지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씀이었다.’ p47

 

 

 그리고 그는 ‘시인 미스트랄’이라는 소설을 통해 빈사 상태의 프로방스어를 살려서 하나의 아름다운 문학 작품의 재료로 재생시키는 모습을 그리며 문화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우리의 언어가 영원히 건강한 상태에 있다면 타 문화적 침탈에도 굳건히 자유의지를 가지고 문화를 지키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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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단어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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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덟 단어

 

 

 

9/21~23

 

저자의 전작을 읽어 본 경험은 없지만, 그 머리말로도, 이미 그가 어떤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다름없다. 치열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전쟁과 같이 보내는 광고인들 중에서 우리 일반인의 입장에서 제일 친숙한 그 이름이 ‘박웅현’인 것이 바로 그 이유다.

 

 

저자는 ‘Creative director’ 의 직함으로 일하는 월급쟁이 광고인이기는 하지만, 본 강의를 할 정도로, 인문학이라는 바다를 일찌감치 그것도 넓게 접한 인생의 선배로써 이 책을 썼다고 본다. 비록 그 스스로는 ‘개미 날개만한 지식’으로 날아다닌다며 스스로를 낮춰 말하지만, 충분히 개미 날갯짓이라도 날개조차 없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길을 제시해준다. 책의 제목에서 나타내는 ‘여덟 단어’는 ‘자존’, ‘본질’, ‘고전’, ‘견’, ‘현재’, ‘권위’, ‘소통’ 그리고 마지막은 ‘인생’이란 단어로써, 이 '인생‘은 이전 7가지의 단어를 총 정리하며 마무리하는 이 책의 핵심과도 같다.

 

 

 '자존‘이란 단어는 말 그대로 내 자신을 존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존귀하다. 그렇다고 빈민촌 어린 아이 한 명이 자존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점들은 후에 별이 되어 일국의 대통령보다 더 큰 빛을 밝힐 수 있으니까. 지금 내가 하는 일을 하찮게 여기지 말자. 내가 하는 일과 보내는 시간 중 어떤 것들은 나중에 가치 있는 무언가를 이룰 때 필요할 수도 있고, 내가 그 자신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이 큰 것을 이루는 것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본질‘은 시간에 따라 공간에 따라 빠르게 변하는 것들이 아닌 진정 변하지 않는 그 스스로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현대를 살아감에 따라, 지식과 정보의 양은 방대해져가고 있고, 한 사람으로써 그것을 받아들이고 익숙해지지 않으면 뒤처지는 세상이라고 모두들 말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인간 모두 공통적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박웅현 씨는 그것을 사람의 진정성이라고 말한다. 광대한 정보는 차고 넘치도록 입력이 되지만, 그 핵심은 명료하다. 내가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단순히 스펙을 위해, 성공을 위해 일할 때 능률을 위해, 도구로써 갈고 닦기 위한 것이라면, 그 본질은 미약하겠지만, 나는 단지, 나 아닌 다른 사람과 직접 얘기하고 생각을 듣고 내 생각을 잘 말하고 싶었다. 그 것이 본질이다.

 

 

 ‘고전’은 그렇게 긴 역사 속에 잊혀 가는 수많은 존재들 중에서 수 백 수천 년을 지나도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우리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인류의 결과물을 말한다. 사랑의 유효 기간은 3년, 우리 평생은 많이 쳐주더라도 100년, 그러나, 생명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많은 시간을 지나서라도 바로 앞에서 즐길 수 있는 이러한 존재들은 가히 명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찌 예전 것이라고, 무시할 수가 있을까, 그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책도 고전이라면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서점에 가면 쌓여있는 수많은 책더미 속에 몇 세기 동안 강한 생명력으로 버텨 온 만큼 그 에너지를 우리가 접함으로써 가져갈 수 있다.

 

 

 ‘견’은 우리가 흘러버리기 쉬운 순간과 상황을 소중히 하고, 집중을 하면 생기는 창의력을 말한다. 현대에서는 창의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을 하는데, 이게 교육이나 강의를 통해서 개발이 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없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절대 아니고 우리 생활에서, 나의 경험에서 벌어지는 작은 작은 것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생겨는 것이다. 깊이 새겨본다. 그리고 나만 보는 것이 아닌 다른 주위의 환경과 사물을 견문하는 것에 따라 창의적인 발상이 나오고, 촉수를 예민하게 만드는 것은 내 앞의 과제다.

 

 

 ‘현재’는 한마디로 ‘Carpe Diem', 즉, 현재를 즐기라고 말하는 것의 핵심이다. 이 말은 정답은 없는 말과 동의어다, 내가 현재를 어떻게 살든지 따라 미래는 바뀔 수 있지만, 어떻게 현재를 지내다가 정답이 되는 미래를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처럼 사는 인생이 정답일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인생이 오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내 인생이 정답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다만 중요한 것은 현재를 잘 사는 것이다. 내가 내 직장에 들어가기 전에 더 열심히 해서 다른 회사로 들어가는 것이 정답이었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해봤지만, 결론적으로 그렇다고 지금의 나를 이제 버리고 그 대의 ’나‘로 돌아 갈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떠한 목표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는 것은 나에겐 있을 수도 없다. 지금 이 순간순간은 은 미래의 나에게 중요한 것이 될 것이다. 그 미래의 삶이 정답은 아니지만, 지금 현재는 내 것이고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권위‘는 이 책에서 말하길 스스로 쟁취하여 바라는 것이 아닌 것도, 무시하라는 것도 아닌 굴복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권위를 스스로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내 자신도 앞에서, 혹은 직급 앞에서 굴복당한 적도 있고, 자랑할 것도 못되는 작달만한 권위를 내세우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소통’은 관계의 기본이다. 너와 나의 관계에서 서로를 잘 이해해 주게 할 수 있으려면 소통이 잘돼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간의 입장 차와 서로 간의 배려와 난해만 문맥이 그 큰 원인인데, 해결 방안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과 문맥을 잘 이해하는 것, 나의 말과 생각을 잘 디자인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인생’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많이 고민을 한다. 다만 고민할 뿐이다. 어차피 답이 없으니까. 그래서 두려워한다. 자신의 인생이 정답이 아닐까봐. 그러나 이 것에서도 그렇고, 나 또한 그렇다. 내 인생이 정답이 아닐 이유는 없다. 지금 순간 ‘현재‘를 집중하면서 점을 찍으며 자신을 ‘존중’하고, ‘고전’을 가까이 하며 키운 ‘견문’으로써 어떠한 것이 ‘본질’인지를 파악하는 힘을 기른다. 나 또한 많은 이들이 정답이라는 인생과는 이미 벗어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미래가 있다. 이것이 실패라는 단어로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은 나는 안다. 내 현재가 중요하다. 내가 그 때 공부를 안했지만, 그녀를 계속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 시간을 허비했지만, 그렇다고 지금 어떻게 살아낼지라도 상관없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나는 그냥 지금 순간을 열심히 살고 집중하고 실존함에 힘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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