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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고은 지음 / 발견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시집을 읽다가 못다 읽고 덮었다. 들리는 뉴스가 시집을 들고 있는 손마저 부르르 떨게 만들었다. 기대와 존경이 곧 실망과 좌절로 연결되고, 한편으론 분노스럽고 또는 사기당한 이노무 더러운 기분이 싫었다. 글이란 모름지기 마음의 소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글 재주가 때로는 마음에도 없이 문장 기술자의 테크닉만 요란한 경우도 있다는 걸 느낀다. 평생토록 시를 쓰며 살아온 시인의 소문치고는 왜 이때까지 이렇게 침묵으로, 숨어 있었고 내재되어 드러나지 않았던가 하는 것에서 새삼 놀라운 수치스러움이었다. 존경이 강할수록 드러나는 노시인에게서 절망을 느낀다. 어떻게 그렇게 다를 수 있을까라는 실망감은 삶을 침울하게 한다. 옆자리에 앉은 시인 지망생의 손도 좀 잡을 수도 있지?라는 가볍고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작태에 스스로 왜 자기 검열 정도는 없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는 결핍의 자기 위로나 했을는지는 모르나 정작 옆자리의 누구의 상처는 아랑곳하지 못하는 심성으로 시를 쓴다는 것은 가식일 뿐이다. 나도 페미니즘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싫은 걸 누구에게 겪게 한다는 이중성에는 배척한다는 것쯤은 시의 테크닉이 없어도 기본적인 상식이다. 뭐 상식적이고도 보편적인 것조차 이루지 못할진대 시 나부랭이 가지고 뭘 하겠다는 건지 갑자기 내가 붕 떠버렸다.
명성이 곧 권력이란 것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다. 이 권력 앞에서 누가 감히 잡는 손을 뿌리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손 한 번 잡혀주고 엉덩이 한번 내밀고 모종의 점액질 오고 가고 나면 그 권력의 명성이 자신을 옆자리에 앉게 만들어주는 욕망은 몸뚱어리 하나 정도는 기꺼이 시에 바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을 거라 마음 한번 고쳐먹으면 그만이었겠지. 그런데 싫은 걸 어떡해. 요즘 책도 읽지 않는다. 사진도 찍지 않는다. 문장을 배워서 어디다 써먹을 것도 없고 사진을 찍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도 없는데 왜 문장을 읽어야 하며 사진을 찍어야 하는 건가라도 묻게 된다. 인생사 다 부질없음의 추락을 곁에 두고 인생은 데채 살아서 어쩌자는 것일까. 아마 누군가는 고통스럽고 괴로움으로 점철된 마음의 무게를 안고 사는데 권력의 명성은 또 누군가에게 욕망의 시선을 뿌려대는 꼴을 보게 된다. 증말, 시빨 조깟따.
어디 겁나서 시집 사서 읽겠는가? 늪에 발을 내디디는 게 아니라지만 사는 길 곳곳이 똥구덩이 웅덩이나 마찬가지다. 사람이 늪처럼 빠져들면 반드시 이렇게 된통 당하는 것은 꼭 경제적인 돈 문제만은 아니었다. 돈이야 뭐 또 벌면 되련만, 이 조가튼 기분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가 될 것인가 말이다. 하물며 얼마나 슬픈 일인가. 물론 이뿐 만은 아닐 것이다. 버젓이 교과서에 실린 시인이 나중에서는 이놈이 친일파였고, 조선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고자 선동질 했던 시인을 알아버렸던 것도 이와 다르지가 않더라. 상황의 용기에 주저할 수야 있다고 치자. 그럴 수밖에 없는 강압도 작용했다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각성 안된 권력과 명성 앞에서 젊은 츠자 시인에게 추파를 던지고 몸을 만지고 그래서 젊은 츠자 시인에게 유명하게 해줄게라고 꼬실 수 있는 이 조가틈은 진짜, 시의 본질에 다가서는 일은 결코 아닌, 그저 문학도 이름도 다 욕망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인가 싶었다.
그런가. 어느 날마다 수시로 조모씨가 꼴렸으니까. 마음은 그렇다는데 내 몸은 이렇더란 말이지. 이성을 가진 이상은 늘 고고한데 구덩이에 머문 내 몸뚱어리는 나의 고고한 이상과는 따로 놀더란 말이지. 정말 슬프다. 구구절절 시평을 읽어도 모두가 다 겉돌아 나간다. 이시바 뭔 개뼈다귀 같은 소리나 해대는 거야. 바퀴가 헛도니 수레가 늪에 빠져나가지를 못한다. 이대로 주저앉고 말 거 같은 절망과 피폐함은 보상 없는 좌절일 뿐이다. 연극이고 영화고 노래고 대학이고 뭐 이름이란 어디 가리지를 않고 모조리 권력이 숨은 곳에서 자행되는 비리와 똥 파티들은 결국 인간의 욕망에 대한 적나라한 모습일 것이다.
내 마음은 진짜 내 몸의 조종자이자 지배자일까? 아니면 반대로, 내 몸이 내 마음의 지배자일까? 마음이 저러라는데 몸은 이러고 있고 몸이 저러라는데 마음은 이러고 있는 이 몸과 마음의 따로 놀기의 욕망이란 과연 얼마나 엇박자를 내고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가. 삐거덕 거리는 마차에 브레이크가 없는 욕망을 싣고 어디론가 달리고 있는 셈이다.
시집을 펼치고 앞부분부터 읽어나갔지만 지금은 무슨 시였던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실망적 좌절에 빠져 버리니 백지가 되어 버린 거 같다. 뭐라 써놓은 글이 시간 속으로 휘발되어 버리고 남은 앙금엔 슬픔과 분노가 생채기를 만들어 낸다. 아고야, 아프면서도 슬픈. 상흔이 그려낸다.
한권의 시집을 못다 읽고 맥이 풀려 버린 것은 처음이다. (리뷰 쓸 맛도 안 나고.....) 끝으로 한마디만 더하자. 다시는 나오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