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다 보면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을 때가 많다. 사는 게 참 구질구질하거나, 슬프거나, 또는 살기가 너무 퍽퍽해서 죽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자살률. 즉 자기 스스로 마지막을 결정하고 이를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들은 정확하게 통계로 잡힌다.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가만있어도 우리는 다 죽어간다. 무조건 언젠가는 다 사라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언젠가라는 시간적인 명확한 설정에 스위치를 먼저 맞추는 사람도 있다. 우울증이 심하거나 각종 경제적인 상황에 따르거나, 혹은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죽고자 할 때, 과연 누가 옆에서 위로하고 당장에 살고 싶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정말 살기 싫을 때, 가족 때문에 혹은 무엇 때문에 쉽사리 결정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우리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 어떤 문제의 해결이 불가능할 때라면 결국 죽음이 답이라는 것이 스며들 때 실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직접적인 결과를 주지 못한다면 어설픈 위로는 단순히 동정일 뿐이라든가, 혹은, 그래 새꺄 그리 빨리 죽고 싶으면 빨랑 먼저 가던가라고 쏟아 붙일 수도 있다. 책에서는 위로와 치유의 글이라도 있을 것만 같다. 삶의 체념이란 것도 어쩌면 체념을 체념할 수도 없다.
죽음도 일종의 욕망 같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