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트 겸 책은 다음에서 진행한 '출판협동조합 은빛 기획'의 스토리 펀딩으로 참여하고 받은 노트 리뷰이다.


메멘토 모리, 사진을 찍어 오면서 사진의 속성은 '시간의 죽음'이었다. 더불어서 시간의 레일 위에서 달리고 있는 나도, 시간의 죽음이란 종착역으로 향하는 열차에 단 승객이다. 마치 아우츠비츠 수용소로 가는 열차에 탄 듯이. 따라서 우리는 원하거나 원했지 않거나 상관없이 이미 태어남으로써 열차에 올라타고 가는 시간의 탑승객이다. 그러니 사진을 찍어 오면서 오직 현재만 살아 있는 자신의 삶에서 죽음의 목도함이 곧 사진인 셈이다.


살아 있는 모든 유기체는 다 사라지고, 죽고 난 이후의 내 육신은 다시 무엇으로 변화한다. 물론 자신이라고 느낄 수 없는 다른 물질로 바꿔 버린다. 그렇다면, 내 삶에 있어서 내가 생각하며 느끼는 모든 감각과 내가 움직이는 것들의 처음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생명이었으나, 끝날 때의 변화에 대한 시작은 의지적이어야 하고 또 의지로워야 한다. 그래, 이미 과거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봤고 또 앞으로 지켜보게 될 것이고, 결국엔 나 또한 그 대열에서 순서와는 관계없이 열외 될 수 없는 절대적인 마지막이 다가온다.


사람은 아주 큰 착각 중에 하나의 대전제로써 다 죽는 사실을 알지만 지금 당장이라는 절박감이 전혀 없는 것이다. 차라리 어느 말기 암 환자처럼 마지막 죽음까지 호스피스 과정은 남아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마지막은 유보하고 미룬다. 언젠가는 죽지만 지금은 죽을 때가 아니다라든가, 혹은 지금 당장에 죽음이 닥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오늘을 산다. 그러니 삶의 시간 앞에서 결코 겸허할 수도, 경건할 수도 없다. 공자의 제자가 묻기를. '스승님 죽음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공자는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공자는 철저히 현실적인 사유의 방식이었으나, 공자는 어느 제자의 죽음에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큰 슬픔을 표현했다. 죽음은 그런 것이다. 모른 척해도 외면하기가 어렵다. 삶이 있길래 죽음 또한 필연이다. 이별이란 과정도 없이 불시에 닥쳐 오는 것일 수 있는 것이 바로 죽음이다. 죽음이 그래서 꼭 물리적 생리적인 심장의 정지가 아니라 기억이라는 뇌의 정지도 죽음과 같다면, 어떻게 우리의 삶에 전혀 죽음은 유보된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는 못한다. 지금 당장 심장이 멈추고 뇌의 신호가 사라질 수도 있는 인간이 아니었던가? 몰론 이 대전제에 대하여 병적으로 절박하여 당장에 죽을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여 무기력에 빠져서 살았어도 죽은 듯 무절제에 빠지는 오류도 역시 과유불급이다. 지금 당장에 죽을지라도 내가 꼭 원하는 것들 할 수 있는 자신의 내면적인 역량은 죽음조차도 초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나야 카메라 들고 사진 찍다가 죽어도 더 이상 원이 없겠다만은,,,


이 노트는 이런 죽음에 대해서 마지막을 더 아름답고 헤매지 않고 자의적 의식이 있을 때 준비하는, 일종의 죽음을 맞이하는 계획서이다. 따라서 일본에서 유행하는, 혹은 유행했던 노트의 일종인데 자신의 유언 기록장과 같다. 얇은 소책자의 형태로 만들어 노트처럼 자신의 마지막 이후를 기록으로 남기고 자신의 의지를 문서화시켜 놓을 수 있다. 혹시 아는가? 내가 갑자기 길을 달리다가 차 사고라도 나서 식물인간이 되거나, 지금 당장에라도 치매에 걸려 모든 기억들이 증발되어 나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사람도 기억 못하는, 기억상실에 처하게 된다면 누군가 이 기록을 통하여 자신의 의지에 부합되게 해주기를 바라는 마지막 부탁이다. 가령, 여기 알라딘 서재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도 모르게 된다면, 어떻할 셈인가?라고 생각하니 암담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사회적인 채권과 채무 권리관계, 금융이나 부동산 등의 관계의 기록도 하나도 없이 그저 족보에 이름과 출생년 월일만 단일적인 기록만 있다면 이것도 당장에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떠나면서 작별 인사는 못해도 남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못되더라도, 적어도 다른 고통은 야기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한다. 심지어 은행 계좌는 어떻게 되는지, 잔액은 얼마나 있는지, 가족이 모르는 증권 계좌에 주식은 얼마나 있는지, 신용카드의 채무는 또 얼마나 있는지 앞으로 장례는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던지 등등 자신의 삶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해서 깔끔하게 털고 이 세상을 미련 없이 버리고 또 다른 저 너머의 다른 어너더 월드로 갈 수 있는 출발점이자 이생의 종착점이라고 봤던 것이다. 간혹 자신이 저질러 놓은 부채마저 알리지 못 했을 때, 채무가 상속되어 어이없는 곤란함을 겪지 말란 법도 없는 시대는 아니었던가 말이다.


자신의 죽음은 굉장히! 특별하지 않다. 혼자만 죽는 것도 아니고 홀로 떠나는 것도 아니다. 앞서거나 뒤서거나 순서도 없는 시간적 차이만 있을 뿐 우리는 100년도 못 살고 사라질 수밖에 없다. 딱 하나의 수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죽음이 특별하지 않다고 해서 그간의 생존 기간 이 자체가 전혀 무의미해서도 안된다. 단 한 번 뿐이 있기에 더 가치롭고 더 의미 있어야 갈 때 가더라도 뿌듯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왕지사 가야 한다면 아름다운 떠남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세상사 이별만 영원하지도, 그렇다고 만남만이 영원한 것도 아니다. 이별과 만남은 늘 상존하고 썰물이고 밀물처럼 오고 간다. 그 속에 하나의 개체로써 자신의 일회성이 깃든 것은 아닐까 한다. 그래서 이런 일반적인 특별함에 기록이 주는 유전은 후대에 대한 연민의 일종이다. 남겨진 자들에게 자신이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란 것이 과연 무엇이라야 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으면 정말 무책임한 일이기도 하다. 나는 종종 자주 나의 죽음을 생각한다. 어떻게 마무리할 수 있어야 아름다울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기록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할아버지 얼굴도 본 적이 없다. 오래전에 돌아가셨길래 뵌 적도 없는데 그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다못해 그 때 쓴 육필의 일기라도 한번 보고 싶다든가 유언장이라든가 그 어떤 기록물을 만날 수 있었더라면 매년 제사상에 그 추억의 향기로 지낼 텐데 무슨 가르침도 없이 삶을 유추라도 해볼 수가 없다. 그런 기록이 없다는 게 참 아쉽다. 사람의 평가는 사라지고 난 이후 자신이 평가에 대해 항변할 수 없을 때가 지독하다. 자신의 평가에 자신이 변명할 수 없을 때 변명거리를 뭐라도 만들어 놔야 하는 편이 안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한다.


주변에는 미친 듯이 살아가는 기계처럼 매몰되어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마치 천년이나 살 것처럼 삶에 매몰된 채 사는 걸 본다. 그런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가끔은 자신의 삶에서 좀 멀찍히 떨어져 보라고 권하고 싶다. 어느 것이 진정함인지 무엇이 자신을 살아가게 하는지 물어 보고 자신이 자신에게 무슨 정합적 답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인지 따져 보라 하고 싶다. 오로지 돈만 찾아다니는 불나방처럼 불길에 기름 끼얹고 뛰어드는 무모함은 없는지, 왜 반드시 꼭 그렇게 해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지, 조금은 시간의 여유를 만들어 내라고 하고 싶다. 그렇게 몸을 불태우듯 뛰어든 나방의 몸이 다 사그라질 즈음에 비로소 난 뭐하고 살았나라는 회의가 들 때면 이미 늦다.


젊은 날, 힘 있을 때 천지간 구분 못하고 꼴리는 대로 살다가 허허히 살다가 내 인생 파란만장했음을 소설 3권으로도 다 말 못한다는 우스께로 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설 3권씩 만큼은 정작 쓰지는 못할 이야기란 대체 뭘까 물어봐도 그게 그거다. 지질한 인생의 미화된 추억 팔이라는 것은 기록으로 극복될 수 있을 텐데, 역시 지질하니 미화고 자시고 할 것도 없으니 쓸 것이 마땅찮은 것이 아닌 것은 무엇일까? 그럼 쓰시지 그랬어요라고 물으면 고작 핑계 거리가 글을 못쓴다는 단순한 대답만 허무하게 내뱉는다. 내 인생 기막힌 파란만장 소설 3권 시리즈를 단지 글을 기똥차게 쓸 수 없어서 못 썼음이라는 결론이 황당하지 않는가 말이다.


이 노트는 문장이 작가처럼 글을 적으란 것이 결코 아니다. 잘 쓰는 글이야 글로써 밥 먹고 사는 프로 작가분들이 알아서 다 잘 쓴다. 굳이 잘 쓸려고 용빼지 않아도 다 쓸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쓸 거리를 미리 염두에 두지만 쓰지 못할 뿐이다. 간혹 나 뭐 잘 못쓰는데 안 쓸란다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서 너무 용기 없는 일이다. 누가 노벨문학상처럼 쓴 글을 기록으로 보고자 함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담담하고 의연하게 비록 문체와 문장에 어설프지만 자신의 삶을 남 못지않게 열심히 살았음을 기록으로 입증하는 기록이고 개인적인 서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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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어디서 너를 기다릴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어디에서든 그것을 예상하라.

세네카 (Lucius Annacus Sene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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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10-12 21: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당장 엔딩 노트를 쓴다면 몇 페이지 안나올 것 같네요..ㅋ

yureka01 2016-10-12 21:18   좋아요 1 | URL
저도 지금 보고 있는데 적을 것들이 많지가 않더군요.ㄷㄷㄷ

2016-10-12 21: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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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2 22: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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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2 22: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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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3 08: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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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0-12 2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손에 책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그 때 어떤 책을 읽고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

yureka01 2016-10-12 22:33   좋아요 1 | URL
역시 책 애서가다운 자세입니다^^..

samadhi(眞我) 2016-10-12 2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늘 죽음을 생각하고 살아요. 그래서 제가 죽으면 남편이 알라딘 서재 친구들에게 내 죽음을 알려주길 기대하기도 했구요. ㅋㅋ

yureka01 2016-10-12 22:34   좋아요 1 | URL
아 저도 알라딘 아이디와 비번은 꼭 기록해줘야 할듯 ^^..

samadhi(眞我) 2016-10-12 22:44   좋아요 2 | URL
죽으면 세상 살다 간 흔적일랑 깨끗이 지우고 싶지만 혹시 친하게 지낸 서재 친구가 애태울까봐요. ㅋㅋ 하긴 그것도 노파심이죠. 죽었겠거니 하면 그만인데 ㅋㅋㅋ

yureka01 2016-10-12 22:54   좋아요 1 | URL
지구에 문명이 언제까지 갈는지 예정할 수는 없겠지만,
끝나는 날까지 기록은 되어져야죠..
광활한 우주의 영혼에 인간의 영혼이 전달될 수 있도록^^..

samadhi(眞我) 2016-10-12 22:57   좋아요 2 | URL
전 그냥 지구에 몹쓸 짓을 한 인류가 홀연히 사라져버려도 좋다고 생각해요. 무언가 대단한 일을 했던 것조차 그 자체로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yureka01 2016-10-12 23:00   좋아요 1 | URL
네 바로 그런 의미들이 남은 사람들에게 더 행복한 밑거름이 되어야 겠지요...^^.

2016-10-13 10: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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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3 10: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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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3 11: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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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3 11: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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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3 11: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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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3 11: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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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3 10: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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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3 10: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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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3 11: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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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3 11: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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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3 15: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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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3 16: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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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 2016-10-15 06: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느 날 갑자기 너는 그곳에 도착할 것이다
죽는 법을 배우지도 못한 채
사랑하는 법도 배우지 못한 채
질문과 회피로 일관하던 삶을 떠나
이미 떨어진 산목련 꽃잎들 위에
또 한 장의 꽃잎이 떨어지듯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모든 생들에
또 하나의 생을 보태며 <류시화>

yureka01 2016-10-15 09:01   좋아요 0 | URL
시의 은유가 팍팍 떨어집니다..

떨어진 꽃잎에
또 한 장의 꽃잎이 떨어지듯......

왜 봄은 와서..자꾸 꽃잎을 맺는 것일까요.....
이렇게 부질없는 사명감들이란...무엇일까요..

북프리쿠키 2016-10-15 16: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글을 쓸때

되도록이면 솔직하게 쓸려고

노력하는 마음가짐도

세살배기 딸애가 커서 나중에 이 글을 읽겠지..

하는 심정도 한 부분을 차지한답니다.

우리네 서민이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부모의 서재 아니겠습니까..^^;



마르케스 찾기 2016-10-15 21:49   좋아요 2 | URL
혼자다니는 여행을 좋아하는지라ㅋㅋ늘 가볍게ㅋㅋ
폰에는 아무 연락처도 저장되어 있지 않고, 문자도 없으며, 카톡은 안하고,, 페이스북따윈 시작조차 할 생각도 없이,, 아마도 마지막까지도 언제든 혼자 떠나려 했나봐요ㅋㅋ 손가락에 선물로 녀석들과 함께 새긴 이니셜 반지 하나가 그나마 내가 나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증표가 되려나? 그마저도 준 사람 두 명만이 알겠지만ㅋ
서재의 책들은 이미 제자에게 남긴다 했으니,, 더 남길것도 더 준비해 놓을 것도 없는 삶이라 가볍습니다ㅋㅋ 그러게요 그렇군요,,,,

yureka01 2016-10-16 00:14   좋아요 1 | URL
서재물려주기 참 멋진 생각입니다..
ㅎㅎㅎㅎ


두분다 아름다운 생각을 가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