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작가의 유럽 도시 기행 1.
1. 학교 다닐 때 전공이 도시계획이었다 보니 무개념인 상태에서 뭔지도 모른 채 도시 역사론을 주입식으로 배웠다. 그 도시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활동과 일어난 일들에 대해 변화를 도시 생태학적으로 해석하려 했었다. 그러니 역사론적인 인문학적 지식도 전혀 없이 공학적으로 접근하니 배웠으나 배운 것도 아니었다는 거. 이제는 도시 여행을 가보고 싶음이 굴뚝같다. 유럽의 도시는 비교적 역사가 오래된 도시가 즐비하다. 우리나라 도시는 근현대적인 개념으로써의 도시 개념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 고작 해봐야 100년도 안되고 도시라는 기능으로는 단기간에 급조된 도시나 마찬가지로 시간이 짧다. 긴 도시의 역사에서 얼마나 삶의 다양한 단면들을 만날 수 있을까. 건물들과 도로, 하물며 도로가의 연석의 문양까지 마주할 거리가 넘쳐난다. 그 도시에서의 시민들이 살아가는 도시민적인 모습들까지.
2. 카메라와 함께라면 뭔들 찍을 것이 없을 리가 없겠냐마는. 마음이야 유시민 작가가 돌아다니는 뒤를 밟아 쫄쫄 따라다니며 그의 설명을 들으며 카메라 뷰 파인더 앵글을 잡으면 왠지 유럽 도시의 사진이 더 천착하고 진득하게 나올 것도 분명한 착각이 일어날만하다. 뭔들 안 찍을 수 있을까. 저자의 풍부한 역사적 인문학적인 바탕의 어드바이스가 사진을 분명 더 깊게 만들 것이라고 확신이 서는 것도 다 그의 글빨력~때문일런지도 모른다.
3. 저자도 역시나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글은 그저 호이다. 독서하는 사람들 저마다 문장의 구성이 자기에게 맞는 저자와 맞지 않는 저자가 있을 것이다. 쉬운 글임에도 난독증이 일어날 만큼 문장이 어수선해서 수식에 수식을 거듭하는 번역서 같은 글은 읽기도 어렵고 이해도 안 된다. 그러나 유시민의 글은 단순하면서도 명료하며 문장이 깔끔하다. 어려운 걸 쉽게 쓰는 대표적인 지식가다운 문장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니 나오는 책마다 셀러 중 베스트를 찍는 호가 많은 이유일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의 운동권 시절 당시에 쓴 항소이유서는 명문장이었으니 그의 글빨력은 그것 하나로도 충분히 인정한다. 물론 사고방식이 비슷하든지 아니면 닮으려는지는 모호하나, 그의 책은 한번 들면 꾸준하게 책장을 다 넘길 만큼 완독하게 되는 매력에 빠지게 한다. 아울러 글이 물 흐르듯이 읽기에 편하다.
4. 인생이라는 게 결국은 장소와 시간에 국한될지라도 짧은 여행이다. 요람에서부터 화장터까지의 여행. 이것을 시간의 노마드인건 아닐까. 가끔은 파리에서 한 달을 살아보고 런던에서 한 달을 살아보고 싶다. 낯선 곳에서 낯선 장소가 익숙해질 때까지 있어보면 여행처럼 주마간산식으로 껍데기만 보고 오는 게 아니라 그 속 속들의 알갱이를 보고 싶다. 마치 그곳의 현지 시민처럼 어슬렁거리며 슬리퍼에 후줄근한 운동복 바지에 면 티라도 상관없이 카메라 들고 담배라도 하나 꼬나 물어 보고 싶다. 하염없이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마주한 이면 도로의 골목길에 있는 카페에 앉아,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에 거품 잔뜩 올라온 생크림 우유를 태워 먹고 지나쳐온 빵 가게에서 딱딱한 바게트 빵 하나 사서 질겅질겅 씹어 돌리며 렌즈를 통해서 바라본 도시는 과연 어떤 냄새를 풍길지. 지나가는 행인에게 멋쩍게 서보라고 시늉을 하고 카메라로 사잔 한장 찍어 메일 주소를 물어 건네 줄 수 있는 시간의 여유는 왜 나는 가지지 못했다. 하기야 관광조차 못 가봤는데 몇 달씩이나 노마드라니 과연 무리일 테지. 낯선 것의 새로움은 우리가 매일매일 마주하는 일상의 도시와는 전혀 다른 것들을 우연하게 발견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 그런 도시의 차이점과 다른 점을 맛보고 싶다.
5. 도시는 인간의 몸을 닮았다. 기본적으로 먹고 마시고 싸고 에너지를 얻어 피를 순환하여 곳곳마다 퍼지게 하고 폐기물을 모아서 배출하는 등 일련의 과정이 이와 다르지 않다. 통신과 전기, 상하수도 등등 현대의 도시는 그 생태적인 기능은 거의 몸과 유사하다. 넓은 의미의 큰 몸뚱이나 마찬가지. 그래서 사람들의 활동과 일들과 모든 소사들이 모여 도시의 형태가 이루어지고 또한 이게 도시의 역사가 된다. 길이 나고 건물이 들어서고 그 건물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세포적 활동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특히 도시가 건강하지 못할 때 사람도 병든다. 이 책에서 밝히기를, 인간은 지구의 바이러스, 도시는 바이러스에 의해 생긴 질병'이라고까지 했다. 도시의 하부구조를 이루는 것이 고장 날 때 도시는 급격하게 오염된다. 특히 하수도라는 배기 시스템이 고장 날 때일 것이고 청소하는 분들이 파업할 때, 도시는 더러워진다. 도시의 배설이 고장난다는 것은 병에 걸린다는 뜻이다. 특히 역사가 오래된 도시들의 낡고 찌든 구석에서 도시의 하부구조를 보고 싶은 이유이다. 그 사회가 얼마나 건강하기 위해서 하부구조가 어떻냐에 따라 달린 문제일 확률이 높다.
6. 모든 도시는 인간의 욕망이 집적된 곳이다. 강을 끼고 있는 지역에 촌락이 발생하고 물이 많아 먹잇감이 있는 곳이다. 생존에 대한 욕망이 도시를 만들고 인간을 도시로 빨아들였다. 근대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산업화에 도시는 시골의 사람들을 도시로 이주하게 만들었고 도시는 밀집되었다. 엷은 곳보다 빡빡하게 있는 곳이 먹을거리가 더 많았다. 도시는 현대인의 생존에 대한 표현 방식이 곧 인생이 된 거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인구가 절반을 넘는다. 그만큼 도시는 사람의 욕망이 꿈틀 거리고 또한 그 욕망을 발산하는 터전이다. 따라서 인간의 욕망이 흐르는 방향대로 도시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유럽의 도시들처럼 근사한 바로크 양식의 배흘림기둥으로 된 열주가 들어선 건물도 그들의 바라는 욕망의 방향성이고 우리나라 도시들처럼 온통 아파트만 나열된 닭장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투기가 꿈틀 거리고 온통 매매 차액과 시세 차액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방향과 근사한 고전 양식의 현대풍 건물이 들어 서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건물과 도로가 모여서 도시를 이루는데 건물과 도로 또한 이 욕망에서 예외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 도시가 어느 도시를 가나 비슷한 모양새를 하는 것도 거의 대부분이 그런 욕망의 방향성이 결집된 모양새이다. 부동산이 곧 자본의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곳일수록 도시는 비슷해져만 간다. 도시는 사람의 얼굴과 닮아가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시의 하부구조에서 욕망은 고사하고 욕구 불만이 높을수록 도시는 혁명의 힘이 응집한다. 때론 정치적인 불만으로, 때론 생존적 수단으로써의 파업으로 광장으로 불만을 발산하기도 한다. 욕망이 이글거리면 그릴수록 욕망의 해소를 염원한다. 그래서 도시는 살아가는 바탕에서의 존재적 터전이다. 수도자들이 왜 하나같이 도시를 떠나서 은둔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도시에서는 욕망으로부터 내려 놓기 어지간히도 어렵다. 인간은 도시 환경을 만들고 욕망을 만들고 그 도시환경과 욕망에 의해 지배당하기 때문이다.
7. 이 책은 저자 작가의 유럽의 도시 일부를 여행하고 서술한 기행문 형식의 에세이다. 도시를 찾을 때 도시의 기본 베이스가 되는 역사에 집중하고 여거서 일어난 사건과 사고들에 대한 생각을 덧붙였다. 도시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과 더불어서 역사적인 일들을 헤집으며 도시가 걸어온 지난날의 족적을 오늘날에서 밟아 보는 여행을 구성한 책이라는 점이다. 혹시나 어느 여행사에서 유시민이 다녔던 길을 이 책의 경로를 따라 패키지 여행 상품으로 출시해도 아주 좋은 구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책 한 권 읽으며 따라가서 보는 이야기에서 현장과 접목한 해설서를 마주하는 느낌이랄까.
8. 이번 여름에도 며칠 휴가를 받게 된다면 혼자 가기로 했다. 나야 직장인이니 시간이 자유롭지 못해서 딸아이와 와이프는 이미 블라디보스토크로 둘만 예약했다. 물론 관광 경비는 말이 찬조이지 홀라당 지원했다. 가용할 비상금까지 경비로 줬다.(아놔....내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이번 휴가 때는 혼자서 국내를 돌아다닐까 생각 중이다. 목포에도 가보고 강진해도 가보고 무진에도 가보고 내가 가보지 못한 도시들을 한 번쯤은 겉핥기 식으로도 한 번쯤 만나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라도 쪽은 거의 가본 적이 없으니 이번 휴가 때는 꼭 그쪽으로 가보고 싶었기도 하다. 여느 도시나 엇비슷할 익숙한 풍경일 테지만 그래도 천천히 자세히 보면 분명 다른 무언가가 카메라에 포착될 기대감을 가지고 싶기도 하다. 비록 목포행 완행열차는 아니고 대전발 영시 오십분은 아니지만 내가 핸들을 돌리는 쪽으로 돌아다니면 되지 않을까. 돌아다니다가 해가 저물면 낯선 허름한 식당에서 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잔 걸치며 근처 모델에서 하룻 밤 묵어가도 되지 않을까. 휴가 여행이라기보다는 어느 지점을 방문해야겠다는 계획도 없이 돌아다니는 방랑 같은 그런 거. 그리고 우연하게 타이밍을 잡고 얻어걸린 사진이면 될듯한데 과연 가능할는지 모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