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된 평화
존 놀스 지음, 신소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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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나의 어머니께서 8살이셨던 1959년에 출간된 책으로 고교시절때 한번 읽어보고, 두번째로 다시금 읽어보는 책이다. 출간된 이후 영화와 TV 드라마로도 제작되었으며 700만부 넘게 팔린 책이라고 한다. <호밀밭의 파수꾼>과 함께 가장 많이 읽는다는 청소년 필독서로 손꼽혔다고 하니, 새삼 이 책의 명성이 그정도였구나. 감탄을 자아낸다. 두고두고 옆에 두고 몇번이라도 자꾸 읽어도 좋을 그런 책이라니 청소년들에게도 권하고 성인들도 읽어두면 좋을 책이다.

 

사실, 한번 읽고 두번 읽기 시작했을때,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떠올랐지만(책의 표지가 한몫했는지도 모르겠다) 세세한 부분까지는 기억에 없었다. 주인공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았으니까. 이런 이유에서 여러권의 책을 읽는것보다 어쩌면 한 권의 책을 몇번이라도 읽어보는 것이 좋다는 말이 있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면서, 나도 다섯번 정도는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곳은 미국의 뉴잉글랜드로, 2차대전이 한창인 분위기였다. 명문 사립 기숙학교 데본에서 상급생들은 곧 전쟁에라도 참여하기 위해 훈련 중이었지만 한 학년 아래인 16살 소년들은 조용하기 그지없는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의 앞날은 불투명했으며, 전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피니어스라는 당차고 운동잘하는 소년과 그의 단짝진 포레스터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프도록 시린 여름.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그들만의 시간을 보냈던 소년들의 이야기가 말이다.

 

운동에 그토록 특출난 재능을 가졌던 피니가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서졌을때의 그 상심은 얼마나 컸을지, 피니의 사고가 자신 때문이라고 자책했던 단짝 친구 진은 데본에서 피니가 없는 그 공허함을 무엇으로 채웠을지 마음이 아파왔다. 자신 때문이라고 고백했던 아이들의 모습은 어른들의 세계보다 훨씬 진솔하게 다가온다. 그들 중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는데도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것 같다고 자책하기도 하고, 자신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주인공 진 포레스터는 피니와 함께했던 데번에서의 그 시간이 지나고 15년 후 데번을 다시 찾아가 그때의 일들을 회상하는 것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추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상처가 큰 일들을 진은 어떻게 버텨내고 다시 그곳에 왔던 것인지.. 전쟁의 중간에서 16살 소년들의 생활은 관심을 멀리하고 보면 마냥 평온해 보였을 테지만 그들만의 시간안에서는 어쩌면 전쟁이 아니었을까. 우리 각자의 청소년 시절에도 아픈 기억들과 상처들을 누구나 하나씩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 기억들은 잊혀질수 없는 것들이며, 평생 간직하고 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숲, 데번 학교 소유림은 내 공상 속에서 거대한 북미 삼림의 시발점이었다. 나무들은 데번 숲에서 북쪽으로 끊임없는 긴 통로처럼 이어져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저 먼 끝까지, 어쩌면 캐나다 북 단의 어느 오지까지 닿아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놀이터는 마지막 남은 거대한 원시림의 문명화된 변두리인 셈이었다. 정말로 그런지 알아볼 기회는 없었지만, 아마도 그럴 것이다. (p.31)

 

지금까지 나는 무슨 일이 있든지 간에 매일매일 그것이 새로운 삶인 것처럼, 모든 과거의 실패와 문제는 지워지고 미래의 가능성과 기쁨만이 눈앞에 열려 있어 다시 밤이 오기 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처럼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 눈 내리는 겨울과 피니어스의 목발을 앞에 둔 나는 앞으로 매일 아침 전날 밤의 문제가 그대로 반복되리라는 걸, 잠은 잠시의 유보일 뿐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ㅏ는 걸, 여명과 새벽 사이 내가 새롭게 태어나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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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 저만치 혼자서 Alone Over There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85
김훈 지음, 크리스 최 옮김, 전승희.니키 밴 노이 감수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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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문학을 주제별로 엄선해 국내외에 소개하기 위해 엮은 소설로 이름붙인 이 책.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모음집의 많은 작가중에 나는 김훈 작가를 선택했다. 평소 그의 팬이기도 하거니와 오랜만에 만난 그의 이름이 반가워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기뻤다. 사진에서 보는것과 마찬가지로 아주 적은 페이지의 책으로 김훈 작가의 단 한편의 소설이 담겨 있다. 한글의 옆 페이지에는 영어로 같이 번역된 한 페이지가 있으니 책의 내용이 얼마나 짧은지 짐작할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 짧은 단편이 잔잔하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김요한 주교가 이름지었다는 성녀 마가레트 수녀원은 충청남도 바닷가에 위치한 호스피스 수녀원이었다. 수녀로 한 평생을 보냈던 분들이 아프거나 나이가 들어서 그 곳을 찾아와,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이 성녀 마가레트 수녀원은 도라지 수녀원이라고도 불리워지기도 하는데, 수녀원 뒷편에 자리한 무덤에 도라지가 핀다는 것을 이름해서였다. 그 무덤도 이름하여 도라지공원이다.

수녀원들의 남은 생들은 잔잔하지만 진한 그 무언가를 남긴다. 한평생 누군가를 위해 봉사만 해오신 분들의 남은 생의 모습도 우리네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들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조용히 노력하며 생의 마지막까지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별 내용 아닌 것 같은데도 김훈 작가의 글은 아주 조용한 바다 풍경을 묘사하듯 그의 말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책을 읽는데도 목소리로 조용하게, 나직하게 들려옴은 무슨 일일까?

손안나 수녀의 걸음이 땅 위를 흘러가는 듯하다는 문장처럼. 글들이 흘러가는 듯했다. 내 마음 위에서. 수녀들의 아픔과 죽음과 잔잔한 일상의 이야기들은 그들의 살아온 이야기만큼이 아닌, 너무도 허무하게 쓰여진다. 김요한 주교가 수녀님들에게 더 이상 무언가를 바라지 않듯이. 모든 것을 그냥 바라만 보듯이, 책의 느낌도 관조의 느낌으로 흘러간다. 오랜만에 만나는 김훈 작가의 단편 한 작품이 내 마음에 고이 담겨졌다. ​짧은 단편 소설이 감질맞기도 하지만, 그리 멀지 않게 작가님의 또다른 긴 소설로 곧 만나보고 싶은 바램이다.

 

 

 

 

 맑고 서늘한 날에 손안나 수녀의 정신은 온전했다. 지나간 시간의 기억들이 고이거나 옥죄이지 않아서 마음이 마르고 가벼웠다. 지나간 시간들은 스쳐가기는 했으나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시간은 다시 앞으로 펼쳐져 있는 듯했는데, 그 앞쪽의 시간을 건너갈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 날, 손안나 수녀는 지팡이 없이 수녀원 뜰을 산책했다. 손안나 수녀의 걸음은 땅 위를 흘러가는 듯해서 사람이 그림자의 그림자처럼 보였다.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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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홍의 황금시대 - 긴 사랑의 여정을 떠나다
추이칭 지음, 정영선 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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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서 샤오홍이라는 중국 여성 작가 한명을 알게 되었다. 여성이 자유를 갖기 힘들었던 시대에 태어났지만, 오직 자유만을 추구했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한 한 여인. 최근 10월달에 <황금시대>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이 영화도 샤오홍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였다. 탕웨이 주연으로 해서 화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책을 읽고 영화도 함께 이어서 본다면 좋을 것 같다.

 

창소우라는 작은 마을의 지주 집안에서 큰딸로 태어난 샤오홍은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였다. 8살때 생모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으며, 생모가 돌아가시고 난 후 재혼을 해서 새엄마가 집에 들어온다. 샤오홍이 오직 사랑을 받았던 단 한사람은 그녀를 끔찍히도 아꼈던 할아버지뿐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사랑으로는 작은 아이에게 부족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샤오홍은 세상에 자신을 아껴줄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고 결론 내 버렸다.

 

아버지는 그녀가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 생각해 혼처를 정해주지만, 그녀는 결혼에 관심이 없었다. 그 시대, 마땅히 부모님이 정해주는 혼처로 시집가야 하는 문화였지만, 샤오홍은 아버지의 결정을 거절하고 내내 반항하였다. 그녀는 원하지 않으면 따르지 말라고. 거부하고 싶은면 반항하라고. 거부하는 삶을 살길 원치 않는 이모에게 말한다. 왜 타인에 의해 자신의 삶을 결정해야 하냐고. 이런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자유를 갈구하는 마음이 컸던 여자 샤오홍이었다. 결국 아버지는 첫째딸을 족보에서 제명하기까지 이른다.

 

그렇게 그녀는 혼자가 되어 다른 도시로 떠난다. 하지만 부유한 집에서 자랐고, 돈을 벌줄 몰랐던 샤오홍에게 세상은 냉담했다. 혼인을 거부하고 떠난 베이핑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자신의 약혼자인 왕언지아를 만나게 되면서 동거를 시작한다. 그녀가 거부한 결혼의 당사인 남자를 만나서 동거를 하다니, 아이러니하지만 인연이긴 인연인가 싶었다. 21살. 그녀는 임신을 하게 되고, 돈을 구하러 간 왕언지아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후로도 샤오홍은 몇명의 남자를 만나고, 글을 쓰게되고 이름을 알리게 되는데..

 

그녀는 남자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또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들은 그녀를 떠났다. 그리고 다시 사랑했다. 자유를 추구했던 그녀에게서 매력을 느낀 동시에 버거웠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녀가 집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인생은 그토록 파란만장하지 않았겠지만, 작가로서 샤오홍이라는 그녀의 이름은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정말 이상한 동물이다. 평소에는 정신이 몸을 이끌지만, 몸에 일단 병마가 찾아오고 나면 정신이 몸에 의해 이끌림을 받기가 쉽다. 병이 갈수록 심해지는 샤오홍의 몸은 극도로 쇠약해졌고, 게다가 얼마 전에는 불길한 꿈까지 꾸었으니.. 그 당시 샤오홍은 끊임없이 다른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했었다. 가족이든 친구든 아니면 연인의 사랑이든 상관없었다. 그런 것들을 따질 수도 없었다. 그저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기만 하면, 또 그녀가 가까이할 수 있는 사람이기만 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p.252)

 

남자들의 삶에는 두 여인이 있다. 흰 장미와 붉은 장미, 바로 절개를 지키는 아내와 열렬히 사랑하는 애인이다. 아마도 남자들에게는 이러한 두 여인이 있었을 것이다. 붉은 장미를 아내로 맞이하면,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붉은 것은 벽에 묻은 모기 피처럼 변해버리지만, 흰 것은 여전히 침대 머리맡의 밝은 달빛으로 남아 있다. 흰 장미를 아내로 맞이하면, 흰 것은 옷에 묻은 밥풀처럼 되지만 붉은 것은 도리어 마음속에 붉은 반점으로 남는다.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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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여자 엠마뉘엘 베르네임 소설
엠마뉘엘 베르네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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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뉘엘 베르네임 작가의 책 <커플>을 다 읽고서, 다음엔 이 책을 읽어야지 라고 줄서서 기다리고 있던 자기계발서를 깡그리 무시하고 엠마뉘엘 작가의 이 책을 손에 들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첫번째 책에서 느꼈던 그 신비하고 매력적인 느낌을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느낄수 있었고, 다시 한번 이 작가의 책을 모두 읽어봐야 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커플>의 내용에서 느낀 것들보다 글에서 묻어나오는 무언의 매력을 외면하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이런 것이 글의 힘이고 매력인 것이었던가? 이십년동안 백페이지 남짓한 소설 다섯 편을 발표했다고 하니, 내가 아직 읽지 못한 건 세 편의 작품이 남았다. 긴 추리소설보다, 유쾌한 재미가 있는 소설보다 더 강렬했다.

 

"그녀는 핸드백을 도둑맞았다." 로 이 책은 시작된다.

내과의사 클레르는 핸드백을 잃어버렸고, 어느날 병원에 한 남자가 그녀의 핸드백을 들고 찾아온다. 그는 클레르가 일하는 근처 공사장에서 일하는 건축가 토마스 코바크라는 이름의 남자였다. 이 두사람의 만남은 이렇게 평범하게 시작된다. 남자친구 미셸과는 헤어지고 클레르는 토마스에게 빠져든다. 하지만 토마스는 그녀에게 자신은 미혼이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클레르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는 그의 고백에도 그에 대한 마음은 그대로였고 토마스와의 관계를 계속 이어간다.

 

주말을 제외한 평일 1시간 15분. 토머스와 함께하는 시간이다. 클레르는 그와의 시간속에서 추억을 남길 물건 한가지들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그와 처음 카페에 갔던날 그가 넣었던 각설탕, 칵테일을 저었던 노란색 막대, 토마스가 건넨 장미, 그와 마신 샴페인 마개, 콘돔껍질, 토마스가 남긴 전화기 자동 응답기의 테이프. 등.. 자신의 병원 서랍속에 그와 함께한 물건들을 간직하며 토마스와의 관계를 이어간다. 그리고 그와 함께하지 않을 때 클레르는 상상한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에 대해서. 절대로 그를 구속하는 행동을 하지도 않고, 그에게 질투를 자아내게 하는 말을 하지 않는 클레르. 어떻게 보면 이런 여자가 있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런데 말이다. 어느 날 토머스가 자신이 미혼이라고 말했던 것은 거짓말이라고 고백한다. 고백의 고백이다. 평범한 여자들이었다면, 처음 토머스가 미혼이라고 말했을때, 그리고 미혼이 아니라고 다시 말했을때 여자들은 분노하거나 화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클레르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 고백때는 조금 놀랐을 뿐이고, 그것은 아무것도 문제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번째 고백에는 안도했다. 그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이런 여자가 있을까? 클레르는 분노하지 않았다. 다만 토머스를 사랑하는 몸짓만 보여주었을 뿐이다. 남자들이 바라는 여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남자에 대한 사랑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여자에 대한 소설. 하지만 <커플>에서 받았던 글의 느낌이 이 책에서도 오롯이 느껴진다. 그것은 깔끔함이었고, 달콤한 것은 낮춘 차가움이었다. 간결하고 퍼석한 건조함이 느껴지는 글이라고 하면 이해가 갈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직접 책을 읽어봐야 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이 작가만의 매력적인 요소라고 생각된다. 독특한 매력. 반해버렸다.

 

 

 

다음 날, 클레르는 손가락들이 서랍 안에 가지런히 놓인 각설탕을 만지작거렸다. 그 순간 토마스의 환한 미소와 설탕이 녹아 있는 커피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시려고 고개를 젖힐 때의 목이 떠올랐다. 그가 시간을 확인하려고 그녀의 손목을 잡았을 때 전해지던 손의 열기가 아직도 느껴졌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의 밤색 머리는 허옇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클레르는 각설탕들을 집어서 휴지통에 던졌다. 이걸 간직하면 뭘 해? 다시는 토마스 코바크를 만나지 못할 텐데. (p.31)

 

그녀는 잠이 잘 올 것 같았다. 그는 '올여름', 그리고 '우리'라고 말했다. 일월, 이월, 삼월, 사월, 오월, 유월. 적어도 여섯 달 동안은 그들은 헤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우리'를 되뇌었다. 토마스와 그녀는 이제부터 '우리'가 되는 것이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올여름에는 우리 정원에서 저녁을 먹읍시다.' 따뜻한 날씨, 정원에 놓인 하얀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들. 의자의 수는 내 개. 토마스의 아내가 주방에서 나온다. 클레르는 머리맡 램프의 스위치를 찾았다. 이제 더는 토마스의 아내를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토마스에게 아내는 없다.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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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 엠마뉘엘 베르네임 소설
엠마뉴엘 베른하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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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뉘엘 베르네임 작가의 책 <커플> 한마디로 신선했다. 내가 그동안 접해본 그 누구의 작가보다 독특한 매력을 솔솔 풍기는 글이었다. 이 책의 페이지수는 총 103페이지. 이 짧은 페이지 속에서 책의 내용은, 깔끔함, 차가움, 무뚝뚝함, 고독감, 과 같은 것들을 느낄수 있었다. 이 커플의 연애는 진정 무엇이란 말인가?

한 커플이 만나고 여덟번의 저녁 식사를 가지면서 섹스를 하고, 질투하고 오해하는 이야기이다. 대개 이런 커플의 이야기 속에는 풋풋하고 설레이는, 그리고 달콤한 이런 내용도 분명히 들어 있을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글쎄? 책의 표지에서 보여주는 보라색의 색감대로라면, 전혀 그런 것들은 느낄수 없었다. 달콤한 대화는 일언반구도 없었고, 풋풋한 그런 느낌도 전혀 없었다. 그게 뭐야? 뭐 어떤 소설이란 말이야? 라고 어이없다는 말로 의문을 가질 법도 하겠다. 그런 의문 또한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 책의 매력은 바로 그것이니까.

의사인 로익과 사진관을 운영하는 엘렌은 첫 저녁식사를 시작으로 만남을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갖게 된 두번째 식사에서 로익은 그녀의 잇새에 낀 샐러드 조각의 풀을 바라보다 키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다. 샐러드 조각을 뽑아주겠노라며. 하지만 저절로 빠진 샐러드 조각에 키스를 하지 않는다. 3번째 식사는 엘렌이 로익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음식을 준비하고, 술을 준비했지만, 로익은 약속을 취소하고, 엘렌은 준비한 음식을 냉장고에 넣어버린다. 그렇게 여덟번까지의 식사를 이어가고 섹스로 이어진다.

현재 내가 이야기한 이 대충의 내용과 소설속에서 받는 느낌은 상당히 다르니, 꼭 책을 읽어보고 어떤 느낌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바란다. 이 커플의 사랑은 분명 우리가 하는 사랑과 같다. 하지만 그 속에서 달콤한 언어들을 싹 빼버리니, 그들이 진정 사랑하기는 한 것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자꾸 만들었다. 두사람이 하고 있는 질투에서 그런 것들을 느낄수 있었으니까. 사랑에 대해 말하지 않으며 단지 사랑을 할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주인공이 상대에게 약간의 설레임을 느끼고 있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던 곳이 있었다. 로익이 엘렌의 집에서 키스를 하고, 당혹감에 점퍼를 두고 가버린 다음날 엘렌은 로익의 점퍼를 입고 출근했을때, 엘렌의 마음은 설레임이 아니었을까? 그가 점퍼를 가지고 올꺼라고 생각했던 그 마음. 말이다. 차근히 생각해 보니, 이 무뚝뚝함이 흐르는 소설 속 공간에서도 분명 그런 설레임이 있었다. 자세히 그들의 연애를 되집어 보면 그런 순간들이 또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소설들과는 분명히 다른 매력을 주는 이 작가의 소설이 나는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너무도 신선했다. 그 신선함을 가지고 이 작가의 다른 소설 <그의 여자>를 읽을 것이다.

 

엘렌의 윗니 사이에 풀, 아니 샐러드 조각이 끼어 있었다. 로익은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그는 일부러 말을 시켰다. 그는 그녀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입에 시선을 고정하고 치아를 드러낙게 할 음절이나 미소를 기다렸다. 그녀는 먹고 있었다.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입술을 닦았다. 그는 꼼짝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말을 시작하면서 미소 짓길 기다렸다. 그는 커피 두 잔과 계산서를 부탁했다. 그는 엘렌을 바래다줄 것이다. 그리고 키스할 것이다. (p.11)

 

엘렌은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다. 그가 그녀를 만난 뒤 처음으로 빨간 립스틱을 발랐다. 그건 그가 그녀에게 키스를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의 입술 색보다 약간 짙고 약간 반짝거리는 립스틱 때문에 입은 더 커 보이고 치아는 더 하얗게 보였다. 그는 엘렌을 벽으로 밀어붙이고 키스했다.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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