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 저만치 혼자서 Alone Over There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85
김훈 지음, 크리스 최 옮김, 전승희.니키 밴 노이 감수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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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문학을 주제별로 엄선해 국내외에 소개하기 위해 엮은 소설로 이름붙인 이 책.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모음집의 많은 작가중에 나는 김훈 작가를 선택했다. 평소 그의 팬이기도 하거니와 오랜만에 만난 그의 이름이 반가워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기뻤다. 사진에서 보는것과 마찬가지로 아주 적은 페이지의 책으로 김훈 작가의 단 한편의 소설이 담겨 있다. 한글의 옆 페이지에는 영어로 같이 번역된 한 페이지가 있으니 책의 내용이 얼마나 짧은지 짐작할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 짧은 단편이 잔잔하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김요한 주교가 이름지었다는 성녀 마가레트 수녀원은 충청남도 바닷가에 위치한 호스피스 수녀원이었다. 수녀로 한 평생을 보냈던 분들이 아프거나 나이가 들어서 그 곳을 찾아와,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이 성녀 마가레트 수녀원은 도라지 수녀원이라고도 불리워지기도 하는데, 수녀원 뒷편에 자리한 무덤에 도라지가 핀다는 것을 이름해서였다. 그 무덤도 이름하여 도라지공원이다.

수녀원들의 남은 생들은 잔잔하지만 진한 그 무언가를 남긴다. 한평생 누군가를 위해 봉사만 해오신 분들의 남은 생의 모습도 우리네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들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조용히 노력하며 생의 마지막까지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별 내용 아닌 것 같은데도 김훈 작가의 글은 아주 조용한 바다 풍경을 묘사하듯 그의 말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책을 읽는데도 목소리로 조용하게, 나직하게 들려옴은 무슨 일일까?

손안나 수녀의 걸음이 땅 위를 흘러가는 듯하다는 문장처럼. 글들이 흘러가는 듯했다. 내 마음 위에서. 수녀들의 아픔과 죽음과 잔잔한 일상의 이야기들은 그들의 살아온 이야기만큼이 아닌, 너무도 허무하게 쓰여진다. 김요한 주교가 수녀님들에게 더 이상 무언가를 바라지 않듯이. 모든 것을 그냥 바라만 보듯이, 책의 느낌도 관조의 느낌으로 흘러간다. 오랜만에 만나는 김훈 작가의 단편 한 작품이 내 마음에 고이 담겨졌다. ​짧은 단편 소설이 감질맞기도 하지만, 그리 멀지 않게 작가님의 또다른 긴 소설로 곧 만나보고 싶은 바램이다.

 

 

 

 

 맑고 서늘한 날에 손안나 수녀의 정신은 온전했다. 지나간 시간의 기억들이 고이거나 옥죄이지 않아서 마음이 마르고 가벼웠다. 지나간 시간들은 스쳐가기는 했으나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시간은 다시 앞으로 펼쳐져 있는 듯했는데, 그 앞쪽의 시간을 건너갈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 날, 손안나 수녀는 지팡이 없이 수녀원 뜰을 산책했다. 손안나 수녀의 걸음은 땅 위를 흘러가는 듯해서 사람이 그림자의 그림자처럼 보였다.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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