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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여자 ㅣ 엠마뉘엘 베르네임 소설
엠마뉘엘 베르네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엠마뉘엘 베르네임 작가의 책 <커플>을 다 읽고서, 다음엔 이 책을 읽어야지 라고 줄서서 기다리고 있던 자기계발서를 깡그리 무시하고 엠마뉘엘 작가의 이 책을 손에 들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첫번째 책에서 느꼈던 그 신비하고 매력적인 느낌을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느낄수 있었고, 다시 한번 이 작가의 책을 모두 읽어봐야 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커플>의 내용에서 느낀 것들보다 글에서 묻어나오는 무언의 매력을 외면하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이런 것이 글의 힘이고 매력인 것이었던가? 이십년동안 백페이지 남짓한 소설 다섯 편을 발표했다고 하니, 내가 아직 읽지 못한 건 세 편의 작품이 남았다. 긴 추리소설보다, 유쾌한 재미가 있는 소설보다 더 강렬했다.
"그녀는 핸드백을 도둑맞았다." 로 이 책은 시작된다.
내과의사 클레르는 핸드백을 잃어버렸고, 어느날 병원에 한 남자가 그녀의 핸드백을 들고 찾아온다. 그는 클레르가 일하는 근처 공사장에서 일하는 건축가 토마스 코바크라는 이름의 남자였다. 이 두사람의 만남은 이렇게 평범하게 시작된다. 남자친구 미셸과는 헤어지고 클레르는 토마스에게 빠져든다. 하지만 토마스는 그녀에게 자신은 미혼이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클레르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는 그의 고백에도 그에 대한 마음은 그대로였고 토마스와의 관계를 계속 이어간다.
주말을 제외한 평일 1시간 15분. 토머스와 함께하는 시간이다. 클레르는 그와의 시간속에서 추억을 남길 물건 한가지들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그와 처음 카페에 갔던날 그가 넣었던 각설탕, 칵테일을 저었던 노란색 막대, 토마스가 건넨 장미, 그와 마신 샴페인 마개, 콘돔껍질, 토마스가 남긴 전화기 자동 응답기의 테이프. 등.. 자신의 병원 서랍속에 그와 함께한 물건들을 간직하며 토마스와의 관계를 이어간다. 그리고 그와 함께하지 않을 때 클레르는 상상한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에 대해서. 절대로 그를 구속하는 행동을 하지도 않고, 그에게 질투를 자아내게 하는 말을 하지 않는 클레르. 어떻게 보면 이런 여자가 있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런데 말이다. 어느 날 토머스가 자신이 미혼이라고 말했던 것은 거짓말이라고 고백한다. 고백의 고백이다. 평범한 여자들이었다면, 처음 토머스가 미혼이라고 말했을때, 그리고 미혼이 아니라고 다시 말했을때 여자들은 분노하거나 화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클레르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 고백때는 조금 놀랐을 뿐이고, 그것은 아무것도 문제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번째 고백에는 안도했다. 그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이런 여자가 있을까? 클레르는 분노하지 않았다. 다만 토머스를 사랑하는 몸짓만 보여주었을 뿐이다. 남자들이 바라는 여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남자에 대한 사랑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여자에 대한 소설. 하지만 <커플>에서 받았던 글의 느낌이 이 책에서도 오롯이 느껴진다. 그것은 깔끔함이었고, 달콤한 것은 낮춘 차가움이었다. 간결하고 퍼석한 건조함이 느껴지는 글이라고 하면 이해가 갈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직접 책을 읽어봐야 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이 작가만의 매력적인 요소라고 생각된다. 독특한 매력. 반해버렸다.
다음 날, 클레르는 손가락들이 서랍 안에 가지런히 놓인 각설탕을 만지작거렸다. 그 순간 토마스의 환한 미소와 설탕이 녹아 있는 커피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시려고 고개를 젖힐 때의 목이 떠올랐다. 그가 시간을 확인하려고 그녀의 손목을 잡았을 때 전해지던 손의 열기가 아직도 느껴졌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의 밤색 머리는 허옇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클레르는 각설탕들을 집어서 휴지통에 던졌다. 이걸 간직하면 뭘 해? 다시는 토마스 코바크를 만나지 못할 텐데. (p.31)
그녀는 잠이 잘 올 것 같았다. 그는 '올여름', 그리고 '우리'라고 말했다. 일월, 이월, 삼월, 사월, 오월, 유월. 적어도 여섯 달 동안은 그들은 헤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우리'를 되뇌었다. 토마스와 그녀는 이제부터 '우리'가 되는 것이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올여름에는 우리 정원에서 저녁을 먹읍시다.' 따뜻한 날씨, 정원에 놓인 하얀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들. 의자의 수는 내 개. 토마스의 아내가 주방에서 나온다. 클레르는 머리맡 램프의 스위치를 찾았다. 이제 더는 토마스의 아내를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토마스에게 아내는 없다. (p.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