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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평점 :
밀회 중 <로즈 울다> 란 단편이 참 좋았다. 그 순간의 느낌과 분위기, 그 묘한 감정선들과 로라의 마음이 와닿았다.
늙은이의 마음이란 게, 감정이란 수분이 날라가고 바싹 말라버려 아픔 따위도 증발한 듯하지만, 상실과 배신이 걸어오면 그 발자국 밑으로 바싹 말라버린 그 마음은 더 쉽게 부서지고 바스라진다. 그렇게 부스러기로 남아 흩어지기라도 하면 텅빈 마음과 갈라진 자욱은 더 오래 남는다. 나이가 들면 멍도 상처도 더 오래 가듯말이다. 바싹 말라버린 마음은 깨지는 소리마저 더 크게 들린다. 마음이 깨지는 소리를 숨죽여 듣던 로즈는 마음을 다해 울어준다. 말라버린 늙은이를 대신해서.
사람은 혼자다. 외로운 존재다. 죽음도 외로운 것, 그러나 트레버의 소설 속 인물들의 마음만은 외롭지 않다. 누군가와의 사랑이 연민이 그리고 추억이 담겨 있다. 통속적이지 않도록, 과하거나 미화되지 않도록, 차분하게 그리고 자세히 쓰인 트레버의 글을 따라가면, 내가 보지 못한 삶의 이면과 섬세한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 <무용선생의 음악>에 나오는 브리지드가 자신이 떠난 후에도 자기 삶의 놀라운 경이였던 그 음악이 이곳의 영혼으로 남으리라는 것을 알 듯, 트레버의 글들도 무용선생의 음악 같은 존재가 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