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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르인의 사막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3
디노 부차티 지음, 한리나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평점 :
조반니 드로고.
삶이란 결국 오지 않는 적을 기다리며 익숙해지는 것, 그러다 모두가 같은 적을 만나 떠나는 것?
기다리던 일이 일어나는 순간 내쳐지거나 소외되는 것? 그러다 자신이 진정 기다린 것은 A가 아니라 B임을 알아가는 것 .
하지만 드로고는 마차에 올라 즉시 떠나라고 명령했다. 그는 숨을더 편히 쉬고자 덮개를 내리게 하고 어두운 색상의 담요 두세 장으로다리 부위를 감쌌다. 그 위로 사브르의 광채가 스며나왔다. 마차는 돌멩이들 위에서 흔들리며 돌투성이 평지로 향했다. 그렇게드로고의 길은 마지막 갈림길로 향하고 있었다. 바퀴가 돌에 부딪칠 때마다 의자 한쪽에 앉은 그의 머리가 흔들거렸다. 드로고는 점차 낮아지는 요새의 노란 성벽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곳에서 그는 세상과 분리되어 살았고, 적군을 기다리며 삼십 년이넘는 시간을 고통스럽게 지냈다. 그리고 외국의 적들이 도착한 지금, 동료들은 그를 쫓아버렸다. 한편 그의 친구들과 타인들은 저 아래 도시에서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고, 이제 목적지에 도달하여 우월한 경멸의 미소를 지으며 전리품을 거머쥐고 있었다.
이제 드디어 그는 장교가 되었다. 파고들어야 할 책도, 상관의 목소리에 떨어야 할 일도 더는 없었다. 모든 게 지나간 과거였다. 증오스럽게만 여겨졌던 생도 시절의 모든 날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달과 햇수를 채우고 어느새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그렇다, 이제 그는 장교였다. 앞으로는 돈을 거머쥘 수 있을 테고, 아름다운 여인들이 그에게 관심을 보이리라. 하지만 조반니 드로고는 사실상 삶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인 풋풋한 청년기 또한 어느덧 끝나버렸음을 깨달았다. 드로고는 그런 생각에 잠겨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랑하려고 부질없이 애썼던 얼굴에 드리운 억지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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