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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레이몬드 카버 지음, 정영문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2월
평점 :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외국영화에 보면 이동식 놀이동산이 한 번씩 나오곤 한다. 이제 마을에서 올 사람들은 거의 다 온, 오늘을 마지막으로 천막을 걷을 놀이동산이다. 해는 지고 첫 날의 기고만장 대신 해 질 무렵의 쓸쓸함이 밀려오지만, 내일은 또 다른 곳에서 새로운 회전목마가 돌겠지. 하루키의 단편들은 그런 놀이동산 느낌이 난다. 하루키와 참 많이 닮은 레이몬드 카버의 단편들도 놀이동산 느낌이다. 철 지나고 버려져, 그대로 비를 맞아 녹 슬고 삐걱이며 더 이상 돌지 못하는 회전목마의 놀이동산.
하루키의 좀 더 삭막한 버전의 단편을 읽는 느낌이었다. 구체적인 상표의 언급과 묘사가 주는 현실감도 닮았다.
레이먼드 카버.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영화 <숏컷>과 하루키의 글들에서 먼저 안면을 튼 작가다.
<숏컷>은 그 당시 내가 좋아했던 줄리안 무어와 팀 로빈슨이 나온다고 해서 무턱대고 본 영화, 보고 나서는 이게 뭐지? 했던 영화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들을 엮어 만든 영화다.
삭막함과 불륜, 어지럽고 독창적인 이야기들이 묘하게 맞물리는 영화였다.
그리고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서 숏컷 영화의 몇 장면을 그 느낌을 찾았다.
<목욕>이란 단편에선 생일을 앞두고 사고를 당한 스코티, 그리고 스코티의 케이크를 주문받은 가게 주인이야기가 나오며, <여자들에게 우리가 간다고 말해줘>에서의 유부남들이 불륜,<너무나 많은 물이 집 가까이에>에선 변사체를 놓고 태연히 캠핑을 즐기는 남자들이야기.
매번 보던 익숙했던 벽의 금이, 벗겨진 페인트칠이 못 견뎌질 때가 있다. 그러려니 참았던 남편의 뒤집어진 양말에, 오늘은 끝장을 보리라 극단적일 때가 있다.
그것은 이미 포화상태, 참을 만큼 참았다는 것.
미끈하고 번지르한 삶보단, 소금기 어린 그리고 쓸쓸함과 의미없음, 지나가 버리고 나면 무상함만 남는 삶의 아픔이 담겨 있다.
낡고 허물어져 가는 집, 구차한 세간들, 그 속의 더 위태로운 삶들이 아픔으로 혹은 불편함이나 불쾌함으로 그리고 소설 속 솔직한 현실 앞에 수치스러움으로 담겨 있다.
삶은 이렇게 구차하고 허무하고 손쉽게 바스라지고 더럽혀지는 걸까.
니체는 위대한 철학자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덧없는 그림자라는 예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덧없는 그림자.
그렇지만 그 그림자들이, 모네가 그린 그림자처럼 제각기 색깔이 다름을, 모양도 크기도 다름을 조금은 희망으로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결국 그들은 하던 일을 계속했고, 텐트를 쳤다. 그들은 불을 피웠고 위스키를 마셨다. 달이 떴을 때 그들은 여자애 얘기를 했다. 누군가 시신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들은 손전등을 들고 다시 강으로 갔다. 그들 중 한 명이 물 속으로 들어가 그녀를 붙잡았다.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강가로 끌어냈다. 나일론 줄을 찾아 그녀의 손목을 묶은 다음 나무에 걸었다. ~ 너무나 많은 물이 집 가까이에, 126p~>
<그 후로 아버지는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은 듯했다. 더미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니었다. 물 위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간 그 팔은 좋은 시절에 보내는 작별인사이자 나쁜 시절을 맞이하는 인사인 듯 여겨졌다. 더미가 그 어두운 물 속으로 자신의 몸을 던진 이후 모든 일이 그러했다. ~ 우리 아버지를 죽인 세 번째 이유 160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