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작품은 소설가 박범신씨가 1999년 발표한 장편소설 '침묵의 집'을 개작한 '주름'을 한 차례 더 개작해 다시 펴낸 소설이다.

소설은 인생의 기로에 선 50대 남자의 파멸과 또 다른 환생을 그린 작품이다. 50대 초반에 접어든 어느날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어떤 운명적 만남에 의해 주인공은 지금껏 50평생 살아온 일상을 파괴하고 새로운, 전혀 새로운 광포한 운명에 휩쓸리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세계 곳곳을 헤집어 다니며 무언가 진한 삶의 이상향을 찾는다거나, 깊은 꿈같은 영혼의 자유를 갈구하며 끝을 알수 없는 파격속을 나아간다.​

천예린이라는 한 시인의 출연은 그동안 이 남자가 쌓아왔던 '반듯한 가장'의 교과서적 정의를 하나하나 지우게 만든다. 남자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녀를 따라간다. 그리고 죽음과의 지독한 싸움은 시작된다. 몸에 죽음을 안고 사는 천예린을 찾아 여행을 하며, 그는 자신에게서 벗어났고 자유를 찾았으며 유랑을 얻었다. 그런 자유와 해탈의 경지에서 그는 다시 천예린을 만났으며 천예린을 안았으며 천예린을 묻었다. 그는 생의 문을 열고 감옥에서 벗어났지만 그녀는 더욱 견고하게 생의 문을 닫고 더 깊은 감옥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자유를 찾고 유랑을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답답했다. 그리고 4천7백 미터가 넘는 얼음의 앞에서 알게 된다. 자신이 믿었던 자유, 유랑의 중심은 아무 것도 있지 않다는 것을. 그것은 허깨비에 불과했다는 것을. 죽음에 다가갔고 그것을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인간이란 본래 외로운 존재이듯 죽음은 개인적인 것이었다. 그러니, 그것을 알기 위해선 여전히 살아남아야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맞게 될 죽음을 선택한다. 자신을 넘어선 새로운 생명을 연결시키길 바라면서 말이다.

평생을 바른 생활 사나이로 살았던 50대 가장의 갑작스러운 심경 변화를 묘사해나가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울컥해지기까지 할 정도였다. 일상에 묻혀있던 평범한 한 회사원이 어느날 갑자기 춤을 배우게 되면서 새로운 활력을 찾아가는 내용의 일본영화 'Shall we dance?'와 비슷하다는 느낌이랄까? 세계 곳곳을 헤집어 다니며 무언가 진한 삶의 이상향을 찾는다거나, 깊은 꿈같은 영혼의 자유를 갈구하며 끝을 알수 없는 파격속을 나아간다. 프롤로그와 비슷한 초반 서술을 넘기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아버지의 독백 파트에 이르면서 작품은 가히 예술적인 경지의 흡인력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이 책이 줄여지기 전에 출판 된 책을 만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고 이 책을 만나는 힘든 여정 속에 생각했었다. 하지만 작가만의 죽음에 대한 반역을 살짝 눈치 챈 지금은 이 책만으로 충분히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다. 나 역시 '주름의 시간'을 극복하기 위한 개인적인 시간을 갖겠다. 더 이상 타인의 죽음을 바라보며 유사 죽음을 경험하고 싶지는 않다. 이 책은 두고두고 만나고 싶은 책이지만, 자주 만나고 싶지는 않다. '주름의 시간'을 극복할만한 시간이 흐르고 그 '극복'의 순간이 온다면 그 때 다시 이 책을 만나며 내가 건너 온 '주름'의 강을 저자와 나눠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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