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성지에서 쓴 편지>는 부제 '붓다처럼 걸어간 1600리 길, 그 위에서 나눈 묵상'에서 알 수 있듯 인도에서 순례의 여정중인 호진스님과 한국에 있는 지안스님이 서로 주고 받은 편지를 책으로 엮었다. 호진스님은 신격화 되어있는 부처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부처의 모습과 사실을 알고자 한다. 싯다르타는 나이란자나 강물위로 발바닥에 물을 묻히지 않고 걷기도 했고, 넓은 갠지스 강을 힘센 장정이 팔을 굽혔다 펴는 사이에 날아 건너기도 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도리천이라는 곳에 올라가 30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께 석 달 동안 설법을 했다고 하는데 이런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호진스님은 부처가 깨달은 곳인 보드가야에서 첫번 째 설법지인 사르나트까지 278km 거리를 장장 17일동안 라즈기르에서 석가모니의 열반지인 꾸쉬나가르 20일동안 352km 거리를 도보로 횡단하였다.
또한 눈에 띄는 내용이 있었는데, '깨달음'에 대한 단어의 의미이다. '나를 깨우치다'와 '나를 이해하다'
'우주를 깨우치다'와 '우주를 이해하다' 이 표현의 차이가 느껴진다면 단어(말)의 중요성에 대해 감(感)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부처가 깨닫고 사르나트 녹야원에서 다섯 도반에게 첫 설법을 하였는데, 제일 먼저 교진여가 부처의 정각 내용을 깨치고 인가를 받았다. 'annata kondanna'는 '깨친 교친여'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깨닫다'라는 단어의 의미는 현재와는 다른 어떠한 것, 신비하고 알 수 없는 어떠한 것의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이해하다'라는 단어는 자연스럽고 친숙하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순례자들이 아무리 진지한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도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붓다의 실제모습은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호진스님의 치열함과 연구방법을 좋아하며, 후대에 첨가된 한문 경전들은 빠알리 경전과 비교하여 버릴것은 버려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부처님의 능력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 호진스님은 4성제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3전 12행의 내용을 후대에 생긴 것이라고 보고, 마하왁가에서 나오는 12연기가 깨달음의 내용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천불화현, 도리천 방문, 술취한 코끼리를 조복 시킨 일, 원숭이가 부처님께 꿀을 바친 사건등도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고 보는 입장이지만 나는 이러한 것들을 모두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본다. 고희를 앞둔 연세에, 인도에서 도보를 통해 간다는 것은 웬만한 신념으로는 어려운 일이며, 책을 한장 한장 넘길때 마다 걸으면서 겪었던 어려움과 내면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