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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림 떨림 울림 - 이영광의 시가 있는 아침 ㅣ 나남시선 83
이영광 엮음 / 나남출판 / 2013년 1월
평점 :
이 책은 시인 이영광님이 2012년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코너에 연재된 그의 글을 모아 낸 책이다.
김종삼, 오탁번,기형도, 김수영, 로버트 프로스트, 베르톨트 브레히트, 두보 등 우리나라와 외국 시인들의 시 67편을
골라 아름다운 시편들을 담아 각각의 시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함께 들려주고 있다.
죽음을 성찰하면서 시인은 삶의 중심에 대한 물음을 새롭게 던지는 시인 이영광님이 쓰신 내용이라 시인의 감성으로 바라본 시의 내용들이 재해석되어 다가왔다.
결핍은 시의 문전옥토다.
당신이 와버리면,
당신이 전부일 나에게 시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173)
<기억할 만한 지나침> - 기형도
그리고 나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눈은 퍼부었고 거리는 캄캄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물들은 눈을 뒤집어쓰고
희고 거대한 서류뭉치로 변해갔다.(중략)
책을 읽으며 특히, 기형도시인의 시가 내게 다시금 다가왔다.
지금은 그 때의 눈 오던 날, 그 울던 사람과 똑같은 모습일 시인.
누군가가 숨죽여 뒤에서 그 시간을 지켜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켜주고 있었으면, 침묵도 하나의 위로이자 이해라는 것.
도망치듯 떠나온 길 위에서 나는 길을 잃고 말았다. 어떻게 해야할까.
아니, 애당초 목적지가 없었으므로 나는 그저 길 위에 있을 뿐이다. 숱한 사람들과 풍경들이 나를 스쳐지나갔듯,
이 낯선 길 위에서도 또다른 무수한 지나침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언제고 낯설지 않았던 때가 있었던가. 단지 소망해 보는 것은 새로운 만남들이 기억할만한
지나침으로 남아졌으면 하는 바램. 그래서 조금의 소통과 연대에 의해 단절된 관계가 회복되었으면 하는 소망.
그래서 다시금 확신있는 길을 찾게 되었으면 하는 꿈. 이렇게 나의 마흔은 길 잃은 길 위에서 시작되었다.
한 편 한 편이 아픈 기형도 시인의 시.신기한 건 더 슬퍼지게도 하지만 위로도 된다!
따뜻해지기를 바랄뿐이다.
.“지상의 영화를 찬양하는 종교가 없듯이 현세의 복락을 지지하는 시도 근본적으로는,
없.”고“어떤 종교는 고통 그것도 허망이라고 가르치지만, 모든 시는 허망을 고통이라 느끼는 곳에서부터 말을 시작한다.”(89 쪽)
그 동안 살아온 모든 것들, 그러니까 맺어온 관계와 공 들여온 지식과 축적해온 부와 한걸음씩 나아가던
신앙 같이 '나'를 이루던 그 모든 것들을 지독하게 부정하고 있는 지금 소망스러운 무언가가 지금 여기에 없을 때 시는 태어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