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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의 코미디
한스 케일손 지음, 정지인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마리는 해방의 날이 찾아와 셋이서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집 밖으로 나가는 상상을 여러 번 해왔다. 모든 사람이 곧장 그들을 바라볼 것이고 방 안에만 틀어박혀 지낸 사람답게 창백한 그의 안색과 그런 점을 더욱 강조해줄 그의 외양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한눈에 알아볼 것이다.
그가 갑자기 그들의 집에서 나와 그들과 함께 거리를 산책하면 이웃 사람들과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들은 작은 만족감을 느낄것이다.(p.172)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네덜란드를 배경으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젊은 부부 '빔'과 '마리'는 어느 날 도피 중인 한 향수외판원인 '니코'라는 유대인을 숨겨줄 것을 제안받는다. 나치에 저항하는 저항단의 일원도 아니었지만 니코를 돕기로 결심한 부부는 그를 보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서적 면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하지만 니코는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폐렴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죽게된다. 전쟁이 끝난 후 자유를 찾게 해준다는 목표의식이 전쟁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은연중에 생각하던 누군가를 구했다는 잠재된 영웅심이 보상 받기도 전에 어이없이 사라진데에 대한 공허한 상태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더 큰일은 니코의 시체를 처리하는 일이다. 부부는 우여곡절끝에 니코의 시체를 처리하지만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인해 자신들이 위험에 빠지게 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작가는 절박하고 긴급한 상황에서 웃지 못할 실수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을 희극적 어조로 담담하게 그려냈다. 안네프랑크의 안네의 일기라는 작품과 동시대에 출간되었지만 안네의 일기가 목격자의 시각에서 쓰여진 반면 나치 시대와 새로운 시각으로 홀로 코스트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전쟁과 학살이라는 상황에서 펼쳐지는 웃지 못할 실수와 소동이라는 스토리 구조, 캐릭터의 설정 능력, 생각과 일상에 대한 차분한 묘사로 인간성에 대한 통찰이 번득이는 깊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1936년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은신의 생활을 한 경험이 있었던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녹여낸 이 작품이 세상에 빛을 보게된 과정에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1947 년 출판되었으나 빛을 보지 못하고 최근 오스트리아의 작은 서점에서 염가 판매되던것을 미국의 번역문학가가 우연히 발견하여 출간 63년 세계문학계에 소개됐다. 아이러니, 관통, 공감, 그리고 훌륭하게 현대, 요셉 프란츠 카프카와 로스의 후계자로서의 자격이 충분한 '한스 케일손'이라는 위대한 작가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만약 이 작품이 출간 후 바로 영어로 번역되었다면 아마도 엄청나게 유명세를 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늦게라도 세상에 알려진 이 작품을 만난것에 대해 멎진 작가를 또한사람 알게되었다는 뿌듯함이 드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