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휴와 침묵의 제국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윤휴는 1617년 대사헌 윤효전의 아들로 태어나 벼슬과는 담쌓고 평생을 초야에 은거해 오다 숙종1년때 몇번의 부름을 거부한 끝에 늦은 나이인 만 58세의 중앙의 정치무대로 진입 한다. 그의 출사이유는 백성들이 잘 사는 방법으로 오로지 북벌대의를 시행하는 길이라 생각을 한다. 윤휴는 북벌을 위해서 섞어빠진 사대부들을 뒤로 하고 백성들에 주목을 한다. 윤휴는 백성들이 북벌의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 후 신분제의 틀을 해체내지 완하하는 것이 사회발전에 크게 이바지 할거라 보고 법이나 정책이 백성들 중심으로 재정비 되어야 한다고 생각, 양반과 사대부의 기득권을 타파하는 지패법과 호포법을 주창한다. 그 이유는 북벌을 하자면 나라가 튼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고 신분마다 다른 재질로 만들어 차고 다니는 호패법을 없애고 모두가 종이에 신분을 적어 다니는 지패법으로 신분차별을 없애려 한것이다 , 정권의 실세인 송시열이 수장인 서인과 남인과의 갈등구조 속에서 현실적으로 북벌대의가 그의 의도대로 실행되지 않았고, 왕권의 정통성을 무시한, 서인들에게 정권이 넘어가는 시대적인 소론,노론 등 당쟁의 휘모리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조선후기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조선시대의 당쟁의 고리가 인조반정이후에 득세한 서인과 그에 대응하는 남인과의 처절한 싸움이 조선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져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구조 개혁에 힘을 썼던 윤휴. 그러나 주자학을 학문하던 송시열등에 의해 심하게 배척을 받기도 한 선비였다. 둘은 많은 부분에서 라이벌이었지만 윤휴는 천문, 지리, 병볍, 역사등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사상가 였다면 송시열은 공자와 맹자의 원전을 자유롭고 독창적인 학문을 모색했다.

윤휴는 과감하고 실천적인 학자였다. 송시열이 북벌에 대해 내용상의 반대를 한 반면에, 윤휴는 실질적인 프로그램을 짜 북벌을 이루려고 했다. 그만큼 윤휴의 사상은 개혁적이었다.

저자는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죽어서 까지 금기시 된 이름이었던 시대의 풍운아 윤휴라는 인물을 통해 현재 우리 사회는 ‘윤휴를 죽였던 당시 체제와 무엇이 다른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밝히고 있다. 책의 서문에서도 “윤휴가 사형당한 후 조선은 침묵의 제국이 되었다. 더 이상 그와 같은 생각은 허용되지 않았다. 윤휴와 같은 생각은, 특히 그런 생각을 표출하는 것은 사문난적으로 가는 초청장이고, 저승으로 가는 초청장이었다.”라고 이야기 한다.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윤휴의 삶과 사상을 복원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음으로써 화해와 상생의 시대를 만들자는 것이었음을 이야기 한고 있다. 그만큼 조선 후기 사회는 다른 생각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 아주 경직된 사회였던 것이다. 실제 백성들을 위한 정치는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백성을 희생시키는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후세에 이름을 남기지 못할만큼 잊어져간 사람인 윤휴의 삶은 정말 드라마틱하다. 이덕일 작가 우리의 역사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기회가 되었던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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