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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5월
평점 :
내일 모레가 쉰 고개다. 험하고 고달프게 살아온 세월이었다. 남은 것이라곤 세 자식뿐이었다. 뒷바라지를 하느라고 허둥지둥하며 한시도 편할 때 없이 억척스럽게 살아왔다. 자식들이 잘되는 것만이 소원이었고, 그것이 유일하게 잡고 있었던 삶의 끈이었다. 그런데 자식들이 커갈수록 그 바람은 빗나가는 것만 같았다. 모두 하나로 뭉쳐져 서로 의지가 되고 힘이 되어 살기를 소원했다. 그러나 그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바람이 자꾸만 엇나가고 버그러지고 있었다. 세 자식을 위해 몸 바스러지게 최선을 다했던 것은 무슨 덕을 보자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세 자식이 오손도손 사이좋게 살기를 바랐다. 그것이 눈물뿐인 자신의 인생을 보상받는 유일한 길이라 여겼던 것이다. (황토 중에서)
일제 말기 부모를 살리기 위해 일본인 순사 야마다의 첫아들 태순을 시작으로 해방 전후,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서로 피가 다른 큰아들 태순과 딸 세연,막내아들 동익(로버트)을 키우는 그녀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다. 그녀는 어머니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꿋꿋이 삶을 개척했지만, 자식들마저 그녀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소설은 아비가 각기 다른 세 자식을 키울 수밖에 없는 김점례라는 한 여자의 아픔을 통해 우리 민족의 비극을 보여주고 있다. 분단의 상황 속에서 형성된 문학은 분단상황 자체에 대한 인식의 방법과 그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른 상반된 가치체계를 드러내고 있다. 우리 문학은 6·25전쟁을 거쳐 196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분단체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6·25전쟁으로 인한 민족의식의 분열과 대립이 분단의 고정화를 촉진시키는 동안, 문학은 개인의식의 위축과 피폐를 감추기 위해 이념으로부터 도피한다. 전쟁으로 인한 민족의식의 분열과 훼손이 분단의 고정화를 의식화하도록 만든다.
우리의 현대사는 타율적으로 강요된 민족분단으로 말미암아 국토, 민족, 민족의식의 분열 속에서 대립과 갈등의 연장선상에 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고정화된 분단의 역사이다. 1950년 6·25전쟁은 우리 역사의 비극이며, 그것은 참혹할 뿐만이 아니라 좌·우 이데올리기의 충동이 갖는 광포성을 동시에 드러내내고 있다. 대립적 정치체제 속에서 민족사의 흐름은 방향을 잃었고, 분단상황의 사회정치적 모순이 민족공동체의 확립과 하나된 민족의식의 인식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이는 '민족의식 분열이 곧 분단의식'의 공식을 낳기에 이르렀다.
일제시대라는 상황에서 일상에서 수많은 굴욕을 겪어와야만 했으며 동족상잔의 전쟁이라는 또 다른 커다란 비극적 역사를 거치며 우리나라 민족의 한이 그대로 담겨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옛부터 인간은 나무와 흙으로 집을 지어 살아왔으며, 모든 식물들은 흙 속에 뿌리를 내려 성장하고, 동물들도 흙 속에 굴을 파고 생활하면서 번식과 활력이 넘치는 생활을 지속해 가고 있다. 그 속에는 생명의 근원인 흙이 있다. 흙은 우리의 삶의 원천인 동시에 고향을 느끼게 해주는 매개체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조정래의 소설을 읽고나서 느끼는 감정과 너무도 흡사함을 느끼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