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나지 않는 시대에 고함
정대진 지음 / 책마루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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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 중에 ‘개천에서 용난다’ 라는 말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변변치 못한 가난한 상황에서 용이 된 것처럼 성공한 것’을 의미하며 가난한 집 자식이 열심히 공부해서 부를 얻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이르렀을 때를 비유해 많이 쓰는 속담중 하나다. 하지만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그야말로 '옛 말'이 되어 버렸다. 개천에서 용나지 않는 시대에 고함현재 30대 후반 세대까지는 부모가 가난하다 하더라도 교육을 통해 또는 본인의 노력여하에 따라 상위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인생을 좌우하는 영향력이 점점 커질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근대사회 이전에는 신분에 따라 서로 다른 교육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귀족계층의 자녀들은 그들의 신분 덕분으로 체계적인 인문교육을 받는 특권을 향유할 수 있었으며, 일반 평민의 자녀들은 교회나 가정에서 종교생활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규범 및 기술을 습득하였다. 그러나 근대 시민혁명의 이념적 기반이 되었던 평등사상의 확산으로 교육은 시민들 모두가 천부 인권으로서 교육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성격을 지닌 근대사회는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출신 신분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에 의해 결정되는 능력주의 사회를 표방한다. 학교교육을 얼마나 받았는지가 곧 개인의 지능과 능력의 지표로 간주되었으며, 근대사회에서 학교교육은 신분을 대신하여 개인의 사회,문화,경제적 지위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한국사회에서 해방 이후의 폭발적인 교육적 팽창은 국가발전에 공헌한 바 적지 않았고, 특히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은 한국 교육이 그동안 강조해 온 기능주의,능력주의적인 면을 가장 적절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의 우리 사회에서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난다’ 라는 말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특히, ‘강남불패’, ‘고액과외’ 등이 그러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하는 단어가 아닌가 싶다. 지난번에 교육에 관한 뉴스를 본 적이 있다. 한 신문 광고에 명문대 졸업생의 사진과 학위번호가 쫙 정렬되어 나온 면이 나왔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수행 평가 대행업체 광고였다. 과제물 한 건에 50,000원이라고 한다. 한 달 자녀 과외비로 4만 2천원이 드는 하위층 에게는 꿈도 못 꿀 일일 것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상위층과 하위층의 사교육비 지출 격차가 15배가 난다고 한다. 심지어 초등학생 자녀에게 사교육비가 월 백만원 이상이 들어가는 가정을 찾기도 어렵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입시를 겪었거나 그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현 사회 시스템에서는 부가 세습화 될 우려가 많다. 돈 많은 사람은 고액과외다 해서 투자를 자식에게 할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서민은 등골이 휜다.  사회의 계층의 유지와 변동은 교육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럼 여기서 우리가 되짚고 생각해 볼 속담이 있다. 하나는 '개천에서 용난다'이고, 다른 하나는 '있는집 자식이 공부잘한다'이다. 이 속담은 사회의 계층을 뒤바꾸어 놓은 격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위 계층에서 상위계층으로의 상승을 말하는 것으로 끊임없는 노력과 투지의 결과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동은 사회의 불안정을 야기한다. 하위계층의 역할을 할 사람들이 차츰 없어짐에 사회는 어려움을 맞게 된다. 가난한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는 말을 되세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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