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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4 - 중국의 정화 대함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불을 지피다
개빈 멘지스 지음, 박수철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세상을 보는 눈은 여러가지 사건들로 인해 만들어지고, 또 결정되어진다.
중국의 남북이 해로를 통해 연결되어 상해가 역사에 모습을 드러낸것은 몽골시대부터였다고 한다. 낙타를 이용한 소구묘의 교역에 비해 8세기 후반 송나라에서 사용된 300톤급 다우선 한척은 600마리의 낙타등짐과 500~600명의 선원을 한꺼번에 실어 나를 수 있었다.
근대세계는 서구문명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우리는 서구문명에서 과학기술, 자본주의, 산업주의 등을 떠올린다. 이 과정은 보편성을 띠고 있으며 그것은 '근대화'라는 중심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대화가 곧 서구화라는 등식이 한동안 널리 퍼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한 세기를 마감하는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서구문명에 대한 불신의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서구 팽창의 역사적 경로를 되짚어보는 것도 근대화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위해 필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이전의 서구세계는 다른 지역보다 우월하지 않았다. 이미 8세기 이래 유럽은 3개 대륙에 걸쳐 대제국을 이룩한 이슬람 세계에 포위되어 있었다. 학창시절 세계사시잔에 명나라 초기, 정화가 대 선단을 이끌고 아프리까 동해안 까지 다녀왔다는 간단한 내용을 접하고 난 후 이들의 대 항해는 곧 기억에서 사라졌었다.
이 책을 읽기전에 먼저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라는 제목의책을 읽는다면 더 이해하기 쉬울것 같다. 책은 기존의 서양 중심의 세계사에서 무시되어온 1421년 중국 정화선단의 대 항해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저자는 '1434'의 저자이기도 한 영국 해군 장교 출신 개빈 멘지스다. 저자는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에서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은 콜럼버스가 아니었고 마젤란의 세계 일주도 '역사상 최초'가 아니었으며 실제 '최초 발견'은 명나라의 정화함대에 의해서였다고 주장한다. 중국인들이 인도양 항해에 그치지 않고 희망봉을 돌아서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북극해로 북상해서 유라시아 대륙 북부해안을 빙돌아서 호주를 찍고 태평양을 횡단했으며 심지어는 남극까지 탐험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또한 저자는 콜럼버스와 마젤란은 정화 함대가 만든 지도를 갖고 대항해에 나섰다고 주장하며 당대 세계 최강이었던 명나라와 세계를 향해 나아간 정화함대를 통해 중국은 세계를 발견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1421년 항해당시 중국은 가장 잘나갔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 거대한 자금성을 짓고 여러 중동국가들에게 조공을 받으며 전세계 무역권을 휘어잡았던 당시 중국은 그당시 유럽권에 있던 모든 국가들의 힘을 합친것과 비등했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 였다고 전한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명제는 여전히 상식으로 통한다. 그러나 이 상식엔 두 가지 편견과 하나의 무지가 들어 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으로 ‘발견’했다는 주장은 지극히 유럽 중심주의적인 편견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밟기 전에 이미 그곳에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다. ‘신대륙’이라는 명칭 또한 그 자체가 편견이다. 거기에는 정복자들을 위한 개척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책은 15세기초 명나라의 이야기로 부터 시작한다. 당시 중국은 자금성, 명13릉, 천단 등을 한꺼번에 건설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정화의 선단에 필요한 2천여척의
배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이렇듯 앞부분에서는 세계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함대를 건조하고 식량을 마련한 2년 동안의 준비과정을 살펴본다.
정화의 함대는 이미 알려진 세계의 모든 나라를 방문해야했다. 그러므로 아마 엄청난 규모의 준비가 필요했을 것이다. 책에는 중국인들이 별의 위치를 정해 이를 항해에 이용하는 방법이나 베네치아나 피렌츠등 당시 번성했던 유럽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었다. 특히, 책의 후반부에서는 저자의 강한 주장을 만날 수 있는데 바로 1434년에 있었던 중국과 유럽 사이의 방대한 지식의 전달과정이다. 그 방대한 지식은 수천 년에 걸쳐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해졌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간과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르네상스는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문명이 부활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하지만 이제 이 같은 유럽중심적 역사관을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 찾아온 것이다. 물론 그리스와 로마의 문명이 르네상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유럽에 전래된 중국의 지적 자본이 르네상스를 불러 일으킨 불꽃이었다고 본다.(p.15)
이 책 '1434'는 읽는이로 하여금 마치 실제로 탐험하듯이 작성한 내용으로 인해 몰입의 깊이가 틀리게 느껴진 책이다. 그런 이면에는 저자의 열정적인 탐구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것 같다. 저자는 1차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도 정화 함대의 세계 항해를 입증할 만한 사료와 유적,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녔다. 그는 14년 동안 무려 140여 개국, 900곳 이상의 문서보관소, 도서관, 박물관, 과학연구소, 중세 후기의 주요 항구 등을 답사했다고 한다. 저자는 위성항법이 개발되기 전, 자와 컴퍼스를 대고 별을 보며 항로를 그려내던 시절부터 영국 해군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래서 옛 항해가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며 그들의 항로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고지도와 해도, 항해, 천체관측 등에 대한 전문가적 식견을 갖추고 있었다. 심지어 지도를 그린 사람이 해역을 밤에 지났는지 낮에 지났는지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저자의 추론은 신빙성이 있어 보였고 항해라는 신나는일에 대해 푹빠져 읽었던 이 책을 통해 르네상스에서 중국이 차지했던 비중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생각해보게된 좋은 시간이 되었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