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 담쟁이 문고
이순원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은 소를 한식구로 생각하며 키운 강원도 강릉의 평범한 농가인 우추리 '차무집' 사람들  4대와 그들이 키우던 소 12대의 이야기이다. 시대적 배경은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난 해부터 미국산 소고기 반대 촛불집회가 한창이었던 2008년까지 벌어진 약 120년간에 걸친 소가문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가 자란곳이 시골이었고 그 연배에서 어린시절  겪었던 소에 대한 기억들이 아주 충실히 반영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소설은 토속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당장 젖을 먹어야 하는 애송아지가 어미와 헤어져 기진맥진울면서 아직 매서운 날씨에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채 마당으로  들어섰다....치마로 닦아주기가 잘 안닦이는지 새댁은 부엌으로 가서 행주를 가져왔다. 솥 위에 올려놓아 따뜻하게 데워진 행주로 다시 코를 풀게 하듯 송아지의 코언저리와 입가, 눈가를 싹싹 닦아주었다. 소들도 누가 나를 귀하게 여기는지, 누가 나를 애틋하게 여기는지 아무리 어릴 때라도 알 것은 다 알았다. 식구들의 밥솥과 밥그릇을 닦는 수건보다 용도가 더 중한 행주로 송아지의 코를 닦아주고 입을 닦아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그 마음을 어린 송아지인들 왜 모르겠는가(p.27)
 


그릿소, 흰별소같은 이름을 지어주고 차무집 사람들은 걸레 대신 행주로 소의 얼굴을 닦아주고, 밥을 먹다가 소와 눈이 마주치자 자신의 밥을 그대로 여물에 부어주고, 어미 뱃속에서 죽어 나온 송아지를 고이 묻어주고 소들 식구로 여기며 살았던 것이다

얼마전 TV에서 방영한 다큐를 보았다.  '키르키즈스탄'이라는 이름도 어려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유목생활을 하며 일생에 3마리정도의 말을 만난다고 한다. 말은 유목생활에서 자신의 발과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말의 수명이 30년에 못미치게 짧으니 3마리를 만나게 되면 그들의 수명도 다한다는 이야기이다. 세번째 말과 함께 살고 있는 주인공인 그가 말에게 보내는 눈빛에서는 마지막 인연에 대한 진한 연민에 쌓인 애정이 느껴진다. 말을 식구와 같이 생각하며 항상 보살피며 말과 함께 같이 살아가는 그들의 마음 한구석을 발견하며  사랑이란 바로 그런것이라는 공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사랑이라는것이 어찌 사람을 상대로만 국한되겠는가란 생각도 들면서 말이다.

누구나 무엇에 대한 그리움, 혹은 어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 소설은 그러한 그리워지고, 또 미안한 마음이 들게되는  유한한 삶속에서 많은것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작가의 고향 강릉에선 소를 '생구'라고 부른다고 한다. 생구는 '식구'와 어원이 닿아 있는 말로 소를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식구처럼 대했다는 이야기다. 나 또한 그런 경험을 가지고 살고 있기에더욱 공감이 간다. 소에 대한 기억으로 남아있는것은 초등학교때 시골의 외가집에 가면 늘 만나던 외양간의 커다란 황소이다. 비록 무섭게 보이는 큰 뿔을 가지고 있었지만 솔방울만큼 커다란 눈망울로 인해 순하디 순한 심성이 느껴지던  소로 기억된다. 그 소는 분명히 일소였다. 농사철이면 늘 쟁기를 몸에 달고 밭을 갈던 힘이 아주 센 일소였었다는 것과 해가 질때쯤이면 늘  소를 먹이기 위해 커다란 가마솥에 짚을 썰어넣고 소죽을 끓였었고 그 소죽끓이는 냄새는 지금도 생생하게 나의 기억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때문인지 나의 마음속의 시골은 항상 그 소죽 냄새와 함께 굴뚝에서 피어나던 연기가 짙게 깔려 있다.  이제는 시대가 많이 변했다. 공업기술의 발달로  농기계들이 과거의 소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외가집의 그 커다란 몸집의 그 일소도 그를 비바람으로 부터 보호해주던 외양간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것은 농경사회에서 사람과 소가 맺었던 친밀한 관계의 상실을 의미하며 과거 소가 그들의 노동력을 제공함으로써 식구와 같은 대접을 받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이야기가  촛불시위라는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연결되버린 현실이 많이 불편해진다. 오직 사료로 사육된 고기를 제공하는 역할의 소로 전락해버린지 오래이지만  나는 이 소설에서 인간과 소가 정서를 주고 받으면서 살았던 아름다웠던 그 시절로만 가보고 싶었고 또 그 시절만이 그리웠었던 것이다. 이제는 시골에서 소를 보아도 그 소죽냄새가 바로 느껴지지 않으니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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