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풍경 - 전향규 감성 에스프리
전향규 지음 / 시디안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20여 년을 걸어오는 동안 내가 발견한 한 가지 명제가 있다면, 그것은 ‘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였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산에게, 나는 날마다 이렇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왜 살아 있는가, 나의 가치는 무엇인가..."(p.8)

...

우리는 울기도 한다. 감성 시대가 지났건만, 나는 다시 청춘을 만든다. 살아온 지난 청춘의 삶을 돌아다본다. 수많은 추억들이 지나갔고, 수많은 생각들이 숲을 이룬다. 그 생각의 숲은 하나의 풍경이다. 하나하나의 풍경들마다 우리들 삶의 궤적은 넉넉히 담겨져 있다. 나는 이 청춘의 시대에 당도해서야 그 숲속에 잠긴 생각들을 낚아 올린다(책머리에서)

 

이 책은 평범한 삶을 살아온 50대 남자의 그동안 느꼈던 삶의 애환을 담은 에세이집으로 모두 30여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이미 시인으로 등단한 바있는 작가는 자신 주변의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이웃들을 지켜보며, 자신과 엮어있는 그들에 대한 추억을  진솔하게 풀어내고 있다.

 어릴 적 추억과 사연들이 곳곳에 배치한 흑백 가족 사진과 함께 수록되어 있어 인상적이었다.  저자의 가족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나의 어린시절의 흑백사진들이 오버랩된다. 비슷한 포즈의 가족 사잔들 그당시는 그랬다. 사진관에 가서 사진한장 찍는일이 졸업식이나 결혼식과 같이 인생에 있어 중요한일이 있지 않고서는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는 졸업장을 넣어 보관하는 동그랗고 기다란 통이 있어 과거 졸업삭 사진에 꼭 등장하던 소품중의 하나였던것이 갑자기 생각났다.  특히 인화지에 흰색글씨로 흘려쓴 '축 졸업'이라는 단어와  촬영일자를 보고 있노라면 시간의 흐름이 더욱 아스라이 느껴진다.

 

어머니는 늘 그랬던 듯 현관문을 빼곰히 열어두시고는 며칠을 밤 새워 뒤척거리시는 당신의 모습을 나는 지켜보았다. 가슴에 다 묻기도 아팠을까, 저토록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어머니는 킁킁 기침소리 내뱉으시며 문을 열고 들어서는 형을 기다리시는 것이다. 설친 잠인데도 새벽녘에 먼저 일어나셔서 현관에 놓인 신발들을 세시는 어머니.  - '그리운 형' 중에서

 

그 속깊은 가슴에 세상근심 다 안고가신 그의 미소와 애틋했던 사랑은 아직도 내게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이제는 어딜 둘러봐도 그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p.55)

 

저자는 형의 죽음이라는 인생에 있어 커다란 슬픔을 경험했다. 겨우 불혹을 눈앞에 두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저자의 형 고 전성규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절절한 형제애로 인해  나의 가슴속에도 뜨거움이 느껴졌다. 죽음이 두려운 건 잊힌다는 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움이 퇴색되고 그러다 결국은 잊게 되니까 말이다. 그리고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없고, 마음을 전할 수 없다는 게 가장 슬픈 일일 것이다. 

 

글중에 유독 그리운 이름들이 떠올라  그  이름을 하나씩 적어본 글을 읽었다. 가족 포함해서 모두 50여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 이름들을 보면서 나에게는 이런 이름들을 적는다면 몇명이나 될까?하는 생각을 해보며 긴 상념에 사로 잡혔었다. 물론 휴대폰안에는 상당히 많은 이름이 저장되어 있지만 실제로 통화를 자주하는 번호는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나에게는 그런 이름들이 별로 없는것 같아 허전함이 느껴진다.

 

이 책은 40대를 지나 50대로 접어드는 중년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바쁜 생활속에 자기 자신마저 돌아볼 새 없는 삭막한 현대인들의 가슴에 훈훈한 정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형제간의 우애와 부모님에 대한 사랑에 대해 그리고 지금까지 바쁘게 살아오면서 소원해진 친구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나게 해 준 글들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인생은 크게 달라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40대로 들어선지도 오래된 지금 이제 곧 50살도 어느 순간 다가와 있을 것이다. 지천명(知天命)은 하늘의 명을 알았다는 뜻인데요. 쉽게 말하자면 50세쯤 되어야 자기가 해나가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닿게 된다는 이야기 일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50세 이후의 삶과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계획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물질적인 준비와 건강 문제에만 신경 쓸 뿐이다. 그러나 나이 50이 된다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왔다는 뜻이다.나이 오십부터는 인생의 성공이 상대화된다. 다시 말해, 이 나이가 되면 금전적으로 거둔 성공이나 직업적으로 거둔 성공, 사회적으로 획득한 높은 지위와 같은 것들만이 더 이상 삶의 목표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제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청춘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생을 어떠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가치있는 삶을 마감하게 될 것인지 중간결산을 하는 셈이다.   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인생 모두에서 말이다. 나의 50대를  생각해 보지만  내세울만한 것들이 있을지에 대해선 영 자신이 없다.  이 책은 인생을 살며서 아름답고 소중한것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준 글들이 담겨있는 소중한 글들이 실려있다. 부모님은 자식이 효도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진리처럼 느껴진다. 이제는 연로한 부모님에게 안부전화 한통화라도 넣어 이 불효막심한 죄인의 미안한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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