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정진규 외 지음 / 작가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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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는 2008년 한해동안 발표되었던 시와 시집을 대상으로 좋은 시인을 공정하게 선정하기 위해 시인, 문학평론가, 출판편집인 등 150명을 추천위원으로 추대하여 추천을 받았다고 한다. 시에는 시작노트를 시집에는 평론가의 서평과 함께 수록하였고 말미에는 추천 시 목록, 추천시집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는 좋은 시 로는 시 278편과 좋은 시조 11편을, 좋은 시집으로는 시집 20권과 시조집 3권이 추천되었다. 이중에서   2009 오늘의 시는 이러한 서정의 원리에 대해 다양하게 사유할 수 있는 유력한 미적 근거들을 갖춘 좋은 시 78편과 좋은 시조 11편을 선정 가편으로 수록하고 있다.

 

설문 조사 결과, 작년 한 해 동안 발표되었던 시편 가운데 송재학 시인의 「늪의 內簡體를 얻다」가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는데 이는 송재학 언어감각의 한 절정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늪'이라는 대상과 시를 말해가는 화자 사이의 틈이 거의 없는 채로 형상화 되어 있다. 시집으로는 심보선 시인의 「슬픔이 없는 십오 초」(문학과 지성사 刊)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등단 14년만에 낸 그의 첫 시집으로서, 시인 특유의 감각적이고 진솔한 언어에 실려 있는 그리움이랄지 사랑이랄지 운명이랄지 하는 세목들이 다양한 형상적 욕망 속에서 변주되고 있는 개성적이고 아름다운 시집이다.(p.3 중에서)

 

 

늪의 內簡體를 얻다 / 송재학 

너가 인편으로 부친 보자기에는 늪의 동쪽만 챙긴 것이 아니다 새털 매듭을 풀자 물

위에 누었던 목라 하늘도 한 움큼, 되새 떼들이 방금 밟고간 발자국도 구석에 꼭두

서니로 염색되어 있다 수면의 물거울을 걷어낸 보자기 속은 흰 낮달이 아니라도 문

자향이더라 바람을 떠내자 수생의 초록이 새순처럼 하늘거렸네 보자기와 매듭은 초

록동색이라지만 초록은 순순히 결을 허락해 개구리밥 사이 너 과두체 내간을 챙겼

지 도근도근 매듭도 안감도 모두 雲紋褓라 몇 점 구름에 마음 적었구나 삽시간에 遊

禽이 적신 물방울들 내 손등에 미끄러지길래 부르르 소름 돋았다 그 많은 고요의 눈

맵시를 보니 너 담담한 줄 짐작하겠다 빈 보자기는 다시 보낸다 아아 겨울 늪을 보

자기로 싸서 인편으로 받기엔 얼음이 너무 차겠지 向念.

 

 

시의 정신적 심도는 필연으로 언어의 정령을 잡지 않고서는 표현제작에 오를 수 없다”라고 말한 것은 정지용이다. “시의 신비는 언어의 신비”라고 했다. 그런 그가 만년에 의고체 산문시를 통해 도달하고자 한 것이 동양고전의 정신세계였으며 그 빛난 성취가 『백록담』시편이었다. 이러한 시적 전통이 송재학의 이 작품을 통해 새롭게 변용되어 이어지고 있음을 본다. 의고적 문체라는 낯선 형식이 수사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송재학은 자신의 예각적 감각으로 포착한 늪의 비밀을 은근한 동양적 아취로 담아내기 위해 내간체 고어표기라는 참신한 형식을 창출한 것이다.(장옥관 ,계간 <시안> 2008. 겨울호중에서)


 


 



슬픔이 없는 십오 초』(2008, 문학과지성사)


심보선 시인이 등단 14년 만에 펴낸 첫 시집. 해설을 쓴 평론가 허윤진씨는 “심보선의 시집은 그 자체로 슬픔을 저축해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눈물 뚝뚝 흐르거나 통곡하는 슬픔이 아니다. 남들보다 예민하기에 더 아프게 감지하는 일상의 사소한 슬픔이 차곡차곡 쌓여 빚어 내는 무늬다.

 

 

우리는 ‘서정’의 동일성 원리를 적극 복원해갈 것인가 아니면 아이러니의 정신을 극대화함으로써 ‘서정’의 외연을 넓혀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 마주치게 된다. 이때 우리는 ‘서정’도 역사적 개념임을 전제함으로써, ‘서정’의 다양하고도  복합적인 해석과 표현 기능을 확충해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요컨대 ‘서정’은 이성적 사유를 매개로 하는 계몽, 타자의 시선을 통한 부단한 자기 검색, 감각의 전회를 통한 지각의 갱신 등을 모두 자신의 몫으로 삼아야 한다. 물론 이는 주체의 해체보다는 주체의 기능과 역할을 새롭게 가다듬는 과정에서 가능한 것이다. (P.2)

 

많은 평론가들은 문학에서 환상과 전복의 세계와 언어구사를 보이며, 엽기적인 묘사와 무의식을 드러나며, 독해하기가 어려울 만큼 난해하다고 꼽는다. 그래서 이들과 코드가 다른 세대들은 이들의 문학이 자칫 말장난이나 환상적 말놀이로 여겨진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들 세대들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이들의 어법은 종래의 시들과 ‘다를 뿐’, 말장난이나 환상으로 치부될 수 없는 또 하나의 진지한 문학이라 주장한다. 심지어는 ‘시적 주체와 세계가 엇갈리는 비정상적인 불행한 서정시’라 보기도 한다.


 

(전략) ‘가끔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난다/ 가능한 모든 변명들을 대면서/ 길들이 사방에서 휘고 있다/ 그림자 거뭇한 길가에 쌓이는 침묵/ 거기서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비가 새는 모든 늙은 존재들이/ 새 지붕을 얹듯 사랑을 꿈꾼다/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중에서/심보선)

 

 
내 언어에는 세계가 빠져 있다 /그것을 나는 어젯밤 깨달았다 /내 방에는 조용한 책상이 장기 투숙하고 있다 /세계여! /영원한 악천후여! /나에게 벼락같은 모서리를 선사해 다오! /설탕이 없었다면 /개미는 좀더 커다란 것으로 진화했겠지 /이것이 내가 밤새 고심 끝에 완성한 문장이었다 (후략) (슬픔의 진화  중에서/ 심보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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