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상속
키란 데사이 지음, 김석희 옮김 / 이레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은 인도의 유명 작가 '아니타 데사이'의 딸인 키란 데사이가 8년의 시간을 거쳐 완성한 작품으로 2006년 최연소 여성작가로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영국의 맨부커상의 영예를 안긴 작품으로 인도 사회가 안고 있는 '상실'을 그려낸 키란 데사이의 장편소설이다. 그녀의 아버지 역시 인도의 유명 작가인  아니타 데사이이다.  세계화와 이민 등의 문제를 내세운 날카로운 정치의식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은  1986년 즈음의 인도, 서벵골주의 북부에 있는 칼림퐁 주변이다. 칸첸중가의 최고봉이 바라다 보이는 이 곳에서, 17살의 소녀 사이는 판사직에서 은퇴한 외조부 제무바이와, 요리사 그리고 외조부의 애견인 무트와 함께 살고 있다 . 등장하는 그들은 동족이며 가족이면서도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사이는, 부모님이 구 소련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신 후, 기숙제인 수녀원 부설학교에 있다가 유일한 친척인 외조부가 살고 있는 이곳으로 왔다.

 

외조부 제무바이는 영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고 판사직까지 지낸 엘리트이다. 그는 “공부야말로 그가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영국에서 맛보아야 했던 것은 지독한 열등감이었다. 그는 이로 인해 인도인을 극단적으로 싫어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피부색이 이상하고, 자신의 말투가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웃는 법을 잊어버리고, 입술을 들어 간신히 미소를 지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럴 때에도 그의 잇몸과 이를 남들이 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실제로 그는 남에게 불쾌감을 줄까봐 몸을 거의 옷 밖으로 드러내지 못했다. 그는 냄새가 난다는 소리를 들을까 두려워 강박적으로 몸을 씻기 시작했다. (p 77)

 

힌두어밖에 할 줄모르는 요리사는 아들 비주를 힘들게 미국으로 보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요리사는 순종을 가장하면서 오랫동안 판사곁에서 시중을 들어 왔다.  뒤로는 밀조등을 해서 아들 비주를 미국으로 출국시키고, 그 아들에게서 오는 편지를 가장 큰 낙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미국보다 인도에 먼저 아침이 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비록 자신은 이곳 히말라야에서 힘들게 살아가지만 미국으로 보낸 아들 비주에게는 다른 세상이 열릴 거라 기대한다.  그의 아들 비주는 세계 각지에서 온 불법체류자들이 일자리와 성공을 갈망하며 모여드는 뉴욕에서 여러가지 경험을 한다. 똑같은 처지의 파키스탄 동료와 결코 잘 지낼 수 없는 업보처럼. 상실은 그 땅을 떠나서도 여전히 대물림되고 있었다. 비주는 핫도그 가게에서 일하는 불법 이주 노동자다. 언제 붙잡혀 강제 송환될지 모른다. 비자가 없는것이 들통나면 가게에서 당장 해고 된다. 그는 저임금의 일자리를 찾아 곳곳을 전전하는 불안한 삶을 살면서도 ‘그린카드’를 꿈꾼다.
 

겉으로는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 소설속의 등장인물들에게는 굴욕의 경험이 있다. 거의 다 서양과의 만남으로부터 상처와 열등감을 얻었다. 상실의 유산이 대물려 상속되고 있는 나라에서 살면서 서양의 경제적,문화적 힘에 정복된 수백년의 세월을 보여준다. 인도 사회가 안고 있는 '상실'을 그려낸 키란 데사이의 작품세계는 인도 사회 내에서 서구화된 인도인, 계급 사회를 체념하거나 부정하려는 인도인, 희망이 없는 인도를 떠나려는 인도인 등 삶을 통해 대물림되는 상실의 유산을 그리고 있다. 영국이라는 대제국에의해 식민지를 겪은 기성세대는 ‘제 영혼을 파멸시키면서 배운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도인들’로, 쓸모없는 인간이 됐으며 지안 같은 젊은이들은 소수민족의 독립운동에 가담해 자신의 분노와 좌절감을 터트린다.

세계 역사에서 서구 지배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서구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서구는 앞으로도 수십 년동안 가장 강력한 문명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세계 자본주의에 의한 세계화는 특정 계층의 인도인들로 하여금 국제 노동 시장에서 값싼 노동력의 제공자로 방황하게 하여 고향을 상실한 사람들로 전락시켰지만   세계 역사의 방향은 거대한 아시아의 근대화 행진에 서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근대화의 확산을 환영하고, 받아들이고, 보다 개방적인 세계질서를 향해 아시아와 함께 일할 수 있기를 바라고 싶다. 제국주의에서 경제적 세계화까지 넓은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이 소설은 두꺼운 부피만큼이나 다루고 있는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소설로 기억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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