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 - 서양과 조선의 만남
박천홍 지음 / 현실문화 / 200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나라는 비록 삼면이 바다로 막혔지만 예로부터 다른 나라 배가 정박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근자에 와서 이상한 배가 자주 출몰한다. 서양의 여러나라 가운데 영국과 불란서가 가장 강대하고 또 성품이 만족할 줄 모른다. 넓은 바다를 두루 돌아 이르는 곳마다 처음에는 이(利)로써 유혹하고 나중에는 위세로써 협박한다.(본문중에서)

이 책은 조선의 이양선에 대한 책이다. 아니 바다를 통해 찾아온 이방인들과 조선의 만남을 그린다. 이양선(異樣船) 으로 불리는 16세기부터 19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해안에 출몰했던 서양 선박과 서양인들의 모습과 함께 '근대'가 조선에 침투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조선의 관찬 사서에 최초로 서양인이 등장한 것은 16세기 말이었다. 당시 조선에게는 중국과 일본 두 나라가 세계의 전부였다. 서양의 이방인들에게도 조선은 잘 알려지지 않은 땅이었다. 그러나 16세기부터 사태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탐험과 발견의 단계를 거쳐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한 유럽은 상품 시장과 선교 기지를 찾아 동쪽으로 밀려들었고, 18세기 중반을 지나며 본격적으로 군함과 총포를 앞세워 우리나라로 몰려 들었으며 서양의 이양선들이 조선 해역에 본격적으로 출몰하기 시작한것은 18세기 말부터였다.탐험과 발견의 단계를 거쳐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한 유럽 국가들은 무진장한 상품시장과 선교기지를 찾아 동쪽으로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중국의 속국으로 만족하고 있던 조선왕조에 이양선은 악령의 출현이자 몰락의 전주곡이었다. 조선에 근대는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해일처럼 밀려왔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이 교역을 요구했을 때 조선왕조는 적개심과 회피로 일관했다. 조선의 집권층은 스스로 중국의 속국임을 자처하며 현실에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이다

서양인들에게 있어 조선은 그다지 매혹적인 나라가 아니었다. 조선은 중국과일본에 비해서 늦게 알려진 나라로 자원이 풍부한 나라로 비치지도 않았고 통상이익도 크게 기대하기 어려웠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 그려진 '지팡구'(일본)처럼 황금이 지천으로 널린 황홀한 나라도 아니었다.오히려 <하멜표류기>가 전한것처럼 외국인을 감금하고 노예처럼 부린 공포의 왕국으로 알려져 있었다(p29)

조선이라는 나라를 서양에 알려지는데 하멜표류기는 많은 공헌을 하였다. 이 책이 출판되던 당시 유럽 사회는 구텐베르크의 출판 혁명 직후인지라 새로운 책의 출간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던 시기였다. 조선은 결코 미지의 세계가 아니었다. 더욱이 지리상의 대발견이라는 유럽의 동양 진출 붐 속에서 이 책은 그때까지 유럽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한 신비감을 불러일으켰고, 조선을 찾은 서양인들은 하나같이 조선인의 본성이 이방인에 대한 뿌리 깊은 적대감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이방인과의 접촉을 막는 조선 조정의 엄한 규율과 낯선 세상에 대한 공포가 뒤섞인 결과임을 알수있다. 서양의 배가 찾아오게 된 계기도 처음에는 우연히 표류해 오거나 식량과 물 등을 찾아 잠시 상륙하는 경우였지만 점차 탐험과 측량, 통상 요구, 기독교 선교, 보복 원정 등으로 바뀌어갔으며 구성원들도 탐험가, 측량기사, 군인, 상인, 선교사, 의사, 통역관 등 가지각색이었다.

이 책은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있지 않은 부분인 19세기 후반 개항 이전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동서양의 수많은 자료들을 수집하고 그림, 사진 등을 서양과 조선 양쪽 모두의 시각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저자는 특히 신분에 따라 차별적이었던 조선인들의 외부인에 대한 태도에 주목한다. 고문서를 다수 소장한 재단법인 아단문고 학예연구실장인 저자는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같은 조선정부 공식사서는 물론이고 ‘하멜표류기’ ‘라페루즈의 항해’ 등 조선과 조우한 조선을 찾은 서양인의 일기, 여행기, 항해일지, 편지, 보고서와 조선이 서양 배들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한 문정관의 기록도 조사해 당시 상황을 생생히 구성했다. 806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지만 역사이론서의 딱딱함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역사적인 사실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덧입혀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던 책으로 잘알려져 있지 않는 역사를 발굴해 쉽게 풀어놓는 저자의 탁월한 필력이 느껴지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